“美 150년형인데…韓 개미 피눈물에도 솜방망이”

최훈길 기자I 2023.06.18 15:03:32

‘175개 상장사 분석’ 김우진 서울대 교수 인터뷰
“주가조작 방지하려면 종신형 등 처벌 강화해야”
“내부정보로 ‘폭락 전 매도’는 도둑질, 엄벌해야”
“깜깜이 배당 근절, 자사주 제도개선도 추진해야”

[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미국은 주가조작 등 금융 범죄에 종신형까지 부과합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극복하려면, 자본시장 제도 개선부터 해야 합니다.”

김우진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난 14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이데일리와 만나 최근의 잇단 주가조작 사태에 대해 이같이 제언했다. 김 교수는 법무부·기획재정부·국민연금·한국거래소·삼성·풀무원(017810)·금융투자협회 등에서 자문 직을 맡고 있다. 특히 삼정KPMG 감사위원회 지원센터 자문교수로서 최근 175개 상장사 기업지배구조 보고서를 전면 분석했다.

앞서 동일산업(004890), 만호제강(001080), 동일금속(109860), 대한방직(001070), 방림(003610) 등 5개 종목이 수년간 오름세를 보이다 지난 14일 일제히 하한가로 급락했다.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한국거래소는 지난 15일부터 5개 종목의 거래를 정지했다. 같은날 검찰은 주식카페 운영자의 주가조작 혐의를 잡고 운영자를 출국금지한 뒤 압수수색 했다.

지난 4월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發) 사태 이후 한 달 만에 또 주가조작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금융위·금감원·거래소는 이르면 이번 주에 하한가를 기록한 5개 종목에 대한 조사 현황 및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김우진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솜방망이 처벌 때문에 주가조작단이 주가조작으로 개미들 피눈물을 흘리게 해도 죄의식이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대 경제학과 학사 △산업자원부 사무관(행시 40회) △일리노이대 재무학 석사·박사 △KDI국제정책대학원 조교수 △서울대 경영학과 조교수·부교수·교수·학생부학장 △현 삼정KPMG 감사위원회 지원센터 자문교수 △현 법무부 상법특별위원회 위원 △현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 △현 풀무원 사외이사 △현 금융투자협회 자율규제위원 △현 한국거래소 지수위원회 위원 △현 국민연금 투자정책전문위원회 위원 △현 기획재정부 기금운용평가 위원 △전 공정거래위원회 공정거래법제 개선 특별위원 (사진=이영훈 기자)


◇주가조작 수백억 부당 이득에도 쥐꼬리 벌금

김 교수는 주가조작이 잇따라 재발하는 주요 원인을 미국과 다른 ‘솜방망이 처벌’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에서 다단계 금융 사기극을 벌인 버나드 메이도프는 2009년에 징역 150년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최대 양형 기준이 징역 15년에 불과하다. 주가조작단이 수백억원 부당 이득을 챙겨도 수사당국이 부당이득 산정에 실패하면 최대 5억원 벌금만 내면 된다. 김 교수는 “이런 솜방망이 처벌 때문에 주가조작단이 죄의식 없이 개미들 피눈물을 흘리게 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아울러 김 교수는 미공개 내부 정보를 이용해 주가 급락 전에 매도하거나, 주가 급등 전에 매수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했다. 최근 금감원은 키움증권(039490) 임원, 한앤컴퍼니·하이브(352820) 직원들을 미공개 정보이용 혐의로 검찰에 사건을 이첩했다. 김 교수는 “미공개 내부 정보를 이용한 것은 재수 없이 걸린 게 아니라 남몰래 도둑질을 한 것”이라며 “이들은 폭락 전 매도로 수백억 이득을 챙기고, 매수한 개미들은 피눈물 나는 이런 행태를 엄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가조작 사건이 터진 14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스크린에 주가지수가 띄워져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거래일보다 18.87포인트(0.72%) 내린 2619.08, 코스닥은 전장보다 24.98포인트(2.79%) 내린 871.83에 마감했다. (사진=연합뉴스)


김 교수는 ‘깜깜이 배당’ 관행을 근절하는 것도 자본시장 과제로 지적했다. 앞서 지난 2월 금융위는 ‘선(先) 배당금 결정, 후(後) 주주 확정’ 내용을 담은 배당제도 개편안을 발표했다. 현재는 배당액을 모르고 투자하는데, 앞으론 배당액을 확인한 뒤 투자할 수 있도록 배당 절차를 개선하는 것이다.

하지만 김 교수가 삼정KPMG 감사위원회 지원센터와 함께 3개년 연속 기업지배구조보고서를 의무발행한 175개 상장사에 ‘배당정책 및 실시계획을 주주에게 연 1회 통지하는지’ 여부를 확인한 결과, 지난해 준수율은 60.6%였다. 2020년 준수율(46.3%)보다 높아졌지만, 여전히 많은 기업들은 배당 계획을 미리 투명하게 주주들에게 알리지 않고 있는 셈이다.

김 교수는 “투자자들에게 배당의 예측 가능성이 중요한데, 상당수 기업들이 여전히 주주들의 배당 권리를 소홀하게 생각하는 것”이라며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지수에 편입하려면 깜깜이 배당을 더 줄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지난 9일 한국은 MSCI 선진시장 편입을 위한 관찰대상국(워치리스트) 등재에 실패했다.

(사진=삼정KPMG)


◇배당 투명화·자사주 제도개선 시급

이어 김 교수는 자기주식(자사주) 제도개선 필요성도 강조했다. 소각 의무화에 대해선 강제소각보다는 ‘제3의 방식’을 검토할 것을 주문했다. 금융위는 현재 5가지 방안(△자기주식 강제소각 또는 한도 설정 △자기주식 처분 시 신주발행 규정 준용 △합병·분할 시 자기주식 권리 정지 △시가총액 계산 시 자기주식 제외 △자기주식 관련 공시 강화) 등을 검토 중이다. 금융위는 올 하반기에 자사주 제도개선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김 교수는 “경영권 방어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소각 의무화는 쉽지 않다”며 “미국처럼 자사주 매입 즉시 시가총액에서 제외하고 처분 시 신주발행 규율을 똑같이 적용하는 원칙을 세우되, 우리 기업의 현실적 상황을 함께 고려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자사주 매입 즉시 시총에서 제외하게 되면, 회사 오너들이 실익을 고려해 자사주 매입 자체를 아예 안 할 수 있다”며 “일단 거래소가 기존 공시에 ‘자사주를 제외한 시총’도 추가해 공시하는 병행 공시부터 도입했으면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처럼 신주발행 규율은 완화하는 등 기업 현실을 고려한 조치도 병행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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