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양미영 기자]미국의 에머슨전자는 은행에 20억 달러에 달하는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 에머슨은 주식환매(바이백)와 배당 등을 위해 자금을 차입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에머슨전자가 보유한 현금이 대부분 유럽과 아시아에 예치돼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해외 보유현금을 자국으로 송금해 올 수도 있지만 35%에 달하는 세율을 의식해 자금 차입을 택했다.
이처럼 미국 기업들의 보유현금은 급증했지만 해외자금만 풍부하고 자국에서는 오히려 현금이 부족한 기업이 많아지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에머슨 외에 일리노이툴웍스는 지난 9월말 현재 21억달러(약 2조2754억원)에 달하는 현금을 보유했지만 미국에는 단 한푼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존슨앤존슨도 전체 매출의 46%에 해당하는 245억 달러의 현금이 미국 밖에 있고 제너럴일렉트릭(GE)과 월풀 등도 상황은 비슷하다.
JP모간에 따르면 미국의 1000개 다국적 기업 가운데 600곳은 보유 현금의 60%에 달하는 5880억 달러가 해외에 예치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기업은 해외현금을 송금할 때 세금 부담을 우려해 차라리 국내에서 차입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실제 외국에 있는 현금은 해외시장 확장을 위해 투자하는 등 여러모로 활용할 수 있고 최근에는 저금리 덕분에 자금 차입비용 부담도 줄었다.
그러나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국내외 현금이 양분됐지만 기업들이 미국에서 실제 활용 가능한 유동성 규모를 투자자에게 정직하게 밝히지 않고 있는 점에 우려를 표명했다. 이에 따라 기업들에게 현금보유 규모를 자세히 공개할 것을 압박하고 있다.
투자자 입장에서도 보유현금이 배당이나 바이백에 쓰일 수 있지만 해외에 묶이면 손해가 될 수 있다. 기업 재무 책임자들은 현금이 있으면서 이자를 물고 돈을 빌리는 셈이 돼 추가적 위험이나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또 미국기업들이 해외에 보유한 현금 비중이 해외에서 실제 발생하는 수익보다 훨씬 높아 세금 회피가 될 수도 있다고 WSJ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