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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부가 이번 바이백 확대 발표에서 ‘유동성 지원 바이백(liquidity support buyback)’이라고 쓴 것이 그것인데요. 거래가 잘 안 돼 프라이머리 딜러들이 주로 떠안고 있는 장기국채 비지표물을 사주고 그 자리에 유동성 좋은 신규 단기국채를 공급해주면, 딜러 대자대조표가 돌기 시작합니다. 특히 30년물 1달러와 4주물 1달러 어치는 듀레이션이 40배 이상 차이나기에 금융회사들의 듀레이션 리스크가 크게 줍니다. 또 투자자산인 장기국채 대신 현금 등가물인 단기국채를 담은 은행들은 이를 레포 담보로도 쓰고 MMF가 그대로 흡수해 광의의 유동성이 늘어나는 효과도 생깁니다.
그러나 여기서 궁금증이 생깁니다. 재무부가 장기국채를 사들인다고 한들, 그 재원 마련을 위해선 단기국채를 더 찍어야 할텐데 그 수요를 어떻게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느냐 하는 겁니다. 금리를 높여주지 않아도 누군가가 미 단기국채를 꾸준히 사준다는 전망이 충족돼야 장기국채를 마음 놓고 되살 수 있다는 겁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단기국채 발행 확대가 미국 은행들의 준비금을 줄여 단기자금시장을 불안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더구나 시중 통화량을 줄이겠다는 목표를 가진 연방준비제도는 단기국채 매입을 위해 작년 12월부터 개시했던 지급준비금관리매입(RMP)를 다음달 중순까지 한 달간 중단한다고 최근 발표했습니다. 미 재무부가 단기국채 발행을 늘려 준비금을 계속 빨아들일 경우 연준이 RMP 가동을 재개할 가능성이 높지만, 아직까진 단정지을 순 없는 상황입니다.
이 대목에서 베선트 장관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믿는 구석이 등장하는데요, 그게 바로 달러 스테이블코인입니다. 실제 지난해 7월 트럼프 대통령은 스테이블코인을 제도권 틀 안에 규정하는 기본법인 지니어스법(GENIUS ACT)에 서명한 뒤 “이건 미국 국채 수요를 늘려 금리를 낮추고, 수세대 동안 달러의 세계 기축통화 지위를 공고히 할 것”이라고 했고, 베선트 장관도 “(달러) 스테이블코인 덕에 약 2조달러까지 국채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은 발행액 만큼을 준비금으로 보유해야하고, 준비금 대부분이 만기 93일 이하 초단기 국채와 익일물 레포, 달러 현금 등으로 운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늘어난다고 해서 곧바로 국채 수요가 는다고 할 순 없습니다. 최근 스테이블코인 이자 지급 허용을 골자로 하는 클래리티법(CLARITY ACT) 입법 과정에서 미국 은행들이 반대하듯, 은행 예금에서 이탈한 자금이 달러 스테이블코인으로 유입된다면 은행 준비금이 줄고, 지역은행들의 대출도 줄어 스테이블코인의 국채 수요 확대 효과는 제한적이 됩니다. 또 기존 머니마켓펀드(MMF) 자금이 달러 스테이블코인으로 흘러가도 마찬가지겠지요. 그런 점에서 트럼프나 베선트가 기대하는 부분은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해외자금을 빨아들일 때 단기국채 수요 증대 효과가 생기게 됩니다.
얘기가 복잡해지지만, 1960년대부터 유럽에서 번성한 유로달러(Eurodollar)시장은 지금도14조달러 이상으로 글로벌 금융시스템을 떠받치는 가장 크고 중요한 시장 중 하나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유로달러는 대출로 창출되는 시장인데, 런던이나 싱가포르에 있는 은행이 달러 대출을 일으키면 그만큼 달러 예금이 생겨나 미 연준의 지급준비·규제 밖에서 화폐승수를 만들어 냅니다. 다만 중앙 보고체계도 없고, 미국이 규제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시장에 위기가 오면 결국 연준이 떠안게 됩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달러 유동성 수요 폭증으로 이 시장이 혼란스러워지자 연준은 각국 중앙은행들과 스와프라인을 열어 역외달러시장을 안정시켜야 했습니다. 이렇다보니 미국은 이 유로달러시장을 달러 스테이블코인으로 대체하고 싶어 합니다.
미국 정부가 직접적으로 얘기하진 않지만, 지니어스법에 이어 클래리티법 입법까지 백악관이 나서서 총대를 메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런 셈법입니다. 스테이블코인시장은 미국 정부 도움 없이도 이미 1960년대 유로달러시장과 비슷한 규모까지 성장했는데, 거기에 걸릴 시간은 유로달러의 4분의1도 안 됩니다.
현재 테더(Tether)는 1830억달러 어치의 USDT를 뒷받침하기 위해 약 1870억달러의 자산을 갖고 있습니다. 서클(Circle) 역시 자신이 발행한 달러 스테이블코인인 USDC는 현재 유통 중인 약 719억달러 규모의 USDC를 뒷받침하기 위해 720억달러 이상의 현금성 준비자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실제 테더 한 기업만해도 사우디아라비아와 비슷한 수준으로 미국 국채를 보유해, 보유 규모 기준으로 세계 17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현재 전체 달러 스테이블코인 시가총액이 3100억달러 정도이고 씨티그룹은 그 규모가 2030년까지 1조9000억달러, 최대 4조달러까지 늘어날 수 있을 것으로 점치고 있으니 트럼프와 베선트의 기대를 과하다고 치부할 수도 없습니다. 머지 않아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일본과 영국, 중국이 가진 미 국채 보유량을 앞지를 날이 올 수 있습니다.
미국 정부로선 이처럼 빠르게 성장하는 달러 스테이블코인시장이 든든할 수밖에 없겠지요. 더욱이 이 시장은 미국 통화시스템이 직접 통제할 수도 있고, 아무런 담보도 없는 유로달러와 달리 미 국채 담보까지 갖고 있으니 더할 나위가 없을 겁니다.
이런 관점에서 미 재무부의 국채 바이백 확대 조치 발표는 시기적으로 절묘했습니다. 마침 재무부 조치가 발표된 이날 오전엔 미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가 클래리티법 지연에 대응해 가상자산업계와 함께 자체 규제책을 논의하기 위한 첫 혁신자문회의 자문회의를 열었는데, 이 자리에 예고없이 트럼프 대통령이 참석했습니다. 여기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 의회를 향해 “클래리티법을 통과시켜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단순보유를 제외하고는 이자를 지급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안을 빨리 처리하라는 압박입니다.
또한 이틀 전엔 미 재무부가 공개시한을 한참 넘기고도 차일피일하던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 지니어스법 시행규칙을 공개했습니다. 여기서 재무부는 내년 1월부터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원칙적으로 미국 연방정부 또는 주정부의 라이선스를 취득하면 미국 내 거래소에서 판매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최대 달러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인 테더는 아직도 적격해외발행사 라이선스를 받지 않고 미국 규제를 따르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재무부는 ‘라이선스를 받지 않은 해외 발행 스테이블코인도 내년 1월 이후 미국 판매를 한시적으로 허용하되, 내후년인 2028년 7월부터는 금지하겠다’는 유예조항을 붙였습니다. 테더에게 규제 준수를 통해 미국 내에 들어올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준 셈입니다. 즉, 지니어스법 시행으로 기대하는 정책 효과를 누리기 위해 테더에게 손을 내민 것이고, 이제 테더는 굳이 그 손길을 외면할 이유가 없을 겁니다.
이제 다음주에는 연준의 최대 연례행사인 잭슨홀 경제정책 심포지엄(Jackson Hole Economic Policy Symposium), 속칭 잭슨홀 미팅이 열립니다. 모두가 미 재무부의 바이백 확대 조치에 대해 케빈 워시 연준 의장이 어떤 화답의 메시지를 내놓을지에만 주목하고 있지만, 정작 이번 심포지엄의 큰 주제는 ‘금융 혁신: 결제와 정책에 대한 함의(Financial Innovation: Implications for Payments and Policy)’입니다. 스테이블코인이 글로벌 결제 인프라를 어떻게 바꿔놓을지, 거시경제 정책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주로 다룰 겁니다.
좋든 싫든 스테이블코인은 이미 미국 재정정책과 통화정책, 금융인프라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비단 미국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이제 우리도 동참할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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