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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서울 마포구 밤섬이 폭파되던 날, 중학교 2학년이던 김씨는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있던 중이었다. 다이너마이트(trinitrotoluene·TNT)가 바위와 백사장으로 이뤄진 밤섬을 한순간에 날려버렸다. 지금의 서강대교보다 높았던 고지대 은행나무 옆에 터를 잡고 있던 김씨의 집은 그렇게 사라졌다.
당시 밤섬에는 5만 8000㎡ 넓이의 황토지대가 있었다. 황토밭에 살던 사람은 농사를 지었고 강변 모래밭에 살던 사람은 대개 배 짓는 목수일을 했다. 김씨는 부모가 은행나무 옆 황토밭에 무와 쑥갓을 키워 판 덕에 먹고 사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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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의도 조성하려 49년전 밤섬 폭파
49년전 서울시는 수해를 방지하고 현대식 택지로 조성하기 위해 7533m 길이의 윤중제를 여의도 둘레에 쌓았다. 윤중제를 만드는 데 필요한 모래와 자갈은 밤섬을 폭파해 구했다. 당시 밤섬에 거주하던 62가구 443명의 주민은 마포구 창전동 소재 와우산 기슭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야 했다.
500년 전 조선의 한양 천도와 함께 배 만드는 기술자들이 밤섬에 정착했다. 밤섬을 중심으로 황포돛배 제조업이 발달했다. 당시 지은 배를 진수한 데서 유래한 ‘마포나루배 진수놀이’는 지금도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김씨의 서강초등학교 선배인 서순식(71)씨 부모 직업은 목수였다. 서씨 아버지는 당시 마포목재소에서 지금의 BBS(불교방송) 건물 자리에 있던 마포나루를 통해 목재를 밤섬으로 들여와 목선을 만들었다.
큰 배는 길이와 폭이 각각 20m, 13m정도 됐다고 한다. 서씨는 “배를 짓는 일은 3월에서 10월까지만 가능했다. 배 짓는 목수는 날이 추워지면 일이 없다. 겨우내 놀면 심심할 것 같아 기계공이 됐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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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산 사라진 밤섬 습지로 다시 태어나
사람이 떠난 밤섬엔 철새들이 찾아들었다. 겨울철 밤섬은 몸길이 61cm로 ‘대형오리’라 불리는 흰뺨검둥오리의 보금자리다. 철새 말고도 매, 새홀리기, 말똥가리 등 법정보호종 7종과 원앙, 황조롱이, 솔부엉이 등 천연기념물 3종이 이곳에 서식한다.
밤섬은 최근 25년간 자연퇴적으로 면적이 50% 이상 증가하면서 24만 1000㎡에 달하는 습지가 품은 ‘강 가운데 섬’(하중도(河中島))이 됐다. 버드나무와 갯버들이 빽빽하게 자리 잡은 밤섬은 2012년 ‘물새 서식지로 중요한 습지보호에 관한 협약’에 따라 람사르습지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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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나고 자란 유씨는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20살의 나이로 피난길에 올랐다. 1년 뒤에야 밤섬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유씨 가족은 사라진 집터 위에 움막을 지었다.
폭파 전까지 밤섬은 남쪽으로 지금의 영등포시장까지 모래밭이 이어졌다. 목수일을 접고 기계공이 된 아버지는 한 달에 한 번씩 집에 왔고 유씨는 어머니 대신에 시장을 봤다. 유씨는 “자주 시장 심부름을 다녔는데 영등포시장은 걸어서 50분이 걸리지만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 공덕 시장에 가는데 30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했다.
밤섬 실향민들이 고향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단 두 시간 뿐이다. 유덕문(78) 밤섬보존회 회장은 “2001년부터 실향민에 한해 밤섬 출입을 허용했는데 2012년 람사르습지로 지정되자 서울시에서 이마저도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했다”고 했다.
다행히 밤섬보존회의 항의로 실향민은 1년에 단 한번이지만 고향을 찾을 수 있게 됐다.
유 회장은 “서울시가 정말 밤섬의 환경을 제대로 보호하고 싶다면 서울세계불꽃축제를 열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철새들이 불꽃놀이 폭발음에 놀라 밤섬을 떠난다는 것이다.
2017년 세계불꽃놀이축제는 오는 30일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