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리티법은 암호자산 시장을 어떤 기준으로 규율하고 어느 기관이 감독할지를 정하는 시장구조 법안이다.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의 기존 파생상품시장 감독 권한에 더해, 디지털 상품의 현물 거래소·중개업자 등에 대한 등록·감독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중심 내용이다. 증권에 해당하는 디지털자산에는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규율을 유지하며, 디지털 상품이라도 그 판매가 투자계약에 해당하면 증권법의 적용을 받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암호자산의 법적 성격과 감독기관의 관할을 둘러싼 불확실성을 줄이고, 사업자가 예측 가능한 규칙 안에서 활동하도록 하자는 취지다. 하원은 이미 지난해 7월 17일 찬성 294표, 반대 134표로 이 법안을 통과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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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상원의 의석 구도는 공화당 53석 대 민주당 측 47석이다. 민주당 측에는 민주당 의원단에 참여하는 무소속 의원 두 명이 포함된다. 공화당 의원 전원이 찬성해도 토론종결에 필요한 60표에는 7표가 부족하다. 공화당이 다수당이고 대통령도 공화당 소속이지만, 일반 법안의 처리를 위해서는 민주당 측의 협조가 필요하다. 다수당 내부의 결속과 초당적 합의가 함께 요구되는 구조다.
이번 표결에서 눈길을 끈 것은 공화당 소속 톰 틸리스 의원의 반대표다. 상원 규칙상 표결에서 이긴 쪽에 투표한 의원은 재심의를 요청할 수 있다. 토론종결 동의가 부결됐으므로 반대한 쪽이 이긴 쪽이다. 틸리스는 반대표를 던진 뒤 재심의 동의를 제출해 법안을 다시 추진할 절차적 경로를 남겼다. 따라서 그의 반대표를 법안에 대한 실질적 반대와 동일하게 해석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암호자산의 규제 기준을 명확히 하자는 법안이 왜 충분한 지지를 얻지 못했을까. 주요 정치적 쟁점 중 하나는 공직자의 이해충돌 문제였다. 트럼프 대통령과 가족의 암호자산 사업이 논쟁의 중심에 놓이면서, 산업 육성 정책과 공직자의 사적 이익을 어떻게 분리할지가 중요해졌다. 정책 결정자가 관련 사업에서 수익을 얻는다면 규제 정책의 공정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산업의 법적 지위를 명확히 하는 입법이 공직자의 경제적 이해관계까지 다뤄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민주당 측은 법안의 윤리 규정이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신규 암호자산의 발행이나 후원을 제한하더라도 기존 사업의 수익이나 간접적인 사업 관계까지 충분히 규율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규정을 누가 집행하고 위반 책임을 어떻게 물을 것인지도 중요하다. 결국 쟁점은 정책 결정 권한과 사적 수익이 연결되는 경로를 얼마나 실효적으로 차단하느냐에 있었다.
또 다른 주요 장애물은 스테이블코인 보상을 둘러싼 갈등이었다. 은행권은 스테이블코인을 보유하는 것만으로 이자에 준하는 보상을 받을 수 있다면, 은행 예금이 스테이블코인으로 옮겨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반면 암호자산 업계에는 보상이 서비스 경쟁력과 이용자 확보의 중요한 수단이다. 보상의 허용 범위는 산업 간 경쟁조건을 정하는 문제로 이어졌다.
이 문제는 기존 금융산업 보호와 새로운 서비스 허용 중 하나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이용자에게 더 나은 조건을 제공하는 경쟁을 장려하면서도 예금과 대출의 연결 구조가 바뀔 때 생길 위험을 검토해야 한다. 발행자가 지급하는 이자와 거래 플랫폼이 제공하는 보상을 어떻게 구분할지도 중요하다. 명칭이 달라도 같은 경제적 기능을 수행한다면 규제의 형식보다 실질을 살펴야 한다.
투자자 보호와 자금세탁 방지 규제를 어느 수준까지 마련할지를 두고도 의견이 엇갈렸다. 민주당 의원들은 이용자 보호와 자금세탁 등 불법 금융활동을 막기 위한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감독기관의 관할을 나누는 것만으로 이용자 보호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거래 과정에서 어떤 정보를 제공하고, 고객 자산을 어떻게 관리하며, 불법 거래를 어떻게 탐지할 것인지가 함께 정해져야 한다. 사업자에게는 규칙의 예측 가능성이, 이용자에게는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실효성이 중요하다.
클래리티법이 언제 통과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재심의 동의로 절차적 가능성은 남았지만, 통과를 위해서는 추가 지지를 확보해야 한다. 당시 찬성은 49표로 토론종결에 필요한 60표에 11표가 부족했다. 공화당 의원 전원이 찬성하더라도 민주당 측에서 최소 일곱 명의 협조가 필요하다. 재표결 날짜를 잡는 것보다 반대 의원들이 지지할 수 있는 타협안을 만드는 것이 먼저다.
11월 중간선거 이후 새 의회가 출범하기 전까지 열리는 ‘레임덕 회기’는 현 의회 임기 안에 법안을 처리할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짧은 일정 안에 쟁점 조항을 조정하고 상하원이 같은 문안을 승인해야 한다. 현 의회에서 처리를 끝내지 못하면 새 의회에서는 원칙적으로 법안을 다시 발의해 절차를 밟아야 한다.
본안 심의에 들어가더라도 통과가 자동으로 보장되지는 않는다. 본안 단계에서도 토론을 종결하고 최종 표결로 나아가기 위해 60명의 찬성이 다시 필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민주당 의원들이 수정안에 지지를 표명하는지, 은행권과 암호자산 업계가 보상 규정의 절충점을 찾는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인 문안과 지지 의원의 변화가 통과 가능성을 판단하는 근거가 된다.
이번 제동을 미국의 암호자산 육성 포기로 단정하는 것은 성급하다. 규제 기준을 명확히 하자는 목표에 동의하더라도 공직자의 사익 제한, 금융산업 간 경쟁, 투자자 보호의 구체적인 기준에는 의견이 갈릴 수 있다. 클래리티법의 미래는 산업의 발전을 뒷받침하면서도 정책의 공정성과 이용자의 신뢰를 확보할 타협안을 마련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법안의 이름처럼 시장에 명확성을 주려면, 먼저 충돌하는 이해관계를 조정할 정치적 합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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