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제공] 터키는 관광객을 위한 '종합선물세트'다. 역사·문화·자연·음식, 관광거리를 빠짐 없이 골고루 즐길 수 있는 나라가 바로 터키. 종합선물세트 포장을 벗기고 관광거리를 하나씩 맛보았다.
역사-에페스 사도 바울과 마리아, 요한이 머물던 곳
에페스(Efes)는 로마제국 시절 인구 25만명이 넘던 대도시로, 로마의 소(小)아시아 지역 행정수도였다. 지금은 에게해에서 1㎞ 정도 내륙으로 들어서 있지만, 그때만 해도 에게해에 인접한 항구로서 교역 중심지였다. 햇볕 따뜻한 4월이면 다산(多産)의 여신 아르테미스에게 소원을 비는 사람들이 이 도시에 있던 거대한 신전에 몰렸다.
에페스의 은(銀)세공업자들에게 2000년쯤 전 나타난 사도 바울은 골칫거리였다. “신은 하나 뿐”이며, 그 신의 아들 예수가 전해준 복된 말씀을 외치는 바울은, 아르테미스에게 바치는 은제물로 떼돈을 벌던 은세공업자들의 생계마저 위협했다. 이들의 음모로 죽을 뻔한 바울은 간신히 도망쳐 목숨을 구했다.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 에페스 기독교인들에게 쓴 편지가 ‘에베소서(書)’이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사도 요한도 에페스에 머물었다.
아르테미스 신자들과 무역상인들로 복작대던 에페스는 관광객들로 다시 전성기다. 아르테미스 신전과 행정기관이 있었던 도시 위쪽에서부터 옛날 항구가 있던 외곽까지, 도시를 관통하는 길을 따라 내려가니, 에페스가 생생하게 살아난다. 창녀의 집 앞 대리석 바닥에는 발자국이 새겨져 있다. 발자국보다 발이 작으면 미성년자라 ‘입장 불가’였다.
백미(白眉)는 역시 ‘켈수스(Celsus) 도서관’이다. 켈수스는 에페스 집정관으로, 아들 아퀼라(Aquila)가 서기 135년 아버지 무덤을 세우려다 승인을 얻지 못하자 대신 기념 도서관을 지었다. 켈수스는 도서관 지하에 안치됐다. 대리석으로 지은 도서관에는 세 개의 문이 있는데, 문 양 옆으로 기둥이 두 개씩 있다. 자세히 보면 건물 양 끝에서 가운데 갈수록 기둥이 조금씩 크고 높아진다. 건물이 더욱 웅장하게 보이도록 일종의 눈속임 기법을 썼다.
▲ 에펠스 켈수스 도서관
자연-카파도키아 수백만년 전 화산폭발 후 만들어진 풍광
‘요정이 사는 마을 같다’, ‘우주선을 타고 화성이나 목성에 온 것 같다’. 그만큼 기괴하고 매력적인 풍광이다. 유네스코가 카파도키아(Kapadokya)를 세계문화·자연유산으로 지정한 까닭이리라.
수백만년 전 화산이 폭발하면서 땅 위에 진흙, 먼지, 재가 켜켜이 시루떡처럼 쌓였고, 그 위로 용암이 흘러 돌처럼 굳었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면서 진흙과 먼지, 재로 된 연약한 바위가 깎여나갔다. 용암에 덮인 부분은 견고하게 기둥으로 남았다. 과정이 반복되면서 세상 어디에도 없는 풍광을 만들었다.
카파도키아는 기독교 성지(聖地)이기도 하다. 세상을 피해 종교에 몰두하려는 은둔자들이 이곳에 바위 교회, 수도원을 세웠다. 카파도키아 전역에 바위 교회가 2000여개. 이중 200여개가 몰려있는 괴레메(G?reme)는 통째로 ‘야외 박물관’(Open Museum)으로 지정됐다.
▲ 파묵칼레 히에라폴리스 유적, 카파도키아
이슬람문화-이스탄불 힘있는 사람들이 세운 이슬람사원
이스탄불은 ‘모스크(이슬람사원)의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술탄(황제)과 황후, 파샤(재상) 등 오스만제국 시절 힘과 돈을 가진 사람이라면 앞다퉈 모스크를 세웠다. 명예 때문만은 아니었다. 알라(신)가 준 부와 행운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이른바 사회환원 차원에서 모스크를 세웠다.
모스크에는 예배당만 있는 것이 아니다. 메드레세(medrese·교리학교), 이마레트(imaret·무료급식소), 하맘(hamam·공중탕), 카라반사라이(caravansarai·카라반), 한(han·가게 병원 숙박시설)과 같은 다양한 부속시설이 예배당을 둘러싼 복합건축물이다.
관광객은 대개 ‘술탄 아흐메트 자미(camii·터키어로 모스크를 의미한다)’만 구경하지만, 모스크를 제대로 보려면 좀 떨어진 ‘쉴레이마니예(Suleymaniye) 자미’를 시간 내 가볼 만하다. 쉴레이마니예 자미는 오스만제국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술탄(황제) 쉴레이만 1세가 1550년~1557년 세웠다. 이스탄불에서 가장 크고, 원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터키음식 전반적으로 수준 높지만 최고는 이스탄불에
터키요리는 프랑스, 중국과 함께 세계 3대 요리로 꼽힌다. 그만큼 종류가 다양하고 요리법이 복잡하다. 가지 요리만도 22가지. ‘고기 구이요리’를 총칭하는 케밥(kebab)은 넓고 깊은 터키요리의 일부일 뿐이다. 터키 어디를 가건 음식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다. 그래도 역시 최고는 이스탄불에 몰려있다. 톱카프 궁전, 소피아 사원, 술탄 아흐메트 자미가 있는 유럽쪽 구시가지보다는 보스포러스 해협 건너편 베욜루(Beyoglu) 지역이 낫다. 정통 터키·오스만음식을 맛보고 싶다면 ‘하즈 압둘라’(Haci Abdullah·212-293-8561), ‘투그라 레스토랑’(Tugra·212-258-3377)이 훌륭하다. 둘 다 100년 넘는 전통을 자랑한다. 하즈 압둘라는 요리 한 접시 가격이 미화 3~8달러선, 투그라 20~40달러선.
구시가 쪽에서는 쉴레이마니예 자미 부속 이마레트를 식당으로 개조한 ‘다뤼지야페’(Daruzziyafe·212-511-8414)가 맛, 분위기 모두 훌륭하다. 아케이드로 둘러쌓인 정원에는 꽃과 나무가 우거졌고, 가운데 작은 분수에서 졸졸 솟는 물소리가 상쾌하다. 요리 2~6달러선. 커피(약 1달러)만 마셔도 된다. ‘고등어 샌드위치’도 1달러 정도로 싸고 맛있다. 그릴에 구운 고등어를 바게트빵에 끼워주는 ‘고등어 샌드위치’를 파는 배가 갈라타(Galata) 다리 주변 다닥다닥 붙어있다.
터키 과자는 혀가 아리도록 달다. ‘터키쉬 딜라이트’(Turkish Delight)라고 알려진 로쿰(lokum)이 특히 유명하다. 피스타치오와 같은 견과류를 고소하게 박아 넣거나, 레몬과 같은 과일즙으로 새콤달콤하게 맛 낸 쫄깃쫄깃한 젤리 과자다. 1777년 문을 연 ‘알리 무히딘 하즈 베키르’(Ali Muhiddin Haci Bekir·212-522-0666)가 원조 가게. 들어간 재료에 따라 1㎏ 당 2~6달러. 기념품으로 알맞다. ‘스파이스 바자’(Spice Bazaar) 옆이라 찾기 어렵지 않다.
[여행수첩]
●터키는 한반도 3.5배 면적인 큰 나라다. 인구 7100만명. 대부분 무슬림이지만 많이 서구화돼 종교적 규율이 엄격하지 않다. 수도는 앙카라.
●시간: 3월말~10월 말은 서머타임을 적용, 한국보다 6시간 늦다. 원래 7시간 늦다.
●돈: 인플레가 심하다. 2000년~2002년 매년 무려 100%였다. 1달러=1,400,000터키리라(TL)까지 치솟기도 했다. 터키정부는 2005년 1월 1일 화폐 액면단위를 100만분의 1로 줄이는 화폐개혁을 단행했고, 지난해부터 인플레를 7%대로 붙들고 있지만 아직 불안하다. 기사 중 가격을 달러로 표기한 건 이런 이유에서다. 화폐개혁 후 새로운 통화를 ‘예테른’(YTL)이라 부른다. 1YTL=800원~850원 가량이다.
●카파도키아에서는 열기구 투어를 꼭 타볼 것! 1인당 200달러로 부담스런 가격이지만, 열기구에서 내려다보는 순간 돈 생각은 싹 사라진다. 투어는 오전 6시 30분 이륙해 한 시간 정도 진행된다. 자세한 정보는 www.goremeballoons.com
●쇼핑팁: 무조건 깎아라! 70% 정도에 사면 손해보지 않는 셈이다. 50%도 충분히 가능하다. 대신 서두르면 된다. 탁월한 장사꾼인 터키인들은 흥정을 즐긴다. 가게주인이 내주는 터키 홍차를 홀짝이며 느긋하게 흥정한다.
●터키 여행 한글 안내서 17종을 터키정부에서 최근 냈다. 터키항공 한국지사에서 무료로 구할 수 있다. (02)757-0280
●한국인 배낭여행객이 최근 이스탄불에서 사망했다. 배낭여행객은 어디서나 위험에 노출되기 쉽다. 터키 정부는 “관광객 안전 확보를 위해 더 주의하겠다”고 밝히면서 “현금을 많이 가지고 다니지 말고, 혼자 외진 곳을 다지니 말고, 과도하게 친절을 베푸는 사람을 경계하고, 히피 스타일의 눈에 띄는 복장을 피해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