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힘은 법이 부여한 권한과 부패 척결을 요구한 정치권력·여론 속에서 커졌다. 성역 없는 수사에는 박수가 쏟아졌지만, 선택적 수사와 정치적 편향 논란은 신뢰를 흔들었다. 전직 대통령의 죽음과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의 등장, 그 대통령이 다시 검찰에 기소된 과정은 검찰과 정치권력의 관계를 돌아보게 한다.
이데일리는 추석 연휴 네 차례에 걸쳐 검찰 권력의 궤적을 짚는다. 김현철 구속과 ‘논두렁 시계’ 논란,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의 등장, 검찰청 폐지 이후의 과제를 차례로 살핀다. 검찰이 신뢰를 잃은 이유와 새 수사·기소 기관을 견제할 방안을 묻는다. 간판은 바뀌어도 사건과 피해자는 남는다. 개혁의 성패는 이들에게 더 공정한 수사와 충실한 피해 구제를 보장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이데일리 백주아 김현재 기자] “이쯤 되면 막가자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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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6년 뒤인 2009년 4월 30일, 노 전 대통령은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 출석했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금품 제공 의혹을 수사하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중수부)가 그를 불렀다. 봉하마을을 떠나며 국민에게 사과한 그는 대검 청사 앞에서도 “면목 없는 일이죠”라고 말했다. 검찰 개혁을 추진했던 전직 대통령이 검찰의 조사를 받는 처지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수사는 법원의 유무죄 판단에 이르지 못했다. 그해 5월 23일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다. 수사 과정에서 나온 ‘논두렁 시계’라는 말은 이후에도 남았다. 시계를 받았다는 의혹과 이를 어디에 버렸는지에 관한 보도, 그 정보가 언론에 전달된 경위는 서로 다른 문제였다. 하지만 이들은 하나의 표현으로 묶여 노 전 대통령을 둘러싼 공방에서 반복됐다.
개혁을 논의하던 대통령, 중수부 피의자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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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는 중수부 폐지와 별도의 고위공직자 비리 수사기구 설치, 검경 수사권 조정 등을 논의했다. 그러나 검찰의 반발과 정치권의 이견 속에 핵심적인 권한 재편은 임기 안에 실현되지 못했다. 정치권력의 수사 개입을 줄이는 것과 검찰 자체의 권한을 분산하는 것은 별개의 과제로 남았다.
퇴임 뒤 노 전 대통령을 향한 수사는 박연차 전 회장의 정관계 금품 제공 의혹에서 확대됐다. 검찰은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통해 권양숙 여사 측에 전달된 100만 달러와 조카사위 연철호씨에게 송금된 500만 달러의 성격을 추적했다. 가족에게 전달된 돈을 노 전 대통령이 알고 있었는지, 대통령의 직무와 관련한 대가였는지가 핵심 쟁점이었다. 노 전 대통령 측은 재임 중 인지 여부와 돈의 성격 등을 놓고 검찰과 다퉜다.
전직 대통령도 범죄 혐의가 있다면 수사 대상이 될 수 있었다. 문제는 혐의를 확인하는 과정과 그 내용을 공개하는 방식이었다. 검찰이 확보했다는 진술과 가족의 금품 거래가 잇따라 보도되는 동안 수사기관의 의심과 확인된 사실을 구분할 필요성도 커졌다.
시계 수수 의혹은 어떻게 ‘논두렁’ 보도가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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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3일 SBS는 한발 더 나아갔다. 권 여사가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고 노 전 대통령이 검찰에서 진술했다는 내용이었다. 보도는 시계의 행방을 구체적인 장소와 연결했다. 고가의 선물을 받았다는 의혹에 이를 감추거나 없애려 했다는 인상을 더하는 서술이었다. ‘논두렁’이라는 표현은 복잡한 금품 거래와 법적 쟁점을 대신해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 됐다.
노 전 대통령 측은 곧바로 ‘논두렁’이라는 이야기는 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이후 수사 책임자였던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도 노 전 대통령이 권 여사가 시계를 밖에 버렸다는 취지로 말했을 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보도에 등장한 구체적인 장소가 실제 진술에서 나온 것인지부터 다툼의 대상이 됐다.
시계 수수 여부와 처분 경위, ‘논두렁’이라는 표현의 출처는 각각 확인해야 할 사안이었다. 시계를 받거나 버렸다는 진술이 있다고 해서 보도 속 장소까지 사실로 확인되는 것은 아니었다. 반대로 보도의 출처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금품 수수 의혹에 대한 법적 판단이 대신 내려지는 것도 아니었다.
보도 경위는 수년 뒤 다시 조사 대상이 됐다. 2017년 10월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이인규 당시 중수부장에게 고가 시계 수수 의혹을 언론에 흘려 망신을 주는 선에서 활용하고 불구속 수사하는 것이 좋겠다는 취지로 언급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수사 정보가 전직 대통령의 평판에 타격을 주는 수단으로 논의됐다는 조사 결과였다.
다만 이 결과가 국정원이 ‘논두렁’이라는 표현을 만들어 SBS에 전달했다는 경로까지 입증한 것은 아니었다. 같은 해 12월 공개된 SBS 진상조사위원회 보고서는 국정원의 해당 보도 개입 여부와 ‘논두렁’ 표현의 출처를 명확히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취재기자는 대검 중수부 관계자에게 들었다고 진술했지만, 조사위는 수사기록을 열람하지 못했고 당시 사장과 보도국장도 조사에 응하지 않았다. 보고서는 검찰 이외의 관계자에 대한 확인 취재가 부족했던 점도 지적했다.
공방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국정원 배후설을 제기해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한 이 전 부장은 2022년 10월 검찰에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다만 이 처분이 국정원의 보도 개입을 사실로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2023년 3월 회고록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를 펴내 수사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시계 보도에 청와대와 국정원이 개입했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노무현재단은 일방적인 주장이라며 고인과 유가족을 향한 2차 가해라고 반발했다.
법원 판단 없이 끝난 수사…남은 것은 수사 방식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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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거 이후에는 수사의 정치적 의도와 피의사실 공개를 둘러싼 책임론이 커졌다. 수사 도중 공개된 정보가 피의자의 명예와 방어권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를 따져야 한다는 문제였다. 당시 검찰 측은 국민의 알권리와 오보 방지를 위해 수사 상황을 제한적으로 설명했다는 입장을 폈다. 그러나 공익을 위한 수사 상황 설명과 확인되지 않은 진술의 유출은 구분돼야 했다.
수사기관이 어떤 정보를 공개하고 무엇을 공개하지 않는지에 따라 사건을 바라보는 여론은 달라질 수 있다. 언론 역시 취재원의 말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진술의 맥락과 반론을 확인할 책임이 있었다. ‘논두렁 시계’ 논란은 수사기관과 언론의 관계까지 검증 대상으로 남겼다.
중수부는 2013년 폐지됐다. 그해 4월 23일 대검 청사에서 현판이 내려갔고, 이후 대검에는 일선 검찰청의 특별수사를 지휘·지원하는 반부패부가 들어섰다. 직접수사는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등 일선 조직에서 이어졌다. 총장 직할 수사조직의 폐지가 검찰의 직접수사 기능 전체를 없앤 것은 아니었다.
노 전 대통령 수사가 남긴 질문도 조직 하나의 폐지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누구를 수사할 것인가에 더해 어떤 방식으로 조사하고, 무엇을 공개하며, 그 과정의 잘못에 누가 책임질 것인가가 남았다. ‘논두렁 시계’는 노 전 대통령의 혐의를 확정한 판결문 속 표현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사건을 대표하는 말로 남았다는 사실은 수사와 보도가 법원의 판단에 앞서 한 사람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굳힐 수 있음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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