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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밖 호실적 KEB하나銀…특허 담보대출 문 열릴까

김정남 기자I 2019.07.14 12:00:00

KEB하나은행, 석달새 IP담보대출 77건
많아야 10여건 他 은행들보다 압도적
민간 주도의 IP금융 시대 열릴까 ''촉각''
실적보다 출시에 의미…일각선 회의론

지성규 KEB하나은행장.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수술용 의료용품을 만드는 제조하는 중소기업 A사. 이 회사는 규모가 작은 탓에 부동산 혹은 기계류 같은 담보 물건이 없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던 중 지난 2015년 IBK기업은행으로부터 의료용품 특허를 담보로 10억원의 대출을 받았다. 특허권, 상표권, 저작권 등을 통칭하는 지적재산권(IP)을 외부평가기관으로부터 가치평가를 받고 이를 담보로 돈을 빌린 것이다.

A사 측은 “대출금으로 신규 제품의 생산라인을 구축했다”고 했다. A사는 이를 통해 해외 시장에 진출했고 그 사이 매출액은 2014년 13억원에서 2016년 20억원으로 증가했다.

벤처·중소기업에 대한 혁신금융 마중물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IP담보대출 시장이 꿈틀거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민간 금융권 전반의 기류가 냉랭한 와중에 유독 KEB하나은행이 대출 실적을 확 늘리고 있어서다. A사처럼 그간 IP담보대출은 국책은행 중심이었지만 앞으로 민간 자본도 들어올 기미가 보이는 것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IP 같은 무형자산을 평가하는데 따른 리스크가 작지 않다는 점에서 회의론도 나온다.

◇KEB하나은행, 석달간 IP대출 77건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4월 IP담보대출을 출시한 KEB하나은행은 4월 5건(52억원), 5월 14건(87억원), 6월 58건(515억원)의 실적을 기록했다. 총 77건, 654억원이다.

금융권은 다소 놀라는 눈치다. KEB하나은행의 석 달 대출 실적이 불과 몇 년 전 한해 시장 규모와 맞먹기 때문이다. A사가 대출 받았던 2015년 당시 IP담보대출은 KDB산업은행 482억원, IBK기업은행 302억원 정도였다. 한시적으로 출시했던 KB국민은행(57억원)까지 하면 841억원 규모. IP를 담보로 한 기업 대출은 철저히 국책은행 주도였던 셈이다. 그나마 2016년에는 시장 규모가 202억원으로 쪼그라들었으며, 민간 자본도 거의 자취를 감췄다. 시중은행 한 인사는 “과거 IP담보대출은 부동산 같은 유형자산 담보가 소진된 이후 추가로 설정하는 끼워넣기에 불과했다”고 전했다.

KEB하나은행 관계자는 “대출 실적을 늘린 건 중소·벤처기업에 대한 금융 지원을 위해 적극 영업을 한 결과”라고 말했다. KEB하나은행은 IP를 비롯해 기계류, 설비류 등 유무형 자산이 편리하게 담보로 활용될 수 있도록 여신시스템을 개편하는 작업도 추진하고 있다.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과 지성규 KEB하나은행장 등은 IP담보대출 같은 혁신금융에 힘을 크게 실어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은 6월 초 출범한 하나금융 혁신금융협의회에서 직접 의장을 맡고 있다.

당초 금융권에서는 민간 자본의 IP담보대출이 생색내기에 그칠 것으로 봤다. 실제 비슷한 시기 상품을 내놓은 신한은행, KB국민은행, 우리은행의 대출 실적은 많아야 10여건으로 전해졌다. 5건 안팎인 은행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액수 역시 수십억원대에 그치고 있다. 6월 말 출시를 목표로 했던 NH농협은행은 한 달가량 계획을 연기했다. 처음 해보는 것이고 리스크도 있다 보니 소극적인 건 당연하다는 게 대체적인 반응이다.

◇하반기부터 대출 경쟁 치열해질듯

그런 점에서 KEB하나은행의 예상을 깬 영업 전략은 IP담보대출의 물꼬를 틀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또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 대출을 원하는 벤처·스타트업 수요는 확인되고 있다”며 “기술평가 역량만 축적되면 하반기부터는 경쟁이 치열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이지언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IP 사업화를 촉진하려면 IP 담보 등 IP 금융이 활발하게 공급돼야 하지만 한국은 정책금융 중심”이라며 “민간금융은 부족한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미국의 IP담보대출은 2011~2016년 6년간 94만7907건을 기록했다. 연평균 15만건이 넘는 수치로 민간이 그 중심에 있다.

다만 은행권에서는 회의론도 동시에 있다. 정부 방침에 따라 일단 따라가고 보자는 식의 분위기가 없지 않은 탓이다. 대출 실적보다 출시 자체에 더 의미를 두는 분위기도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IP담보대출 역량이 부족하다보니 대규모 부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그런 전례가 남을 경우 정부가 압박을 해도 시늉만 하고 끝날 수 있다”고 했다. 실패 경험이 쌓이는 과정을 통해 자생적으로 시장이 형성돼야 한다는 뜻이다.

■IP담보대출 = 시중은행이 기업의 특허권, 상표권, 저작권 등 지적재산권(IP)에 대한 외부평가기관의 가치평가를 담보로 기업에 대출을 해주는 것이다. 부동산, 기계류, 설비류 등 유형자산 담보가 부족한 중소·벤처기업이 자금을 원활하게 조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IP 가치에 대한 평가 역량이 아직 부족해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크다는 단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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