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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모두 '승복'은 안 한다…국론 분열 부추기는 정치[국회기자24]

김한영 기자I 2025.03.29 08:00:00

정치권, 이익될 때만 상대 향해 '승복' 압박
與는 '헌재 승복론', 野는 '李 2심 승복론'
사법의 정치화 우려 커지는데 공론화는 '0'
전문가 "거대 양당이 국론 분열 부추겨"

[이데일리 김한영 기자] 최근 정치권의 뜨거운 키워드는 ‘승복’이었습니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승복해야 한다고 요구하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26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2심 재판에서 무죄 판결이 나오자, 정반대의 상황이 연출됐습니다. 결국 각 정치 진영이 자신에게 유리한 경우에만 ‘승복’을 외치는 모습을 보이면서, 정치권에서는 사법의 정치화가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왼쪽부터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사진 = 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노진환 기자)
◇與野, 유리하면 ‘승복하라’ 불리하면 ‘반발’

‘승복’을 정치 공세의 수단으로 먼저 활용한 것은 국민의힘입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16일 기자회견에서 헌법재판소의 윤 대통령 탄핵 심판과 관련해 “승복하겠다는 게 당의 입장”이라며, “이재명 대표도 승복할 의사가 있느냐”고 되묻기도 했습니다. 같은 당 의원들이 헌재에 탄핵 기각이나 각하를 요구하는 데 대해서는 개인 의견이라며 제재하지 않았습니다. 일명 ‘투트랙’ 전략으로 보이는 대목입니다.

이들의 승복 공세는 이 대표에 대한 공직선거법 2심 판결에 대해서도 이어졌습니다. 권 원내대표는 이 대표의 판결을 하루 앞둔 지난 25일 “이 대표는 선거법 항소심 판결에 승복하겠다는 대국민 약속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 대표가 피선거권 상실형을 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였을 겁니다.

하지만 26일 이 대표가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상황은 정반대로 전개됐습니다. ‘승복하라’고 요구하던 국민의힘은 다음 날인 27일 “재판부가 정치적으로 편향됐다”며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노골적으로 드러냈습니다.

이에 민주당도 ‘승복’이라는 키워드를 역이용해 반격에 나섰습니다. 같은 날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권 원내대표가 승복을 요구하더니 무죄가 나오자 판사를 공격하고 있다”며 국민의힘을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민주당 역시 자유롭지만은 않습니다. 이 대표는 “(헌재의 탄핵 심판 결과에 대해) 당연히 승복할 수밖에 없다”고 밝히면서도, 당 내에서는 여전히 헌법재판소 앞에서 윤 대통령의 파면을 요구하는 시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당 지도부가 이를 제지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표면적 승복과 내부 압박이 병행되는 이중적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지난 26일 헌재를 찾아 8명의 재판관 이름을 일일이 거론하며 “헌법파괴자 ‘파면’인지, 민주공화국의 ‘파멸’인지, 답은 간단하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 대표 등 지도부는 승복 입장을 밝히고 있으나, 탄핵 인용을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당내 목소리에 대해서는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고 있는 셈입니다. 이는 국민의힘의 ‘투트랙’ 전략과 유사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21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교문 안에서 ‘윤석열 퇴진 긴급 고려대 행동을 준비하는 모임’ 주최로 탄핵 찬성 집회가, 교문 밖에서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고대인들’ 주최로 탄핵 반대 집회가 열리고 있다.(사진 = 연합뉴스)
◇전문가 “국론 분열 부추기는 정치권” 비판

이에 따라 정치권 내 사법의 정치화에 대한 우려는 커지고 있습니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중대한 결정을 앞두고 국론이 분열된 상황에서, 거대 양당이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과거와는 다른 이상한 기류가 형성됐다”며 “이전에는 사법 판결에 불만이 있어도 존중하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불리한 결과에 대해 판사를 직접 공격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이 같은 우려에도 여야 할 것 없이 공론화는 이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 대표가 무죄 판결을 받은 지난 26일, 이 문제에 대해 입장을 밝힌 정치인은 범여권 소속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뿐이었습니다. 그는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라는 고질적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실천하겠다”는 짧은 성명을 냈습니다.

사법의 정치화는 오랫동안 정치권이 안고 있던 구조적 문제입니다. 제도권에서는 사법·행정·입법 간 경계를 명확히 하기 위한 다양한 연구와 제안이 있었습니다. 헌법재판 기준을 명확히 하기 위한 입법화 논의, 제도 보완 연구 등도 꾸준히 진행돼 왔습니다.

그러나 이를 두고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엇갈립니다. ‘제도로 충분히 방지할 수 있다’는 입장과, ‘거대 정당들의 태도 문제일 뿐, 제도의 한계는 아니다’라는 시각이 맞섭니다. 전문가들 중 “제도를 우회할 수 있는 수단은 충분하다”는 회의론도 나옵니다.

한편 대통령 탄핵 심판을 앞두고 국론은 여전히 분열된 상태입니다. 이에 따라 양 진영 지지자들 간 비판의 수위도 갈수록 거세지고 있습니다. 이렇다 할 공론화나 공개 토론은 없이 전운만 감돌고 있는 형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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