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경쟁 관계 中企 옆에 공장 짓는 대기업

강경래 기자I 2020.09.10 08:38:04
[이데일리 강경래 기자] “굴지 대기업이 경쟁 관계에 있는 중견기업을 대상으로 한 횡포로 보입니다.”

최근 한 외신 보도가 있었다. 말레이시아 사라왁뉴스에 따르면 한 한국 업체가 말레이시아 사라왁 지역에 28억링깃(약 8000억원) 규모로 투자하기로 했다. 관련 보도에서 아왕 텐가(Awang Tengah) 말레이시아 도시개발 및 천연자원부 부총리는 “말레이시아 정부는 한국 업체가 추진하는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실행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이렇듯 말레이시아 사라왁 지역에 부지를 마련하고 공장을 지으려는 업체는 국내 한 대기업 계열사인 S사로 알려졌다. S사는 전기자동차 배터리 등에 쓰이는 소재인 동박(일렉포일)에 주력하는 업체다. 이렇듯 국내 대기업이 동남아 등 해외에 생산거점을 두고 가격경쟁력 등을 강화하려는 전략은 반길만한 일로 비쳐진다. S사 관계자는 “(말레이시아를 포함한) 아시아와 유럽, 미국 등 여러 공장 후보지를 검토 중이지만 아직 확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문제는 S사가 공장 건설을 검토 중인 부지 바로 옆에 경쟁 관계에 있는 국내 중견기업 공장이 위치한다는 점이다. 일진머티리얼즈(020150)는 지난해 1월 사라왁 지역에 공장을 짓고 현재 동박을 연간 2만톤 규모로 생산 중이다. 일진머티리얼즈 말레이시아 공장은 현지 인력을 포함해 현재 임직원 약 300명을 두고 있다.

일진머티리얼즈는 전북 익산 공장과 함께 말레이시아 공장 등 동박 생산을 이원화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이를 통해 현재 삼성SDI와 LG화학을 비롯해 중국 BYD와 CATL 등 국내외 유수 업체들과 거래하며 경쟁력을 키워가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S사가 말레이시아 공장 인근에 생산거점 구축을 검토하면서 일진머티리얼즈 내부에서는 긴장감이 감도는 상황이다.

일진머티리얼즈 임원은 “현재까지 파악한 S사 말레이시아 부지는 일진머티리얼즈 공장 바로 옆에 위치한다. S사가 공장을 구축할 경우 담벼락을 사이에 두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동박은 현지 온도와 습도 등 기후 조건에 매우 민감한 소재다. 일진머티리얼즈는 사라왁 현지 기후에 맞는 제품 생산을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는데, 현지 엔지니어와 숙련 기술자들이 유출된다면 S사는 이러한 시행착오를 겪지 않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내 동박산업 측면에서 볼 때도 이 같은 상황이 달갑지만은 않다. 동박시장은 대만 장춘(CCP)이 12.9%로 글로벌 1위 자리를 구축한 가운데 일진머티리얼즈가 9.7% 점유율로 2위 자리를 이어간다. 이어 일본전해(니폰덴카이)와 후루카와 등 일본 업체들이 일진머티리얼즈 자리를 위협하는 상황이다. 이렇듯 글로벌 경쟁이 일어나는 분야에서 국내 대기업 계열사가 중견기업 바로 옆에 공장을 짓고 실제로 인력 유출 등이 일어날 경우 이는 결과적으로 국내 동박산업에 득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중견기업계 관계자는 “중견기업 혹은 중소기업이 오랜 연구개발 끝에 완성한 기술과 함께 관련 인력을 대기업이 빼가는 상황은 비일비재하다”며 “이런 오랜 관행이 없어져야 국내 모든 산업이 정상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진머티리얼즈 말레이시아 공장(가운데) 인공위성 사진. 아래 표시된 부분은 국내 대기업 계열사 S사가 확보하기 위해 추진 중인 공장 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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