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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죽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부대 측에 자살현장과 아들이 당시에 입었던 옷을 보여 달라고 했다. 군은 이를 묵살했다. “장례를 빨리 치르라”는 닦달만 돌아왔다. 어떤 군관계자도 그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았다. 억울해서 장례를 치를 수가 없었다.
아들이 군 복무 중 사망했지만 고씨와 비슷한 이유로 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유족이 상당하다. 최근 3년간(2010~2012) 사망한 군인 10명 중 1명의 유골은 의혹에 둘러싸인 채 각 군 보급대대에 방치돼 있다. 대부분 군 당국의 조사결과에 유족이 의혹을 제기한 경우나, 사망자의 순직인정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6일 김광진 민주통합당 의원이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가족의 품을 찾지 못한 군인의 유골은 총 146구에 달한다. 이중 가장 오랫동안 장례를 치르지 못한 유골은 42년 전 사망한 故박모 일병의 것이다. 박 일병의 유족은 아들이 ‘변사’했다는 군 당국의 발표에 불복, 사인 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또 유족이 사망 군인의 장례를 거부하는 일은 최근 3년간 꾸준히 늘고 있다. 인수되지 않은 유골은 2010년 8구였지만, 이후 매년 16구, 23구, 26구로 점차 늘고 있다. 아들이 죽은 이유를 인정하지 못하거나, 아들의 명예회복을 원하는 유족이 매년 1.4~2배씩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김광진 의원은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가 해산된 뒤로 유족들이 제기하는 의혹은 해소되지 못하고 늘고 있다”며 “국방부는 유족 입장에서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군은 논란이 계속되자 지난 3월 ‘전공사상자 처리 훈령’을 개정하기로 했다. 개정안에는 사망원인이 불명확한 사망자에 대해서도 공무상 연관이 있으면 순직을 인정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에 따라 육군도 ‘전사망심의위원회’를 열고 사망자들의 사인과 순직 인정 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다.
군 관계자는 “사망사고 재발을 막기 위해 심리 부검 도입을 추진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면서도 “사망 군인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는 보훈대상자나 국가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는 등 국회의 노력도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