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행크스가 다시 주연을 맡은 <천사와 악마>가 그것인데, 전편보다 낫다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문화 예술에 대한 상당한 정도의 교양을 요구하는 작품이라는 사실에서는 전편과 크게 다르지 않은 작품이다.
이 점은 영화를 칭찬하는 말이 될 수도 있지만 흥행 측면에서는 크게 유리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르네상스와 바로크 로마
영화는 마치 르네상스와 바로크 로마를 보여주기로 작정이라도 한 양, 카펠라 시스티나, 산탄젤로, 나보나, 판테온, 포폴로 광장, 산타 마리나 델라 비토리아 등 바티칸을 중심으로 모여있는 로마의 명소들을 훑고 지나간다.
영화의 줄거리를 쫓아가는 데에는 큰 불편이 없겠지만 그러나 관객들이 이 줄거리의 속뜻을 보다 잘 이해하고 ‘본전’을 뽑으려면 로마의 명소들을 꽤나 상세히 알아야만 한다. 뿐만 아니라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정도는 모르는 이들이 없겠지만 낯설 수도 있는 지안 로렌초 베르니니도 조금은 알아야 영화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물, 불, 공기, 흙이라는 4원소를 축으로 해서 동서남북으로 이동하는 영화의 시퀀스들은 각 시퀀스에 어울리는 명소가 등장하는데, 언젠가 한 번 로마를 다녀온 사람들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직 로마를 구경한 적이 없는 이들에게는 영화의 스토리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이 로마의 명소들을 이해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아무 것도 아닌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어려운 영화일 수도 있다.
세계적인 관광 도시, 로마
관광객 숫자만 놓고 보면 로마는 파리보다 못하다. 그리고 유럽 문화의 뿌리인 아테네는 또 로마에 훨씬 못 미친다. 하지만 놀고 쇼핑하는 여행이 아닌 진짜 여행을 하고 싶은 이들, 다시 말해 유럽 문화를 한 번 체험해 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파리보다 로마를 그리고 로마보다 그리스를 먼저 보고 싶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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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는 유럽인들에게는 흔히 영원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이 말은 로마가 유럽 문화의 원형으로서 어디에도 스며있다는 말이기도 하고 또 모든 시대의 역사와 모든 장르의 예술이 로마에서 시작되었다는 말도 된다. 유럽의 정치, 경제, 문화를 지배하는 기본 골격은 모두 로마에서 나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공화국 개념, 법체계, 군사 조직은 물론이고 심지어 팍스 로마나를 따라가는 팍스 아메리카나 등도 모두 로마의 것들이다. 신고전주의는 이 로마로 돌아가자는 예술적 경향이었다. 하기야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카탈루냐어, 루마니아어 등은 모두 고대 로마인들의 언어였던 라틴어에서 나온 말들이다. 이 로만어들의 갈래를 처음으로 정리하려고 시도한 사람이 바로 <신곡>을 쓴 단테였다.
영원의 도시 로마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다. 우선 고대 로마가 있다. 영화 <천사와 악마>에는 한 번도 나오지 않았지만, 콜로세움과 포로 로마노를 중심으로 한 고대 로마가 있다. 이 시기는 대략 2,000년 전의 로마이지만 놀랍게도 그 유적지들은 아직도 건재하다. 6만 명 이상을 수용했다는 콜로세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개선문, 트라야누스 황제의 승전탑은 아직도 거의 그대로 남아있다.
이 고대 유적들은 하나의 상상력의 원형으로 쉼 없이 오늘날에도 예술 작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 회화, 조각, 소설은 말할 것도 없고 얼마나 많은 영화들이 이 고대 로마의 유적들로부터 영감을 얻어 제작되었는가. 나폴레옹의 개선문은 포로 로마노의 개선문에서 나왔으며 파리 방돔 광장에 있는 승전탑도 트라야누스의 승전탑을 그대로 베낀 것에 지니지 않는다. <무방비 도시>, <돌체 비타> 등은 언급이 필요 없는 영화일 것이며, <쿼바디스> 등 성서의 이야기를 다룬 수많은 영화는 물론이고 최근의 영화만 봐도 <글래디에이터>는 로마 콜로세움에서 나온 영화였다.
고대 로마 다음으로 르네상스 로마를 들 수 있다. 피렌체, 베네치아와 더불어 르네상스의 도시인 로마에는 바티칸은 물론이고 곳곳에 르네상스의 깊은 흔적들이 남아있다.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의 로마가 바로 르네상스 로마인데 카펠라 시스티나, 즉 시스티나 성당에 가면 두 거장 이외에 크게 볼 것이 없을 정도다. <천지창조(제네시스)>와 <최후의 심판>이 그곳에 있으며 방 하나만 건너면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을 비롯한 명작들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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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8년 신성로마 황제 카를 5세의 로마 약탈로 인해 로마는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고 르네상스가 종말을 거두지만, 16세기 말에 로마는 바로크 미학의 세례를 받아 다시 태어난다. 이 시기가 바로 지안 로렌초 베르니니의 시기이며 영화 <천사와 악마>의 무대가 바로 이 바로크 로마다. 카를 5세의 침공 당시 스위스 용병으로 구성된 근위대가 모두 전사하면서 교황을 지켜낸 이후 스위스 근위대는 전 유럽에 명성을 떨치게 되어 수요가 급증했다고 한다. 영화 <천사와 악마>에서도 근위대가 큰 역할을 한다.
세트장이 된 로마에서 배울 점
로마는 더 이상 소개할 필요가 없는 도시인지도 모른다. 세계사와 문화사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도시이자 관광 명소로서도 가장 유명한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상력을 자극하고 예술 작품에 등장하는 로마는 잠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다름이 아니라 서울 혹은 경주 같은 한국의 도시를 다시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장금> 같은 드라마는 요리 드라마였지만 가령 건축이나 도시 계획 같은 것을 다룬 한국 영화라면 자연스럽게 한국이 소개될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천사와 악마>같은 댄 브라운 식의 상업적 미스터리 물이라도 좋을 것이다. 서울이나 경주가 배경이 된다면 말이다. 관광 홍보는 자연스럽게 될 것이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면 우리 조상들이 어떤 건물을 어떻게 짓고 살았으며 한 공동체가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공간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를 알고 싶고 또 알아야만 할 것이다.
영화 <천사와 악마>에 나오는 바로크 천장화
영화 <천사와 악마>는 대단한 영화는 아닐지 모르지만, 상업성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는 영화 자체의 속성을 감안한다면 도시라는 공간을 가장 잘 활용한 영화이기는 하다. 물론 감독은 도시를 상당 부분 조각으로 대체하여 스토리 전개의 모티브로 활용하고 말았다. 그렇기는 해도 바로크 미학을 아는 이들은 주인공 중 한 명인 “악마”가 헬리콥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 폭탄을 터뜨리고 낙하산으로 하강하는 장면이 바로 로마에 있는 바로크 성당들의 천장에 눈속임 기법으로 그려진 성화임을 알아보았을 것이다.
바로크는 16세기 종교 전쟁 당시, 모든 성상과 심지어 오르간마저 파괴하고 복음으로 돌아가자는 프로테스탄티즘에 대항하여 초자연적인 신앙의 세계를 시각적으로 묘사하려고 했던 가톨릭의 미술 사조였다. 따라서 엄밀하게 본다면 가톨릭과 반대되는 세계는 영화에서 말하고 있는 과학이 아니라 개신교였으며, 이렇게 보면 바로크 성당과 조각을 따라가고 클라이맥스 장면도 바로크 천장화를 그대로 모방한 영화 <천사와 악마>는 핀트가 조금 어긋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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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무엇보다 로마를 조금이라도 알아야 흥미있게 볼 수 있는 이 영화는 어딘지 서구인들을 대상으로 제작된 영화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어쨌든 한 가지 생각할 거리가 있다면 한국의 도시들도 영화 세트장이 될 수 있는 수준으로 아름답고 철학을 담고 있는 도시여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참으로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영화 감독 중 누가 나서서 신라시대의 경주 같은 도시를 대상으로 ‘불국’의 공간 개념을 영화화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이미 그 당시에 페르시아와 교역이 있었다고 하니 미스터리물로도 꾸며볼 수 있을 것이고 석굴암의 기하학적 구조와 태양 광선과의 관계 등은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언젠가 칼럼에서 언급한 적이 있듯이, 1,003대의 모니터를 쌓아 올려 만든 백남준의 <다다익선> 같은 현대 미술을 다보탑과 연결 시켜가며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영화로도 제작해볼 만할 것이다.
댄 브라운이 로마를 자세히 연구하면서 소설을 썼듯이 누군가 한국 소설가도 경주를 잘 연구하면 적어도 시나리오로 쓸 수 있는 작품은 나오지 않을까 싶다. 물론 공간에 대한 미학적, 철학적 인식이 깊은 작가라면 그 이상의 작품도 가능할 것이다.
여행·문화·예술 포탈 레 바캉스(www.lesvacances.co.kr) 대표 정장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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