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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도 다르지 않았다. 김태규 국민의힘 의원은 국감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장소인 ‘부엉이바위’를 거론했다. 같은 당 주진우 의원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재 명을 끊을 때”라는 댓글을 남겨 논란을 일으켰다. 비판과 반박, 사퇴 요구가 이어졌다. 잘못된 발언은 당연히 따져야 한다. 그러나 국회가 국감에서 의원들의 발언의 잘못을 지적하는 데 매달리는 동안 국정의 잘못을 밝히는 본래의 일은 자꾸 뒤로 밀렸다.
이같은 자극적인 발언은 몇 초짜리 영상에 담겨 빠르게 빠르게 퍼져나간다. 지지층은 박수를 보내고, 반대편에선 분노하는 사이 정책 질의는 사라진다. 상대를 몰아붙이는 장면이 화제가 되고, 거친 말 한마디가 정치적 존재감을 높이는 수단이 된다. 의원들은 이런 장면을 자신의 성과처럼 내세울 수 있다. 그러나 국민에게 돌아오는 것은 무엇일까. 국감에서 확인했어야 할 예산의 허점과 바로잡아야 할 제도의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정치 양극화는 이런 풍경을 더 익숙하게 만든다. 상대 주장에서 옳은 부분을 인정하면 내 편에 등을 돌린 것처럼 비치고, 거칠게 몰아세우면 선명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타협은 의심받고 절제는 존재감이 없다는 말을 듣는다. 정치를 잘한다는 기준은 문제를 얼마나 해결했는지보다 얼마나 세게 싸웠는지로 평가된다. 의원들이 바라보는 것 또한 국민 전체가 아닌 자신을 응원하는 사람들이다.
국회의원이 늘 공손한 말투만 보여줘야 하는 것은 아니다. 권력을 감시하는 질문은 날카로워야 한다. 그러나 날카로운 질문과 상대에게 상처를 남기는 말은 다르다. 소방관의 처우를 논하면서 소방관이 상처받을 표현을 쏟아내고, 대통령을 검증한다면서 모욕으로 읽힐 말을 남기는 것을 용기로 포장할 수 없다. 국회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상대당의 반격이 아니라 끝내 답하지 못한 국민의 질문이다.
국감이 끝나면 여야는 저마다 성과를 발표할 것이다. 몇 번 언성을 높였고 누구에게 사과를 받아냈는지는 성과가 아니다. ‘쇼츠’(짧은 영상)의 조회수와 박수로 국감의 성적표를 매길 수도 없다. 국민이 국회에 맡긴 것은 싸울 권리가 아니라 따져 물을 책임이다. 의원들은 상대를 이겼다고 자랑할지 모르지만, 그들이 묻지 않은 질문의 대가는 국민이 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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