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탈출③] 싸늘한 동굴 속에선 와인도 천천히 익어간다

강경록 기자I 2019.08.03 15:11:16

전북 무주 머루와인동굴
한국관광공사 추천 이달의 가볼만한 곳

머루에 대한 정보가 있는 안내문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우리나라도 와인 생산국이다. 야생 포도인 머루와 오미자, 오디 등을 이용해 특별한 와인을 만든다. 무주 농가에서 국내 머루 생산량의 약 60%를 재배하고, 머루 농가와 머루와인 업체가 협력해 맛깔스러운 와인을 빚는다. 머루와인은 적상산 중턱(450m)에 자리한 무주머루와인동굴에서 만난다. 더위를 피하고 머루와인도 맛볼 수 있어 여름철 여행지로 제격이다. 머루와인과 사과와인 6종을 무료로 시음하는데, 조금씩 다른 맛이 오묘하다. 동굴에 오래 있으면 몸이 으슬으슬하다. 이때 머루와인 족욕을 하면 몸이 따뜻해지고 피로가 스르르 풀린다.

무주 남쪽을 지키는 적상산. 오른쪽으로 첩첩 산이 펼쳐진다.


◇한국 100대 명산이 품은 동굴

통영대전고속도로를 타고 금산을 지나면 앞쪽으로 웅장한 산이 나타난다. 무주가 가까웠다는 걸 알리는 적상산이다. 무주의 수호산인 적상산은 사면이 절벽으로 둘러싸여 험악하게 보인다. 붉은색 바위 지대가 마치 산이 붉은 치마를 입은 것 같다고 적상(赤裳)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한국 100대 명산에 든다. 적상산 중턱에 무주머루와인동굴이 자리한다.

무주 시내에 들어와 적상산 품에 난 도로를 따라 10분쯤 구불구불 오르면 무주머루와인동굴 주차장에 닿는다. 여기에 동굴이 생긴 건 무주양수발전소를 만들면서 터널을 뚫었기 때문이다. 작업용 터널이 2007년에 무주머루와인동굴로 새롭게 태어났다. 동굴 길이가 총 579m인데 그중 290m를 사용하고 있다. 무주머루와인동굴 입장료는 2000원(시음장 무료 이용·음료 1잔 포함, 와인 족욕 별도), 이용 시간은 오전 10시~오후 5시 30분이다(월요일·명절 당일 휴관, 성수기는 월요일 정상 운영).

적상산 중턱에 자리한 무주머루와인동굴


동굴 입구에 입을 크게 벌리고 선 머루 장승 부부의 표정이 해학적이다. 장승 뒤에 도깨비처럼 생긴 머루 정령이 입을 쩍 벌리고 있는데, 여기가 동굴 입구다. 동굴에 들어서자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바람은 차가워지고 슬슬 땀이 식는다. 동굴 안 평균온도는 13~14℃. 여름철 밖의 기온이 대개 30℃가 넘으니 무려 15℃ 이상 낮은 셈이다.

동굴에서는 먼저 머루에 관한 안내문을 만난다. 야생 포도인 머루는 포도보다 맛과 향이 진해 와인을 빚기에 적합하다.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홋카이도(北海道)산 와인도 머루로 만든다고 한다. 무주는 국내 최대 머루 산지로, 머루 농가 110여 가구와 5개 머루와인 업체가 손잡고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벽에 붙은 안내문을 읽어보면 ‘왜 머루로 와인을 만들까?’라는 궁금증이 가시고, ‘맛은 어떨까?’ 하는 호기심에 입맛을 다시게 된다.

동화 속 세상처럼 알록달록 꾸민 무주머루와인동굴 내부


◇폭염에도 몸이 으슬으슬

이후는 동화 속 세상처럼 아기자기하다. 머루 줄기와 열매를 색색의 조명으로 치장한 포토 존이 나오고, 그리스신화 주인공이 와인을 따르는 재미난 트릭 아트, 화려한 빛 터널 등이 이어진다. 와인 병 모양 조형물에는 “우리는 흔히 와인 하면 외국산 수입 와인만을 떠올립니다. 그들에 비해 땅도 작고, 인구도 적지만 그들과 어깨를 견주어 우리의 와인을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것을 소중히 여길 때 세계에서도 인정받는 Made in Korea가 되지 않을까요? 이제부터 무주머루와인이 만들어갑니다”라는 문구가 있다. 우리 와인을 만드는 당당함이 느껴져서 좋다. 와인 선진국 프랑스나 이탈리아에 이런 동굴이 있었다면 와인 명소가 됐을 것이다.

이윽고 시음장에 도착하자 직원이 반기며 시음을 권한다. 현재 시판되는 머루와인은 덕유양조의 ‘무주구천동머루와인(MEORUWINE)’, 무주군산림조합의 ‘루시올뱅(LUCIOLE VIN)’, 샤또무주의 ‘샤또무주(CHATEAU MUJU)’, 산들벗의 ‘마지끄무주(MAGIQUE MUJU)’, 칠연양조의 ‘붉은진주(RED PEARL)’ 등이다. 반딧불사과와인영농법인의 사과와인 ‘애플린(Apple lean)’도 있다.

시음장에서는 5가지 머루와인과 사과와인을 맛볼 수 있다. 먼저 직원이 권한 루시올뱅을 마셨다. 첫맛은 신맛이 강하고 뒷맛이 살짝 달콤했다. 무주구천동머루와인은 신맛과 단맛이 조화로웠다. 사또무주는 달콤한 맛이 느껴졌다. 나머지 와인도 제각각 맛이 달랐다. 전체적으로 와인 맛이 생각보다 훌륭했다. 괜찮은 머루와인이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게 놀라웠다. 시음장 직원에게 “어느 와인이 가장 반응이 좋은가요?” 하고 물어보니, 입맛이 각양각색이라 특정 와인이 몰표를 받진 않는다고 한다. 사람들은 시음장에서 맛을 비교해보고 입맛에 맞는 와인을 고른다. 여기서 구입하면 할인 혜택도 있다.

시음장 옆에 족욕장이 보인다. 동굴에 오래 있으면 몸이 으슬으슬하게 마련이다. 이런 때 족욕이 제격. 뜨거운 물에 머루와인을 넣자 좋은 향기가 솔솔 올라온다. 발을 담그니 몸이 스르르 풀리면서 조금씩 따뜻해진다. 여독이 한 방에 풀리는 기분이다(이용료 3000원).

덕유산의 장쾌한 능선이 한눈에 들어오는 안렴대


◇전망대, 안국사, 무주문화원 등 볼거리도 가득

머루와인 족욕까지 마쳤다면 동굴에서 나와 적상산의 명소를 둘러보자. 동굴 앞에서 산정으로 이어진 도로는 한동안 갈지자를 그리고, 적상터널을 통과하면 느닷없이 호수가 나타난다. 무주양수발전소의 상부 저수지인 적상호다. 무주양수발전소는 상부 저수지에서 산 아래 하부 저수지로 물을 떨어뜨려 전기를 생산한다.

적상호 북쪽 끝자락에 적상산전망대가 있다. 거대한 굴뚝처럼 생긴 전망대는 무주양수발전소의 발전설비인 조압수조다. 발전기가 갑자기 멈췄을 때 수로 압력이 급상승하는 걸 완화해주는 설비라고 한다. 건물 3~4층 높이 전망대 꼭대기에 오르면 시야가 넓게 열린다. 전망대를 한 바퀴 돌면서 무주의 산하를 감상할 수 있다. 북쪽으로 산이 첩첩 둘러싸인 가운데 무주 시내가 자리 잡았고, 남쪽으로는 무주덕유산리조트 스키장이 보인다.

안렴대로 가는 숲길이 호젓하다.


적상산전망대가 무주양수발전소 덕분에 생긴 인공 전망대라면, 적상산 8부 능선에 자리한 안렴대는 천혜의 전망대다. 안국사주차장에 도착하면 ‘안렴대 500m’ 안내판이 있다. 호젓한 숲길을 따라 10분쯤 가면 마당바위 같은 너른 바위 지대인 안렴대가 나타난다. 바위 아래는 천길만길 벼랑이다. 《한국지명총람》에 따르면, 고려 말 거란이 침입했을 때 삼도 안렴사가 이곳 바위 아래 굴에 숨어서 유래한 지명이라고 한다. 안렴대의 자랑은 장쾌한 조망이다. 남쪽으로 향적봉에서 남덕유산까지 이어지는 덕유산 주 능선이 장쾌하고, 맑은 날에는 서쪽으로 진안 마이산이 보인다.

안렴대에서 되돌아오면 안국사 경내로 들어선다. 안국사는 1277년(고려 충렬왕 3) 월인이 창건했다는 설과 조선 태조 때 무학대사가 적상산성을 쌓고 절을 지었다는 설이 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는 승병이 주둔했다고 한다. 1995년 적상산에 무주양수발전소가 생기자, 안국사가 자리한 지역이 수몰 지구로 편입되어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천불전에 들어서니 제각각 다르고 또 비슷한 부처의 미소가 재미있다.

적상산에서 내려와 무주 시내의 무주문화원으로 간다. 건물 3층에 김환태문학관과 최북미술관이 있다. 김환태문학관에 들어서자 나비 무리 그림 가운데 이어령 평론가가 쓴 ‘김환태의 문학 정신’이란 글이 있다. 나비 그림은 김환태가 쓴 글의 유명한 구절 “나는 상징의 화원에 노는 한 마리 나비이고자 한다”에서 따온 것이다. 김환태는 일제강점기에 순수문학의 이론 체계를 정립한 무주 출신 문학평론가다. 1943년 귀향해서 이듬해 세상을 뜰 때까지 무주에 살았다. 최북미술관은 무주 출신 화가 최북을 기리는 미술관이다. ‘조어도’ ‘풍설야귀인도’ 등 대표작을 관람하고, 조선 후기 회화의 흐름도 살펴볼 수 있다. 무주가 낳은 문화 예술인과 만나며 여행을 마무리한다.

안국사 천불전. 부처의 미소가 보는 이를 미소 짓게 한다.


◇여행메모

△여행코스= 무주머루와인동굴→적상산전망대→안렴대→안국사→적상산사고→김환태문학관&최북미술관→무주반디랜드→태권도원

△가는길= 통영대전고속도로 무주 IC→무주로→싸리재터널→괴목로→산성로→무주머루와인동굴

△먹을곳= 매운탕·어죽은 단천로의 금강식당과 내도로의 섬마을, 산채정식은 구천동로의 별미가든이 유명하다.

△주변 볼거리= 적상산사고, 무주반디랜드, 태권도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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