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타도”…대만의 트럼프 노리는 이 남자는[파워人스토리]

김윤지 기자I 2025.01.29 08:10:11

궈타이밍 폭스콘 창업자
‘흙수저’로 태어나 부품 업체 창업
의지의 영업맨·中공장 등 타고난 승부사
각종 막말로 구설…정계 진출 도전도

[이데일리 김윤지 기자] 지난달 일본 완성차 업체인 혼다와 닛산자동차가 합병 추진을 알린 가운데 주목 받은 또 다른 기업이 있다. 바로 대만 폭스콘(훙하이정밀공업)이다. 폭스콘이 닛산을 상대로 적대적 공개매수(TOB) 등을 통해 경영권 참여 시도를 했고, 일본 정부 등이 이를 방어하기 위해 혼다가 백기사 역할을 하도록 밀어붙였다는 보도들이 나왔다. 혼다와 닛산 측은 이를 부인했지만 전기차를 비롯해 인공지능(AI) 서버 등 다방면에서 공격적으로 사세를 넓히고자 하는 폭스콘의 광폭 행보는 ‘대만의 트럼프’로 불리는, 폭스콘 창업자 궈타이밍(영문명 테리 궈)을 연상시켰다.

◇ ‘바다 건너는 기러기’라는 큰 꿈

부유한 집안 출신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달리 궈타이밍은 가난한 집안의 장남이다. 궈타이밍의 부모는 중국 본토 산시성에 살던 한족이었다. 이들은 1949년 중국 공산당이 본토를 모두 장악할 때 국민당 정권을 따라 대만으로 망명했고 1950년 궈타이밍이 태어났다. 궈타이밍은 대만에서 나고 자랐지만 본토에 뿌리를 둔 셈이다.

2023년 당시 대만 총통 선거에 출마를 선언했던 궈타이밍 폭스콘 창립자.(사진=AFP)
해운 관련 실무자를 양성하는 대만 중국해사전과학교(대만해양과기대학)를 졸업 후 그는 해운회사에 입사했다. 그는 그곳에서 해외 시장과 플라스틱 제조업 발전 가능성에 눈을 떴고, 모친에게 받은 결혼자금 등으로 1974년 폭스콘의 전신 ‘훙하이 플라스틱’을 창업했다. 이 회사는 TV 회전 손잡이 제조회사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석유 파동이 터졌고, 플라스틱 제조 비용이 크게 상승했다. 궈타이밍이 인생에서 가장 어려웠던 시기 중 하나로 이때를 꼽는다.

훙하이(鴻海)는 기러기 홍(鴻)에 바다 해(海)를 합친 말이다. 중국 송대 역사서인 통감절요에 나오는 ‘홍비천리 해납백천(鴻飛千里 海納百川)’에서 따왔다. ‘기러기는 천리를 날고 바다는 백 개의 강에서 물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그가 ‘바다를 건너는’ 시기를 머지 않아 찾아왔다.

◇ “상인에게 조국은 없다”

1980년 당시 최고의 게임기 제조회사인 미국 아타리로부터 비디오 게임기의 조이스틱과 게임기를 연결하는 커넥터 주문이 들어왔다. 어려운 시기임에도 훙하이 플라스틱이 원청회사의 납품 약속을 철저히 지켰다는 이유에서였다. 덕분에 회사는 살아났고, 훙하이정밀공업으로 회사 간판을 바꿔 달았다.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도록 폭스콘이란 영문 브랜드도 만들었다.

기회를 잡은 그는 탁월한 승부사 기질을 발휘했다. 1년 가까이 미 전역을 돌면서 컴퓨터와 게임 회사들을 무턱대고 찾아갔다. 문전 박대 당하거나 산업 스파이로 오인 받았지만 그는 “가장 싸게 양질의 부품을 납품하겠다”고 거래를 제안하는 ‘불굴의 영업맨’이었다. 적잖은 미국 기업들로 주문을 받아낼 수 있었다.

그는 1988년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그는 중국 광둥성 선전에 당시 중국 최대 규모 공장을 지었다. 덩샤오핑 주도로 시작한 중국의 개혁개방이 한창 진행되던 시기였지만 대만 기업들이 적대적인 관계인 본토에 진출하는 일은 여러모로 불확실성이 컸다. 풍부한 노동력과 저임금에 베팅한 결과 폭스콘은 이후 애플, 델, IBM 등을 고객사로 둔 세계 최대 전자기기 위탁회사로 거듭날 수 있었다. 이를 발판삼아 폭스콘은 2016년 100년 역사의 일본 정보기술(IT) 기업 샤프와 노키아 브랜드를 인수하는 등 몸집을 키워 나갔다.

그는 지독한 일벌레로 유명하다. 하루 16시간 일하면서 세끼 모두 자신의 책상에서 해결하고 심야에 회의를 여는 일화나 고객 요구는 어떻게든 들어주는 그의 집요함 등은 잘 알려져 있다.



2018년 당시 미 위스콘신 폭스콘 시설을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궈타이밍 당시 폭스콘 회장.(사진=AFP)
◇ 막말로 악명…삼성과는 악연

대만을 대표하는 부호이자 기업가인 그는 2019년 대만 국민당 총통 후보 경선에 출사표를 던졌다. 당시 그는 소셜미디어(SNS)에 ‘대만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글을 남기며 트럼프 대통령의 슬로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Make America Great Again)을 떠올리게 했다. 정계 진출을 계기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그해 그의 도전은 패배로 끝났다. 2023년 총통 선거에는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중국 정부의 대대적인 폭스콘 세무조사 등으로 압박을 받으면서 전격 사퇴했다.

거친 언사도 트럼프 대통령과 닮아 있다. 수많은 일화 가운데 100만명의 지원을 ‘동물’에 비유한 것이 대표적이다. 2010년 고강도 근무 환경에 시달리던 폭스콘 공장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는 사태가 이어지자 궈타이밍은 당시 “인간도 동물인 만큼 100만 동물을 관리하는 건 힘든 일”이라고 말해 비난 받았다.

그는 2008년 24세 연하 무용가와 결혼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05년 동갑내기 첫 번째 부인과 사별한 그는 재혼에 앞서 대만과 홍콩의 톱스타들과 염문설을 뿌렸던 그다. 결혼식 때 턱시도 상의를 벗어던진 궈타이밍은 하객들 앞에서 푸시업 30개를 해보이기도 했다.

한국과는 악연이다. 그는 삼성전자를 상대로 “삼성은 경쟁자 등 뒤에 칼을 꽂는 소인배”라고 말한 바 있다. 2010년 훙하이 계열사가 가격담합 혐의로 삼성전자로부터 고발당해 유럽연합(EU)으로부터 막대한 과징금을 부과받자 평생 목표를 ‘삼성 타도’로 삼았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삼성전자 반도체 파운드리 고객사였던 애플과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 대만 TSMC의 인연을 만들어 준 이는 궈타이밍이었다. 모리스 창 TSMC 창업자의 자서전에 따르면 2010년 당시 삼성과 스마트폰 시장을 놓고 경쟁 중이었던 애플은 반도체 파운드리를 삼성이 아닌 기업으로 바꾸고 싶어했다. 궈타이밍은 2010년 당시 TSMC 회장인 모리스 창에게 애플의 COO(최고운영책임자)였던 제프 윌리엄스를 소개했다. 궈타이밍은 모리스 창의 첫 번째 아내의 사촌 동생이었다. TSMC는 아직까지도 애플의 독점적인 파운드리 업체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