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고려인 동포의 고통[이희용의 세계시민]

최은영 기자I 2026.02.13 04:50:00

이희용 언론인·이데일리 다문화동포 자문위원 기고
전쟁 4년째…조국으로 몸 피한 3000명
불안정한 지위에 고통…난민 제도 개선을

[이희용 언론인·이데일리 다문화동포 자문위원] 벌써 4년이 흘렀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으로 시작된 양국 간의 전쟁이 좀처럼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다각도로 종전 협상이 시도되고 있지만 핵심 쟁점을 놓고 양측의 입장이 여전히 팽팽하다.

취임 전부터 당장 전쟁을 끝낼 것처럼 큰소리쳐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뾰족한 해결책을 내놓기는커녕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축출하고 그린란드 합병 야욕을 드러내며 오히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패권 본능을 부추기고 있다.

우크라이나 출신 고려인 동포 남아니타 양이 광주고려인마을의 도움으로 2022년 3월 22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해 할머니 품에 안기고 있다. (사진=광주고려인마을)
이미 많은 사람이 희생됐다. 최근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 따르면 러시아군 사상자는 전사자 32만5000명가량 등 120만 명에 달한다. 여기에는 북한군 병사도 포함돼 있다. 우크라이나군도 약 60만 명이 죽거나 다쳤다. 유엔은 민간인 사망자와 부상자도 각각 1만5820명과 4만29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집을 떠난 사람은 훨씬 더 많았다. 우크라이나 국민 500만 명 이상이 고국을 탈출해 폴란드·루마니아·헝가리 등 인접국으로 옮겨갔고 약 710만 명은 국내 다른 곳으로 피란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난민 위기로 꼽힌다.

우크라이나에는 우리 동포도 거주하고 있다. 2024년 말 기준 1만2800명으로 대부분 고려인 3~5세다. 1860년대부터 러시아 연해주에 정착한 이들의 선조는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됐다가 1953년 스탈린 사후 거주·이전 제한이 풀리면서 농장 취업 등의 목적으로 재이주했다.

이 가운데 3000여 명이 피란처로 할아버지 나라를 택했다. 전쟁이 일어나자 법무부는 우크라이나 고려인에게 비자 신청 서류를 간소화하는 동시에 전쟁 전에 입국한 동포에게도 정세가 안정될 때까지 인도적 특별체류를 허용했다. 최근에는 체류 기간 연장이나 취업 분야 선택이 쉽도록 방문취업(H-2) 비자를 재외동포(F-4) 비자로 바꿔주기로 했다.

시민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광주 고려인마을의 이천영 목사와 주민들은 항공료가 없어 발을 동동 구르던 우크라이나 동포 900명을 데려왔다. 성금 23억원을 모아 비행기표를 사주고 월세방을 마련해 주는가 하면 일자리까지 알선했다. 너머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지구촌동포연대, 대한고려인협회, 대한적십자사, 굿네이버스 등 시민·사회·종교·동포단체와 공공기관·기업·대학들도 정성을 모아 생필품을 전달하고 의료·교육 봉사에 나섰다.

그러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뜨거웠던 관심이 식자 도움의 손길도 줄어들어 생계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더욱이 18세부터 60세까지 남성은 대부분 징집돼 전선으로 떠나고 노인, 여성, 미성년자만 남아 생활력도 취약한 상태다.

잠시 머물렀다가 전쟁이 끝나면 돌아갈 생각으로 왔다가 정착 단계에 접어들자 새로운 고민에 부닥쳤다. 일용직이나 아르바이트보다 경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일을 찾고, 자녀도 정상적인 교육 과정에 진입시키고 싶은데, 현실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처음엔 사지에서 벗어난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여겼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전쟁 트라우마와 이산·실향의 아픔이 되살아나 견디기 힘들다.

우크라이나에서 한국으로 피란온 고려인 전사자 아내 김잔나 씨와 아들 니키타(왼쪽), 딸 니콜. (사진=연합뉴스, 본인 제공)
우크라이나인 김잔나(38) 씨는 고려인 남편이 징집돼 딸을 임신한 상태에서 시부모·아들과 함께 2022년 10월 입국했다. 주변 도움으로 딸을 무사히 낳았으나 2024년 10월 남편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전사자 연금을 받으려면 6개월마다 우크라이나를 방문해야 하기에 쉽지 않다. 노인과 아이들을 데리고 어떻게 살아나갈지 앞길이 막막하다.

우크라이나 고려인 박엘레아노라(45) 씨는 폴란드와 체코를 전전하다가 2022년 7월 두 아들을 데리고 할아버지 나라를 찾았다. 자동차 부품공장에 다니다가 말기 자궁경부암 진단을 받았다. 건강보험 덕에 의료비 폭탄은 피했지만 직장은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생 큰아들(17)은 생계비를 벌려고 방학 때 공장에서 일하다가 임금을 떼였는데도 불법취업 사실이 드러나 출국 조치를 당할까 두려워 신고도 못하는 형편이다.

이처럼 딱한 처지에 놓인 고려인은 수두룩하다. 이들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펼쳤거나 도왔던 선조의 후손이자 우리가 보듬겠다며 데려온 동포들이다. 온정은 계속돼야 하지만 언제까지 민간의 도움에 기댈 수만은 없다.

우선 유독 까다롭고 오래 걸리는 우리나라의 난민 심사 기준과 절차를 대폭 개선해 하루빨리 이들에게 난민 지위를 인정해야 한다. 이와 함께 선진국처럼 위기에 놓인 이주민 가정을 긴급 지원하는 제도를 마련하고 독일·이스라엘·아일랜드·중국·일본의 사례를 본받아 귀환 동포를 적극 포용하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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