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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움직이고 시장금리는 이를 반영한다. 그렇지만 지금은 순서가 거꾸로다. 이미 시장금리가 빠르게 상승했고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은 이를 사후적으로 추인하는 성격이 강하다. 10년 만기 미국 국채금리는 이미 5%를 넘어섰다. 저금리 기조가 장기간 이어졌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장기 국채금리의 가파른 상승세는 이미 현재 진행형으로 가시화하고 있다.
국채금리 급등에 먼저 반응한 사람도 연준 의장인 케빈 워시가 아니라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이었다. 베선트 장관은 장기 국채금리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국채 바이백 확대 등을 추진했다. 재무부가 유통시장에서 장기국채를 사들여 수급을 개선하고 금리 상승 압력을 낮추려는 조치였다. 중앙은행이 아니라 재무부가 채권시장 안정에 직접 나서는 모습은 최근 미국 금리 문제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미국 재무부의 바이백 처방이 큰 효과를 보지 못하는 이유도 이 정책이 근본적인 재정 건전화와 무관하기 때문이다. 재정적자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재무부의 장기국채 매수 자금은 만기가 짧은 단기국채를 발행해 마련할 수밖에 없다. 만기만 다를 뿐 정부의 부채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채권시장은 재무부의 조삼모사식 정책에 냉소를 드러내고 있다.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조정은 자산시장뿐만 아니라 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준다. 금리는 모든 경제활동에 작용하는 중력과도 같다. 그래서 중앙은행의 긴축은 경기가 좋을 때 정당성을 얻는다. 금리를 올려 수요를 둔화시키고 이를 통해 물가를 안정시키는 것이 긴축의 목적인데 경제가 튼튼할 때는 금리 인상에 따른 충격을 흡수할 내구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요즘 상황은 연준이 공격적으로 금리를 올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무엇보다 미국 경기가 그렇게 뜨겁지 않다.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연초 2.5%보다 낮은 2.1%선까지 낮아졌고 2027년 성장률 전망 역시 2% 안팎의 잠재성장률 수준에 머물러 있다. 미국 경제를 지탱해 온 민간소비도 7월 이후 둔화의 조짐이 뚜렷하고 실제 소비의 선행지표인 소비심리지수들은 더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고용도 최근 월별 지표가 크게 오르내리고 있어 추세적인 개선을 자신하기 어렵다.
물가 역시 공격적인 긴축을 요구할 정도로 광범위한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3.4% 상승했지만 여기에는 국제유가 급등이 큰 영향을 미쳤다.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CPI 상승률은 2.4%까지 낮아졌다.
따라서 최근 장기금리 상승의 원인을 경기 과열이나 연준의 공격적인 긴축에 대한 우려에서 찾아서는 안 된다. 오히려 미국 정부의 재정건전성에 대한 의구심과 지정학적 위험이 더 중요하다. 보다 직접적으로는 개전 이후 좀처럼 출구전략을 찾지 못하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이란 전쟁이 자리 잡고 있다. 전쟁은 금리를 두 방향에서 밀어 올린다. 하나는 유가다. 지정학적 불안으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면서 에너지 가격이 다시 물가를 자극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재정이다. 전비 지출이 지속되면 이미 막대한 미국의 재정적자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투자자들은 더 많은 국채 공급과 재정건전성 악화를 감수하면서 미국 국채를 보유해야 한다. 그 대가로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하게 된다. 결국 최근 미국 장기금리 상승에는 두 개의 위험 프리미엄이 겹쳐 있다. 유가 상승이 만드는 인플레이션 위험과 재정적자 확대가 만드는 국채의 리스크 프리미엄 상승이다.
어느 쪽도 연준이 기준금리를 몇 차례 올리는 것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오히려 경기가 충분히 강하지 않은 상황에서 연준이 유가 상승에 대응해 공격적으로 금리를 올린다면 물가는 제대로 잡지 못한 채 경기만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이번 긴축 사이클이 길게 이어지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9월 금리 인상을 시작으로 연준이 추가적인 인상에 나설 수는 있다. 그러나 현재의 성장률과 근원물가 흐름을 감안하면 2027년까지 지속적으로 금리를 올려야 할 정도의 수요 과열이 나타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2026년 연내 두 번의 기준금리 인상을 예상하고 있고 2027년에는 동결 혹은 많아야 한 번의 금리 인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연준의 긴축 사이클은 매우 짧게 끝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금리 안정의 열쇠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연준보다는 미국 행정부가 쥐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란 전쟁이 마무리되고 지정학적 위험이 완화된다면 상황은 빠르게 달라질 수 있다. 국제유가가 급락하면 헤드라인 물가에 대한 우려가 낮아진다. 연준이 추가 긴축에 나서야 할 명분도 약해진다. 동시에 전비 부담과 재정적자 확대에 대한 우려가 완화되면 미국 국채에 붙어 있는 위험 프리미엄도 낮아질 수 있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내리지 않더라도 장기금리가 먼저 하락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연준의 금리 결정보다는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 전쟁의 출구를 언제 찾을 것인가가 장기금리에는 더 중요한 변수다. 전쟁이 끝나고 유가와 미국 국채금리가 함께 하향 안정된다면 금융시장은 전혀 다른 국면으로 진입할 수 있다. 기업이 미래에 벌어들일 이익에 적용되는 할인율은 낮아지고 높은 금리 때문에 눌려 있던 밸류에이션은 다시 높아질 수 있다. 미국뿐 아니라 글로벌 자산시장으로 유동성이 확산될 가능성도 커진다. 이번 FOMC의 금리 결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전쟁의 종결이다. 지금 글로벌 유동성 랠리의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은 연준 의장 케빈 워시가 아니라 백악관의 도널드 트럼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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