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미국에서 반도체 보조금을 받는 기업은 향후 중국에서 반도체 생산능력을 5% 이상 늘릴 수 없도록 한 이른바 반도체법(Chip act) ‘가드레일(안전장치)’ 규정을 최종 확정하자 국내 반도체 업계는 일단 선방했다는 분위기가 많다. 올해 3월 공개한 ‘세부 규정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다. 다만 향후 강력한 생산능력(캐파)에도 불구,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중국 내 생산 확대가 일부 제한될 수밖에 없는 데다, 중국 내 생산시설에 대한 반도체 장비반입 역시 미국이 통제하고 있는 만큼 불확실성은 여전하다는 우려도 적잖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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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현지시간) 미국에 투자하는 글로벌 반도체 기업에 총 390억달러(약 52조원)를 지급하는 인센티브 법안으로, 미 상무부가 최종 확정해 공개한 반도체법 세부규정을 보면, 보조금을 받은 기업은 중국 내 투자를 제외하는 가드레일 규정이 담겨 있어 한국 등 반도체기업들에 부담이 생기게 됐다. 구체적으로 보조금 수령 이후 10년간 중국에서 첨단 반도체는 5% 이상, 구세대 범용 반도체는 10% 이상 생산능력을 확장할 경우 해당 기업은 보조금 전액을 토해내야 한다. 그간 산업통상자원부와 업계가 생산량 기준 확대를 미 상무부에 요청했지만 끝내 반영되지 못한 셈이다. 실제 우리 정부는 첨단 반도체의 실질적인 확장의 기준을 기존 5%에서 10%로 늘려달라고 요청해왔다. 이에 상무부는 “기존의 5% 예외는 시설·생산라인의 일상적 업그레이드를 가능하게 하는 수준”이라며 거부했다.
여기에 미 상무부의 중국 내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 역시 우리 기업들엔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작년 10월 상무부는 자국 기업이 중국 반도체 생산기업에 반도체 장비를 수출하는 걸 사실상 막는 조치를 발표했는데, 삼성전자·SK하이닉스엔 1년간 이를 한시적으로 유예해줬다. 우리 정부와 기업들은 유예기간을 추가 연장하는 한편, 특정 장비만큼은 유입이 가능할 수 있도록 미 정부를 설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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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반도체 생산능력을 월별 웨이퍼 수로 정의했던 부분이 연간 웨이퍼 수로 바뀐 점은 긍정적이다. 생산량은 업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는 우리 업계의 요구를 일부 반영한 것이다. 또 실질적 확장을 ‘물리적 공간’이나 ‘장비’를 추가해 생산능력을 5% 이상 확대하는 것으로 정의했으나 최종 규정에선 ‘장비’를 삭제하고 ‘클린룸, 생산라인이나 기타 물리적 공간’으로 대체한 점도 다행이다. 기술적 업그레이드를 통한 확장은 규제하지 않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중대한 거래’를 10만달러 이내로 규정한 기준이 제외된 점, 미국 안보를 위협하지 않는 선에서 국제표준이나 특허 라이선싱 등 일상적인 기업운영에 필요한 활동을 허용한 점 등도 마찬가지다.
지나 러몬도(사진) 미 상무장관은 성명에서 “반도체법은 근본적으로 국가안보를 위한 구상”이라며 “가드레일은 우리가 글로벌 공급망과 집단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동맹 및 파트너와 공조를 계속하고 동시에 미국 정부의 자금을 받는 기업들이 우리의 국가안보를 훼손하지 않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