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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황빛에서 은빛 우주로 미래산업 대전환 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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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기자I 2026.11.04 05: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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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옥에는 스토리가 있다] 한화 장교동 사옥
창업주 호 새긴 현암빌딩, 1987년부터 그룹 경영 중심지
'다이너마이트 킴' 맺은 그리스 인연, 27층 대사관 유지도
10년새 재계 11위서 5위로…방산·조선·에너지 사업 확장
45개월 대수술 진행…주차장 걷어내고 시민광장 조성도

[이데일리 김기덕 기자] 서울 중구 장교동 한화그룹 사옥 27층에는 조금 특별한 이웃이 있다. 김승연 회장의 집무실이 자리했던 층에 주한 그리스 대사관이 함께 입주해 있는 것이다. 지난 1991년 이 건물에 들어온 그리스 대사관은 35년이 지난 지금까지 같은 층을 사용하고 있다. 국내 대기업 총수의 집무실과 외국 대사관이 한 층에 자리한 것은 한화그룹 창업주인 고(故) 김종희 회장 때부터 이어진 각별한 인연이 있다.

‘다이너마이트 킴(Dynamite Kim)’으로 불렸던 김종희 선대회장은 한국전쟁 이후 화약 국산화에 앞장선 기업인이자 민간 외교관이었다. 1967년 10월 서울 주재 그리스 명예총영사로 임명된 그는 양국을 오가며 경제·문화 교류의 가교 역할을 맡았다. 1972년에는 그리스 콘스탄틴 국왕으로부터 훈장을 받기도 했다.

1981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제2대 회장 취임 관련 행사 모습. 김 회장은 당시 29세의 나이로 그룹 경영을 맡았다. (사진=한화그룹 제공)
1981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제2대 회장 취임 관련 행사 모습. 김 회장은 당시 29세의 나이로 그룹 경영을 맡았다. (사진=한화그룹 제공)
이 같은 인연은 아들인 김승연 회장에게도 이어졌다. 김 회장은 1983년 제2대 그리스 명예총영사직을 승계했고, 1993년과 1994년 그리스 출장 중에는 아테네 현지 성당에서 부친의 추모 미사를 올렸다. 1991년 주한 그리스 대사관이 장교동 한화빌딩 27층에 입주한 것도 이러한 오랜 관계와 무관하지 않다. 창업주가 1960년대 맺은 인연이 60년 가까이 이어져 그룹 본사 한 층에 남아 있는 셈이다.

한화그룹 고위관계자는 “장교동 사옥은 창업주의 경영 철학과 성장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공간”이라며 “새롭게 리뉴얼된 공간에는 김승연 회장으로 대물림된 신의와 신뢰의 경영 철학을 지키면서도 시대 흐름에 맞춰 새로운 비전을 담아냈다”고 말했다.

리모델링 이전 한화 장교동 사옥의 모습.(사진=간삼건축 제공)
리모델링 이전 한화 장교동 사옥의 모습.(사진=간삼건축 제공)
◇35세 젊은 총수가 이름 붙인 현암빌딩…45개월간 대수술

장교동 사옥의 역사는 1987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한주택공사가 장교동 일대 재개발사업을 진행해 현 건물을 지었다. 당시 건물 이름은 현암빌딩이었다. 1981년 별세한 창업주 김종희 회장을 대신해 29살의 젊은 나이에 그룹 경영을 맡은 김승연 회장이 6년 뒤, 사옥이 완공되자 아버지의 호인 ‘현암’을 따서 이름을 지었다.

이듬해인 1988년에는 서울 곳곳에 흩어져 있던 계열사들이 장교동으로 모였다. 화약과 석유화학, 기계 등을 중심으로 사업을 확장하던 한화는 이곳을 그룹 경영의 중심지로 삼았다. 하지만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면서 건물은 낡았고, 그룹의 위상도 커졌다.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사옥의 변화가 필요해진 것이다. 이때 한화가 선택한 것은 철거가 아닌 리모델링이었다. 30년 가까이 그룹의 역사를 품어온 건물의 골격은 그대로 두고 외관과 내부 공간을 전면적으로 바꾸기로 했다.

한화 장교동 사옥 리모델링 후 전경.(사진=한화 제공)
한화 장교동 사옥 리모델링 후 전경.(사진=한화 제공)
하지만 가장 큰 난관은 공사 과정이었다. 장교동 사옥은 그룹 경영의 중심지인데다 사업을 본격적으로 확장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건물을 완전히 비우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직원들은 평소처럼 출근해야 했고 공사는 그 와중에 진행해야 했다. 이때도 직원들을 배려해 소음이 큰 작업은 야간 혹은 주말에 집중했다. 이런 작업을 2016년 3월부터 2019년 11월까지 무려 45개월간 진행하며 노후 설비와 내부 공간, 외관을 새롭게 바꿨다.

당시 공사에 참여했던 김진호 간삼건축 건축가는 “재실 공사지만 부분 철거나 안전성 확보를 위해 구조 보강 등이 진행돼 소음이나 진동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며 “공사를 4+1 사이클로 계획해 공정을 분리하고, 위·아래층에 버퍼층을 추가 확보해 직원들의 불편을 최소화했다”고 말했다.

한화 장교동 사옥 내 다목적강당.(사진=간삼건축 제공)
한화 장교동 사옥 내 다목적강당.(사진=간삼건축 제공)
한화 장교동 사옥 내 회의실.(사진=간삼건축 제공)
한화 장교동 사옥 내 회의실.(사진=간삼건축 제공)
◇세계적 건축사의 설계 경쟁…시민 위한 광장도 조성

한화가 장교동 사옥의 새로운 모습을 구상하면서 선택한 방식은 국제 설계공모였다. 단순히 낡은 건물을 고치는 것을 넘어 그룹의 변화한 정체성을 담아낼 설계안을 찾기 위해서였다. 기업 역사와 경영 철학, 미래 사업까지 보여줘야 하는 공간이었다.

공모 과정을 통해 미국 KPF와 HOK, 네덜란드 유엔스튜디오(UNStudio) 등 세계적인 건축사무소들이 경쟁해 최종적으로 유엔스튜디오가 선정됐다. 국내에서는 간삼건축이 참여했다. 유엔스튜디오가 외관과 주요 내부 공간의 디자인을 맡았다면 간삼건축은 기존 건물의 구조와 설비, 공간 배치 등을 검토하고 국내 설계 업무를 수행했다. 당시 리모델링에 참여한 한 건축가는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참여한 설계 경쟁의 결과는 화려한 외관에만 머물지 않았다”며 “실제 건물을 사용하는 직원들의 일상과 사옥을 오가는 시민들의 경험까지 바꾸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리모델링 과정에서는 임직원들의 업무환경과 복지시설도 개선했다. 직원식당과 휴게공간을 확충하고 피트니스센터를 마련해 업무와 휴식의 편의성을 높였다. 한화그룹 한 직원은 “식당은 각기 다른 요리와 다이닝 경험을 제공하는 여러 구역으로 나뉘어 있어 편안하게 식사를 하고 재충전할 수 있는 공간이 곳곳에 많다”고 말했다.

한화가 장교동 사옥을 바꾸면서 시선을 돌린 곳은 건물 내부만이 아니었다. 사옥 앞 지상 주차장을 없애고 시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광장으로 조성했다. 과거 자동차가 차지했던 공간에는 사람들이 잠시 앉아 쉬거나 오갈 수 있는 보행 공간이 마련됐다. 건물 주변에는 미디어 파빌리온과 조형시설물, 휴게 공간 등이 들어섰다.

한화 장교동 사옥 본사 밖 광장 조경 디자인.(사진=유엔스튜디오 제공)
한화 장교동 사옥 본사 밖 광장 조경 디자인.(사진=유엔스튜디오 제공)
눈길을 끄는 것은 당초 공사 범위에 포함되지 않았던 베를린광장까지 정비했다는 점이다. 청계천과 삼일로 인근에 자리한 베를린광장에는 독일 통일의 상징인 베를린장벽 일부가 설치돼 있다. 역사적 의미를 지닌 공간이지만 주변 도로와의 연결성이 부족하고 시설도 노후화돼 있었다. 설계진은 사옥의 외관만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베를린광장까지 함께 정비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한화는 이를 받아들여 광장 주변의 보행환경과 휴게 공간을 개선했다. 기업의 사유 공간과 시민들이 이용하는 공공 공간을 자연스럽게 연결하겠다는 취지였다.

김 건축가는 리모델링 과정에서 사옥의 외관이 조금씩 바뀌는 모습 자체가 기업의 변화를 보여줬다고 회상했다. 그는 “재실공사로 2년 이상 공사를 진행하면서 변화해가는 입면을 청계천에서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게 돼 한화라는 기업의 아이덴티티도 자연스럽게 변경된 것을 지켜봤다”고 말했다.

◇태양광 진출 이어 방산·석화·조선으로 외연 확장

장교동 사옥이 처음 문을 연 1987년 한화는 화약과 석유화학을 주력으로 하는 기업이었다. 39년이 흐른 지금은 방산과 조선·해양, 우주항공, 에너지, 금융을 아우르는 재계 5위 그룹으로 성장했다. 건물의 외관이 주황색에서 은빛으로 바뀌는 동안 한화의 사업 지형도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실제로 사옥을 준공한 이후 한화의 성장 과정은 끊임없는 변화의 연속이었다. 1992년 그룹 이름을 한국화약에서 한화로 바꿨다. 화약기업이라는 기존 이미지에서 벗어나 종합그룹으로 도약하겠다는 선언이었다. 2002년 대한생명 인수로 금융업을 핵심 사업으로 키웠고, 2012년 독일 큐셀을 인수하며 태양광 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이후 2015년에는 삼성그룹의 방산·화학 계열사를 인수하는 대규모 거래를 성사시켰다. 이를 계기로 방산사업의 외형과 기술력을 키웠고 석유화학 분야에서도 규모의 경제를 확보했다. 2023년에는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해 한화오션을 출범시키며 조선·해양사업까지 품었다.

이러한 사업 재편은 그룹의 위상 변화로 이어졌다. 올해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공시대상기업집단 순위에서 처음으로 재계 5위(공정자산총액 149조6050억원)에 올라섰다. 지난해 7위에서 두 계단 상승하며 롯데와 포스코를 앞질렀다. 2016년 재계 11위였던 한화가 10년 만에 여섯 계단 올라선 것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지난 2016년 서울 장교동 한화그룹 본사 로비에 설치된 '그룹사보 45년사 기획전'을 바라보고 있다.(사진=한화 제공)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지난 2016년 서울 장교동 한화그룹 본사 로비에 설치된 '그룹사보 45년사 기획전'을 바라보고 있다.(사진=한화 제공)
김승연 회장이 지난 45년간 굵직한 인수합병(M&A)을 통해 한화의 사업 영역을 넓혀왔다면, 최근에는 김동관 수석부회장이 방산·조선·우주항공·에너지 등 핵심 사업을 중심으로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김 수석부회장은 태양광 사업을 시작으로 그룹의 미래사업을 주도해왔으며, 최근에는 방산과 조선·해양 분야까지 경영 보폭을 넓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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