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차 부회장의 거취는 인사 발표 전부터 상당한 관심을 끌었다. ‘굴러 온 돌’인 차 부회장이 LG생활건강을 맡은 지 벌써 10년이다. 외부 출신으론 처음으로 LG그룹에서 부회장까지 올랐다. 회사를 떠나거나 다른 자리로 이동해도 사실 이상할 건 없었다.
6월에는 차 부회장이 자신이 보유한 LG생활건강 보통주 2만2000주 전량을 처분하기도 했다. 당시 차 부회장은 “퇴임과 관련 없는 일”이라고 말했지만, 차 부회장의 주식 매각으로 당시 LG생활건강의 시가 총액은 하루만에 1조원이 증발했다. 업계에서는 “이제는 인사 발표만 남았다”는 얘기까지 떠돌았다.
하지만 변화는 없었다. 구 회장은 여전히 차 부회장이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다고 판단하고 또 한번 차 부회장을 선택했다.
11년째 LG생활건강을 맡게 된 차 부회장은 현재 LG그룹 부회장단 중에서 전문경영인으로는 가장 오래 CEO 자리를 지킨 인물이 됐다. 국내 재계에서도 기업 한 곳에서 10년 이상 CEO 자리를 유지한 전문경영인의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로 극소수다. 그만큼 차 부회장의 입지가 공고하다는 뜻이다.
정통 ‘LG맨’이 아닌 차 부회장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보다 탁월한 성적표다. LG생활건강은 차 부회장이 맡은 2005년 이후 실적이 크게 좋아졌다. 특히 차 부회장은 무려 13건의 기업 인수를 성공시키며 기업의 덩치를 몰라보게 키웠다. 코카콜라음료(2007년) 다이아몬드샘물(2009년) 더페이스샵(2010년) 해태음료(2011년) 바이올렛드림, 일본 긴자스테파니(2012년)·에버라이프, 캐나다 푸르츠앤드패션(2013년) 등을 잇따라 사들였다.
새로운 사업이 덧붙여지면서 LG생활건강의 실적도 달라졌다. 지난해 매출은 4조3262억원, 영업이익은 4964억원으로 늘었다. 한해 매출이 1조원이던 회사가 한 분기에 1조원씩 파는 회사로 변신했다. ‘차석용 없이는 불가능했다’는 평가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재계 한 관계자는 “여러 소문에도 임기를 계속 이어가는 것을 보면 구본무 회장의 신뢰를 여전히 받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차 부회장은 1985년 미국 P&G 사원으로 입사한 뒤 1999년 한국P&G 사장에 올랐다. 이후 2001년 해태제과 대표이사를 거쳐 2005년 1월 LG생활건강 사장에 영입됐다. 2011년 12월에는 LG그룹이 외부에서 영입한 경영인 중 처음으로 부회장으로 승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