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유상증자와 경영권 인수 공시 직전 기관 투자자의 대량 매도가 이뤄진 점, 해당 공시가 시간외 단일가 매매 종료 직후인 저녁 시간에 기습적으로 이뤄진 점, 일부 증권사 리서치센터에서 유증 가능성을 일축한 지 약 일주일만에 유증 공시가 나간 점 등을 둘러싼 의혹이 커지는 모양새다.
이수페타시스는 지난 8일 오후 4시 55분 신규 시설투자 공시를 냈다. 오는 2028년까지 4000억원을 투자해 신규 공장을 신설한다는 내용으로, 이수페타시스의 지난해 자기자본(2668억원)의 150%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 내역이었다. 장 마감 후 시간외 단일가 매매 시간(오후 4시~6시)에 나온 호재성 공시에 매수세가 집중됐다.
하지만 신규 시설투자 공시 이후 2시간 뒤인 오후 6시 44분, 이수페타시스는 4개의 공시를 연달아 쏟아냈다. 3000억원을 들여 제이오 경영권 지분과 전환사채(CB)를 취득하고, 해당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5498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추진한다는 계획이었다. 유상증자 배경은 공시로부터 16분 후에 열릴 오후 7시 애널리스트 대상 미팅에서 설명하겠다는 공시도 함께 나왔다.
대규모 유상증자는 기존 주주들의 지분 가치 희석으로 이어져 악재로 읽힌다. 특히 유증 대금의 절반 이상을 제이오 인수에 활용한다는 점에서 주주들의 반응은 더욱 싸늘했다. 이수페타시스는 신규 시설 투자에도 일부 자금을 활용한다고 밝혔지만, 유증 발표 이후 주가가 급락하면서 사실상 제이오 인수만을 위한 유상증자라는 지적도 이어졌다.
증권가에서도 부정적 평가가 쏟아졌다. 이수페타시스는 반도체 기판 기업으로, 이수그룹 내 이수화학, 이수스페셜티케미컬 등 소재기업들과 제이오의 시너지가 더 클 거란 판단에서다. 양승수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제이오 인수는 투자자 입장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의사 결정”이라며 투자 의견을 ‘중립’으로 하향 조정했다. 김소원 키움증권 연구원도 “제이오 인수로 단기 불확실성이 확대됐다”고 평가했다.
◇ 사전 정보 유출됐나…리서치센터도 구설수
일각에선 유상증자 정보가 사전에 유출됐을 가능성도 나온다. 공시 이전 기관의 대량 매도가 이어졌다는 점에서다. 이수페타시스 주가는 지난달 24일 장중 4만6500원을 기록한 뒤 전날 2만2400원에 마감하며 51.8% 급락했는데, 이 기간 기관이 1282억원 넘는 물량을 쏟아내며 주가 하락을 견인했다.
기관 중에서도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펀드자금이 해당되는 ‘금융투자’와 ‘투신’에서 매도세가 집중됐다. 금융투자와 투신은 10월 29일부터 유증 발표 이틀 전인 11월 6일까지 7거래일 연속 매도 우위를 보이며 각각 104억원, 364억원 어치를 순매도했다. 일부 투자자들은 증권가에 유증 계획이 사전에 유출되면서 이같은 매도세가 이어진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는 대리 해명 논란에 휩싸였다. 이 증권사 소속 박상현 연구원은 지난달 31일 “유상증자와 관련한 이수페타시스의 공식 의견은 사실 무근”이라며 “전략적 M&A 가능성도 높지 않다고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불과 8일 만에 이수페타시스가 유상증자와 경영권 인수 계획을 내놓으면서 결과적으로 정반대 해명을 대리로 내놓은 모양새가 됐다.
박 연구원은 전날 새로운 리포트를 통해 “제이오는 탄소나노튜브(CNT)를 주력으로 하는 2차전지 소재 기업으로, 이수페타시스 본업과의 상관성이 크지 않다”며 “단일 사업 구조 탈피를 위한 신사업 진출이라는 명분만으로는 주주가치 훼손이 동반되는 유상증자가 합리화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설득력 없는 유상증자는 실망스럽지만, 역설적으로 밸류에이션(기업가치)은 매력적인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