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벨리브 Velib’
현재 파리에서 시행 중인 공공 자전거 임대 사업을 벨리브라고 부른다. 벨리브는 프랑스어로 자전거를 뜻하는 벨로vélo와 자유를 뜻하는 리베르테liberté의 합성어이다. 벨로vélo는 자전거 경주장을 지칭하는 벨로드롬에도 들어있는 말인데, 이륜차를 뜻하는 긴 말인 비시클레트 대신 많이 쓰이는 일상어다. 벨리브는 직역을 하면 ‘자유 자전거’라는 말이 되는 셈인데, 어디서나 자유롭게 탈 수 있다는 뜻과 자동차에서 해방되었다는 이중의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벨리브가 말 그대로 자유 자전거를 뜻한다고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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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벨리브는 사실은 라로셸이나 리용과 같은 프랑스의 다른 도시에서 먼저 시행된 적이 있는 정책이며 유럽의 다른 나라들, 특히 네덜란드 등에서는 일찍부터 자전거가 도심 이동수단으로 생활화 되어 있었다. 이는 파리의 벨리브 정책에 두 가지 생각해 볼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일러주며, 이 두 가지 문제는 한국형 벨리브 정책을 시행하려는 시점에서 우리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들이기도 하다.
첫째, 파리 같이 복잡하고 해외 관광객을 포함해 유동인구가 많은 도시에서 과연 자전거 타기가, 그것도 상당히 비싼 임대료를 내고 타야 하는 자전거 타기가 성공할 수 있었다는 점을 우선 눈여겨봐야 할 것이다. (현재 파리 벨리브는 처음 30분간은 무료이지만 이후 30분 단위로 할증이 붙는데, 20시간을 임대할 경우 무려 151유로를 내야 한다. 게다가 이 비용과는 별도로 임대 시 자전거 손실이나 파손을 대비한 보증금 150유로와 정기권 수수료 29유로를 내야 한다.)
파리 벨리브의 성공은 전적으로 공해로부터 환경을 지키기 위한 문화적 공감대가 시민들 사이에 널리 퍼져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프랑스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유례없는 더위로 수만 명의 노인들이 사망하거나 돌풍으로 유 서깊은 유적지들이 복구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되는 환경 재앙을 겪었다. 상당히 다양한 기후를 보이는 프랑스지만 전체적으로 기후는 상당히 온화한 편이었다.) 정책을 밀어부친 파리 시장은 이 환경 보호에 대한 공감대가 생활 속에서 실천되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이다. 정치가는 이제나 저제나 민심을 읽을 줄 알아야 하는 것이며 그리고 어느 정도의 뚝심도 필요하다. 파리 시장도 처음에는 많은 반대에 부딪쳤었다.
둘째,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예산과 구체적인 방안이 도출되지 않으면 한낱 공염불에 그치고 마는데, 파리 벨리브 정책은 1955년에 설립된 세계 최고의 공공 기물 설치 및 디자인 회사인 프랑스의 ‘지시데코JCDecaux’라는 전통과 능력을 갖춘 전문 기업이 있었기 때문에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현재 한국에도 들어와 영업 중인 이 회사는 퍼블릭 아트로 불리는 공공 기물 디자인과 설치 및 운영에 있어 세계 최고, 최대의 기업이다. 2008년도 매출액이 약 22억 유로에 달했다.
지시데코는 파리만이 아니라 프랑스 전역 곳곳에 버스 정류장, 신문 가판대, 휴지통을 비롯한 공공기물과 각종 대형 사인물을 설치 유지하는 기업체이다. 회사 이름은 창업자 이름이기도 한데, 데코는 같은 발음을 지닌 장식을 뜻하는 약자 déco와 유사하여 이 회사는 회사 이름 자체로 큰 덕을 보고 있다. 지시데코는 기차역이나 고속도로 혹은 공항 등의 대형 입간판과 전자 광고판도 동시에 디자인하고 설치 유지한다. 물론 주 수입은 각종 공공기물에 부착되어 노출되는 광고에서 나온다.
이에서 알 수 있듯이 파리의 벨리브도 엄청난 이권이 개입된 사업이어서 경쟁업체로부터 소를 당하기도 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특히 미국계 Clear Channel로부터 심각한 견제를 당했다.
한국형 벨리브, 환경과 산업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대통령의 연설 한 마디에 자전거 산업체들의 주가가 급등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 발표로 인해 한국의 자전거 산업과 연관된 기업들이 이 특수를 누리고 나아가서는 장기적으로 기반을 다질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하게 시간, 기술, 마케팅 역량에 여유가 있는지 의문이 들며 걱정도 된다. 준비할 시간이 있는지 궁금한 것은 대통령의 라디오 방송이 조금 느닷없이 나왔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혹여 한 대에 수백 만원씩 하는, 때론 천 만원도 넘는 비싸도 터무니없이 비싼 외제 자전거 수입업자들의 배만 불려주는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가 우선 머리를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이미 외국 자동차 업체들은 자사 로고가 붙은 자전거를 판매하며 브랜드 파워로 공략을 시작하고 있다. 사실 이름만 들어도 일반인들로서는 주눅이 들게 마련인 유명 자동차 회사들의 자전거는 모르긴 몰라도 자전거에도 양극화 바람을 몰고 올 것이다. 자전거는 여행, 레저 산업의 도구이기 때문에 갈수록 기능 못지않게 화려한 겉모습이나 특수한 기능 등 과시욕을 만족시켜주는 외관이 중요할 수도 있다. 헬멧, 장갑, 신발, 마스크, 운동복과 자전거용 GPS 등이 고급화될 것이며 자전거 전용 스포츠가방도 만만치 않은 상품으로 부각될 것이다. 이 모든 관련 산업이 외국업체의 손으로 넘어가는 것은 안타까운 일임에 틀림없다.
피리의 벨리브의 경우, 전용카드나 신용카드로 결제가 가능하며, 이를 위해 2007년 말 기준 약 1,450개가 마련된 자전거 역에는 컴퓨터를 통해 중앙 통제가 되는 기둥 모양의 콘트롤타워가 세워져 있고 역마다 수십 개씩 마련된 자전거 거치대에는 도난방지를 위한 안티볼 antivol 시스템이 설치되어있다. 이 모든 온라인 통제시스템 구축은 지시데코의 작품이며 설치와 운영 유지에 드는 비용도 결코 적은 액수는 아닐 것이다. 이 시스템도 한국에 맞는 것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무게 22kg이 나가는 도심형 경량 자전거 역시 지시데코의 디자인에 의해 만들어 진 것인데 제작은 싼값에 생산할 수 있는 헝가리에서 했다고 한다.
한국형 벨리브는 환경과 건강을 생각하는 좋은 정책이지만 정부에게는 국내 산업에 미치는 파급력을 극대화해야 하는 또 다른 책무가 있을 것이다. 한 기업에 특혜를 주던 시대는 이제 지나갔다. 때론 분야별로는 국제 입찰을 할 수도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하지만 임기 5년의 대통령이 아이디어 차원에서 단발로 제기하는 정책에는 산업계가 정책에 대비하는 시간적, 기술적 여유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이 점을 피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형 벨리브, 결국은 여행, 문화, 예술이라는 소프트웨어의 싸움
프랑스는 전 세계에서 가장 국도가 잘 발달된 나라 중 하나다. 19세기 중엽의 대표적인 소설인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보면 프랑스 전역에 마차를 타고 출몰하는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볼 수 있는데 도로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설정이다. 심지어 350년 전에 쓰여진 17세기 소설에서도 파리에서 300km 떨어진 루아르 강변이나 800km 이상 떨어진 피레네 산맥까지 오가는 마차를 볼 수 있는데, 이는 모두 당시의 도로망을 짐작하게 한다. 이 국도가 프랑스 자전거 산업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는 매년 열리는 프랑스 일주 자전거 대회인 ‘투르 드 프랑스’는 이 국도를 달리는 경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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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리는 한국형 벨리브를 문화 예술적인 측면에서 한 번 심각하게 생각해볼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건강을 증진하고 환경도 살리고 또 자전거 산업도 발전시켜야 하지만, 자전거를 하나의 국제적인 이벤트로 격상시켜 하나의 축제로 만들고 그를 통해 국가 브랜드를 높이고 상업성까지 확보하는 지혜도 배워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한국형, ‘투르 드 코레’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있을 것이다. 지방마다 고을마다 독특한 문화와 요리가 있고 문화 축제가 있으며 이를 활용하는 방법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 또 하나 비무장지대를 활용한 평화와 환경 자전거 대회도 한국만이 열수 있는 자전거 이벤트일 것이다. 우선 고성에서 강화도까지 동서로 산악 바이크 대회를 열 수 있을 것이다. 세계 최후의 냉전 유물이지만 세계 최고의 환경 보존지역이기도 한 DMZ를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이 보다 더 좋은 대회도 없을 것이다.
자전거용 GPS와 연계된 각 고장의 민속, 문화, 관광 자료도 책이나 전자책 형태로 제작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자전거를 타는 이들에게 문화와 예술적 만족을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전거 도로가 완성되고 자전거 여행이 활성화되면 차에 자전거를 싣고 장거리를 이동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며 이들에게 자전거 여행은 단순히 건강만을 위한 레포츠 그 이상의 것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사계절이 뚜렷해서 한 겨울이나 한 여름에는 자전거 타기가 망설여지고 공해도 심한 한국에서 자전거 타기가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자전거만 강조해서는 큰 성과를 거두기 어려울 수 있다. 또 프랑스 같은 선진국에 비해 아직은 더 바쁘게 살아야 하는 한국의 직장인들에게는 자전거로 출퇴근하라는 요구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많은 이들에게 자전거는 아직은 주말에나 즐기는 여러 레포츠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정부는 절대로 자전거를 강요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인프라가 갖추어지면 자연스럽게 자전거 페달을 밟을 것이다. 정부가 할 일은 이 자연스러움을 자연스럽게 유도해 내는 것이다. 후일 2,000km 자전거 일주 도로에 이명박 도로라는 이름이 붙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그 길을 달리며 사람들 입에서 욕이 아닌 콧노래가 흘러나와야 하는 것이다. 4대강과 연계하겠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꼭 그래야만 하나 하는 생각을 적지 않은 이들이 하고 있을 것이다.
여행·문화·예술 포탈 레 바캉스(www.lesvacances.co.kr) 대표 정장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