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검사생활을 한 윤 대통령의 인식구조는 유죄와 무죄, 적과 우, 자유 민주주의세력과 반국가세력 등 이분법적 적우관과 흑백논리, 그리고 ‘독선적 정의관’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 야당을 반국가세력, 체제전복 세력으로 인식할 경우 대화와 타협을 통한 협치는 불가능하다. ‘반북대결정책’을 펴며 ‘자유의 북진통일’을 내세울 경우 더 이상 남북 화해·협력은 불가능하게 된다. 계엄 이후 북한의 특별한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과거 냉전 시대 화법이라면 북한이 혼란을 틈타 대남도발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나올 법하지만 그런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북한은 대북전단에 오물풍선과 ‘괴기한 소음’으로 대응하며 대남도발을 자제하고 있다. 북한은 국내 정치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윤석열 정부가 국지전에서 출로를 찾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다. 북한은 충돌을 피하기 위한 ‘정세관리’를 강조하고 있다.
북한이 한반도 ‘적대적 두 국가’에 따른 영토규정을 헌법에 명문화한다고 했지만 내용을 밝히지 않고 있다. 북한이 군사분계선(MDL)을 국경선으로 하는 법적·물리적 조치를 취하면서도 해상경계선과 관련한 내용을 밝히지 않는 것은 충돌을 우려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한민국이 설정한 북방한계선(NLL)과 북한이 설정한 ‘경비계선’ 사이에 겹치는 부분이 있어 충돌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북한이 육상에서 ‘국경선 쌓기’(re-bordering)를 서두르면서 해상 경계선과 관련해서 침묵하는 것은 충돌을 피하기 위한 의도적인 침묵으로 봐야 할 것이다. 북한은 윤석열 정부가 어떻게 나올지 몰라 자극하지 않는 ‘회피전략’을 펴고 있는지도 모른다. 북한이 도발해 국지전이 벌어진다면 계엄 선포의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실패한 계엄’으로 윤석열 정부가 성과로 내세웠던 한미동맹에 큰 손상을 입고 대외 신인도 추락을 불러왔다. 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부장관은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심한 오판’(badly misjudged)이었다고 평가했다. 가치동맹과 규칙기반질서를 내세우고 한미동맹을 핵기반 동맹으로 격상했던 미국으로선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지 못하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계엄 선포에 적지 않은 불만을 품은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에서 열기로 한 한미 핵협의그룹(NCG) 회의도 취소했다. 예정된 외교 일정이 유보되거나 취소되고 관광객 감소와 주가 하락 등 대외 신인도가 하락할 위기에 봉착했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헌법가치를 중시하고 한미동맹 강화를 내세웠던 윤 대통령이 자기 부정적이고 자멸적인 계엄을 선포함으로써 이에 따른 피해와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돌아왔다. 빠른 민주주의 복원력에서 확인한 국민의 저력으로 조속히 위기를 극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