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매일이 축제”…4박5일 가족 크루즈 여행 체험기

김형욱 기자I 2018.10.31 08:01:01

15층 높이 ''작은 도시''…수영장·아이스링크까지
현지가서 승선까지 반나절…''국내에서 탔더라면''

[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중국~베트남 항로를 운항하고 있는 13만7000t급 크루즈선 로얄캐리비안 보이저호. 길이가 300m를 넘다 보니 항만에서 보통의 사진기로 한번에 전체 모습을 담기가 어렵다.


[선전(중국)=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그깟 배 한번 타려고 비행기까지 타고 가나.’ 예비 신부가 신혼여행 대신 가족과 함께 크루즈 여행을 가자고 제안했다. 내심 불만이었다. 멀미도 걱정됐다. 그래도 결혼을 앞둔 신부를 이길 신랑은 없다.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날 위해 ‘많이 걸어 다니지 않아도 된다’, ‘’타짜‘에서 본 것 같은 카지노가 있다’는 거듭된 유혹에 내심 끌리기도 했다. 그렇게 지난 8월 기자는 난생처음 ‘호화 크루즈’란 걸 탔다. 중국 남부 선전에서 출발해 베트남 다낭을 경유해 홍콩으로 돌아오는 4박5일의 일정이었다.

듣던 대로 그냥 배는 아니었다. 엄청나게 컸다. 큰 건물이라기보단 작은 도시에 가까웠다. 15층 높이의 이 ‘도시’엔 크고 작은 공연장과 쇼핑 거리, 꽤 큰 아이스링크가 있었다. 수영장, 인공 파도타기장, 암벽타기, 실내 헬스장에 실외 조깅 코스도 있었다. 1500여개의 객실에 3000여명의 승객이 있고 또 이들의 편의를 봐 줄 2000여명의 승무원·스태프가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로얄캐리비안 보이저호는 13만7000t급인데 22만t급도 있다고 했다.

매일 매일이 축제였다. 하루에도 40여 이벤트가 여기저기서 열렸다. 아침 헬스장 요가 클래스를 시작으로 케이팝과 함께 하는 댄스 타임, 오후 파도타기와 암벽타기 체험, 저녁 땐 크고 작은 공연이 이어졌다. 아이스링크 쇼, 마술 쇼, 뮤지컬, 록 밴드 공연, 기타 솔로, 피아노 공연…. 사람들은 취향 따라 조깅을 하거나 한적한 바에서 피아노 연주를 들었다. 아이들은 수영장에 누워 대형 스크린으로 영화를 봤고 어른들은 카지노에서 블랙잭, 바카라를 했다. 개중에는 숙소 발코니에서 망망대해를 만끽한 사람도 있었으리라. 그냥 배가 아니라는 예비 신부의 말은 맞았지만 많이 걷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다. 신부 따라 이런저런 일정을 소화하다 보니 녹초가 되기 일쑤였다. 스마트폰은 내가 하루 2만보 이상을 걸었다고 알려줬다.

[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13만7000t급 크루즈선 로얄캐리비안 보이저호 14층에 있는 조깅 코스. 전체를 돌면 거리가 제법 된다.
[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13만7000t급 크루즈선 로얄캐리비안 보이저호 내 아이스링크에서 피겨 스케이팅 쇼를 하는 모습.


기항지 투어도 색달랐다. 배가 머무는 아침에 나와서 저녁 전에 돌아오는 현지와의 짧은 만남. 배에서 예약한 현지인 한국어 가이드의 권유로 경유지인 다낭 인근의 옛 관광도시 호이안을 찾아 이곳의 역사와 현재를 배웠다. 기념품도 샀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현지 공기는 충분히 느꼈다. 돌아오는 길에 내린 홍콩 관광까지, 크루즈라는 작은 도시부터 베트남, 홍콩까지 3개 도시를 압축해서 만끽한 느낌이었다.

돈은 넷이서 640만원 들었다. 1인당 160만원. 많다면 많지만 미국·유럽 여행을 갔다고 생각해보면 나쁘지 않았다. 실제 크루즈를 타는 비용은 1인당 103만원(412만원)이었다. 또 크루즈 안에선 식사부터 공연까지 모든 게 공짜였다. 기분 낸다고 조용한 유료 식당에 가고 술을 사 마신 게 유일한 추가 비용이었다. 비행기 왕복 요금이 적잖이 들었다. 중국발 배이다보니 기항지 투어 때 한국어 단체관광이 없어서 별도로 가이드를 고용해야 했다. 100달러쯤 쓸 참으로 카지노도 가 봤는데 요행인지 오히려 10달러쯤 벌어 왔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배와 배 안의 사람에 정이 들었다. 즐겨 듣던 록 밴드는 홍콩의 거리에서 다시 만났다. 서로 반갑게 인사했다. 마지막 날 밤 옆 객실의 중국 아이들이 ‘결혼을 축하해요’란 중국어가 쓰인 그림 선물을 줬다. 문 앞에 붙여 놓은 ‘Just Married’란 글귀를 보고 준비한 것이리라. 뭔가 뭉클했다. 중국 사람들 때문에 시끄럽다고 불평한 게 괜스레 미안해졌다.

유일한 아쉬움은 한국에서 출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배를 타러 가는 게 고역이었다. 집에서 인천공항, 선전공항에서 다시 선전항구로 가야 했다. 승선 때 2~3개국 입국 절차를 한번에 밟았다. 집 떠나온 지 반나절 만에 객실에 도착하니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또 승객 90% 이상이 중국인이다보니 공용어가 사실상 중국어였다. 신부 부모님이 홀로 산책 나갈 땐 길을 잃진 않을까 걱정했다. 한국에서 출발하는 이 정도의 크루즈 여행 기회가 많아진다면 이번엔 우리 부모님을 모시고 한번 더 타볼 만했다.

[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베트남 도시 호이안에서의 기항지 투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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