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제공] 수원화성의 문화유산적 가치
사적 제3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는 수원 화성은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18세기에 완공된 짧은 역사의 유산이지만 동서양의 군사시설이론을 잘 배합시킨 독특한 성으로서 방어적 기능이 뛰어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약 6km에 달하는 성벽안에는 4개의 성문이 있으며 모든 건조물이 각기 모양과 디자인이 다른 다양성을 지니고 있다.
등록기준 : 세계문화유산기준 (Ⅱ), (Ⅲ)
(Ⅱ) 일정한 시간에 걸쳐 혹은 세계의 한 문화권내에서 건축, 기념물조각, 정원 및 조경디자인, 관련예술 또는 인간정주 등의 결과로서 일어난 발전사항들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유산.
(Ⅲ) 독특하거나 지극히 희귀하거나 혹은 아주 오래된 유산.
|
수원화성은 조선왕조 제22대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선왕인 영조의 둘째왕자로 세자에 책봉되었으나 당쟁에 휘말려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뒤주속에서 생을 마감함)의 능침을 조선 최대의 명당인 수원의 화산으로 옮기고, 화산부근에 있던 읍치를 지금의 위치로 옮기면서 축성되었다.
수원화성은 규장각 문신 정약용이 동서양의 기술서를 참고하여 만든 「성화주략(1793년)」을 지침서로 하여, 재상을 지낸 영중추 부사 채제공의 총괄아래 조심태의 지휘로 1794년 1월에 착공에 들어가 1796년 9월에 완공하였다. 화성 축성시에 거중기, 녹로 등 신기재를 특수하게 고안하여 장대한 석재 등을 옮기며 쌓는데 이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때문에 실학정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건축물로도 꼽히고 있다.
|
소장 문화재로 팔달문(보물 제402호), 화서문(보물 제403호), 장안문, 공심돈 등이 있으나, 서장대는 2006년 취객에 의한 방화로 전소되었다. 서장대는 1996년에도 방화로 전소돼 새로 복원되었던 건물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되기 전인 당시 복원비용이 10억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추정되는 피해 액수는 갑절 이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 관련기사 ◀
☞한국의 세계문화유산 다시 보기-제 5편 창덕궁
☞한국의 세계문화유산 다시 보기-제 4편 종묘
☞한국의 세계문화유산 다시 보기-제 3편 해인사 장경판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