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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증오정치 끝내야…르완다 집단학살 사건의 교훈”

백주아 기자I 2025.04.17 06:13:09

박선기 UN 전범재판소 재판관 인터뷰
2004년부터 학살 범죄자 수백명 심판
“과거사 편가르기가 제노사이드 비극 핵심”
“편견·차별이 폭력·학살 이어지는 건 시간문제”
“격변의 시대, 사회지도층의 양심·성찰 필요”

[이데일리 백주아 기자] “과거사를 확대 재생산해서 선동과 증오의 정치를 극대화한 결과가 ‘르완다 제노사이드(Genocide, 집단학살)’의 핵심이다. 혐오와 편견의 언어로 국민을 편 가르는 정치는 결국 나라를 망하게 한다.”

16일 서울 서초동 법무법인 대동 사무실에서 만난 박선기 국제연합(UN) 전범재판소 잔여업무처리기구(MICT) 재판관은 인류 역사상 초유의 대량학살로 꼽히는 르완다 집단학살 발발 31주년을 맞아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MICT는 지난 2010년 12월 유엔 안보리 결의 제1966호에 의거해 옛 유고슬라비아 전범재판소(ICTY)와 르완다 전범재판소(ICTR)의 관할권, 권리·의무 및 핵심 기능을 이관받고 그 유산을 이어가기 위해 설치된 유엔 국제재판소다.

박선기 UN국제전범재판소 잔여업무처리기구 재판관·법무법인 대동 변호사. (사진=이데일리 김태형 기자)
박 재판관은 지난 2004~2012년 르완다 전범재판소(ICTR)에 이어 2012년부터 현재까지 MICT 재판관으로 근무하며 집단학살 및 전쟁범죄 주 책임자들을 심판했다. 1994년 4월 7일부터 약 100일간 아프리카 심장 르완다에서는 전체 인구 800만명 중 10% 이상(80만~100만명 추정)이 살해당하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다. 벨기에 식민지였던 르완다는 소수족 투치족을 중용해 다수족 후투족을 다스렸는데 독립 후 대립과 분열이 이어지다 두 종족 간 내전과 함께 르완다 대학살이 자행됐다.

박 재판관은 “경상도 면적의 아름다운 도시에서 20세기 인류사에서 최단 기간에 가장 원시적 방법으로 자행된 대량학살 사건”이라며 “사건 이후 약 20년에 걸쳐 96명의 학살 책임자를 기소해 무죄가 선고된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종신형 징역 30년 등 중형의 유죄판결이 나왔다”고 했다. 최근까지 그는 기결수의 재심 사건 재판, 가석방 심사 등 잔여 업무 등을 처리했다.

그는 르완다 사건이 우리 사회에 주는 교훈으로 ‘과거사’ 문제를 짚었다. 독일 나치의 홀로코스트, 르완다와 유고 대량학살 사건 모두 사회지도층이 과거사 문제를 중심에 두고 종족, 종교, 이념, 인종 문제와 연결해 극단적 증오와 혐오심을 부추겨 일으킨 비극의 역사가 되풀이됐다는 점에서다.

박 재판관은 “과거사를 기준으로 적과 동지를 나누고 반대편을 쓸어버리지 않고는 우리 자손의 미래가 없다는 식의 선동으로, 통합 대신 편을 가르는 정치세력이 결국 나라를 망치는 주범”이라며 “우리나라 역시 2차 세계 대전 후 80년이 지난 지금까지 과거사에 기반해 반일 친일 프레임으로 국민을 편 가르고 반대 세력을 파괴하려는 갈등구조가 심화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증오를 부추기는 정치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그는 “미국 사회심리학자 고든 윌러드 올포트가 정립한 ‘편견 척도’로 제노사이드를 분석하면 1단계 혐오 발언→2단계 회피→3단계 차별→4단계 폭력→5단계 학살로 나아간다”며 “중도와 합리적인 것들을 철저히 배격하는 정치인들의 언어와 언론의 프로파간다(선전·선동)로 시작된 증오가 반대 세력에 대한 회피와 차별 단계까지 이어지면서 하나의 트리거(기폭제)로 작동하면 폭력과 학살로 가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 정치는 현재 2~3단계 수준”이라고 말했다.

박 재판관은 조기 대선을 앞두고 정치인들의 ‘양심’을 강조했다. 헌법 제46조 제2항에 따르면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해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하도록 돼 있다. 그는 “지도층과 정치인들이 국가와 국민의 미래와 이익을 위해 어떤 법과 제도를 기반으로 미래로 나갈 것인지에 대해 뼈를 깎는 자기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편견과 갈등을 조장해 증오와 대립을 주장하는 세력은 자신만 망치는 게 아니라 나라의 미래를 망치게 된다. 격변의 시대 국민 통합과 화합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르완다 비극이 대한민국 현실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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