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천국을 보여주겠다며 남자를 데려간 그곳은 아까와 똑같은 솥이 있는 방이었다. 솥 안에는 스프가 맛있게 끓고 있었고, 사람들은 아까와 같은 긴 손잡이가 달린 숟가락을 갖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배고픔에 허덕이지 않고 있었다. 사람들은 오히려 밝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며 행복해 보였다.
이해가 가지 않은 남자는 신에게 물었다. “똑같은 방인데 왜 천국의 방에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행복해 보이는 것입니까?” 그러자 신이 대답했다. “아주 간단하네. 이들은 서로에게 수프를 먹여 주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지.”
똑같은 방인데도, 생각과 관점을 바꾸니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천당과 지옥은 내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또는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사건이나 상황이 아니다.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생각과 관점이 이를 조장한다. 생각과 관점을 바꿔 세상을 바라보면, 상황이 변한다.
두 죄수가 창살 사이로 바깥을 내다보았다. 한 사람은 진흙탕이 된 땅바닥을 보았지만, 다른 사람은 별이 반짝이는 하늘을 보았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한 죄수는 절망의 바닥을 보고, 다른 죄수는 고개를 들어 밝은 희망을 쳐다본다.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는 늘 두 죄수가 살고 있다.
두 죄수 이야기는 미국 여류작가 델마 톰슨의 일화이다. 2차 대전 중에 델마 톰슨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 모하비(Mojave) 사막에 있는 부대로 배치된 육군장교인 남편을 따라 사막에서 생활하였다. 그녀는 남편이 나가면, 텅빈 집에 달랑 혼자 남았다. 그 곳은 섭씨 46도를 오르내리는 지독한 무더위에 바람에 날리는 모래가 음식에 섞이기 일쑤였다. 인디언과 멕시코인들 밖에 없는 사막 생활은 영어도 통하지 않고 외롭고 견디기 힘든 나날이었다. 차라리 감옥에 사는 것이 낫겠다며 부모님께 어려움을 토로한 편지를 보냈다.
친정 아버지의 답변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달랑 적혀 있었다. “감옥 문창살 사이로 내다보는 두 사람, 한 사람은 흙탕을 보고 다른 사람은 별을 본다.” 편지를 받은 톰슨 부인은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이 두 줄의 글이 그녀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그녀는 곧 그곳의 낯선 이웃들과 친구가 됨은 물론 자신의 생활을 사랑하며 사막의 이야기를 소설로 썼는데, 그 제목이 `빛나는 성벽`(The Bright Rampart)이었고 유명한 여류 작가로 성공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생각을 바꿈으로써 불행의 포로에서 일약 유명작가로 변신할 수 있었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한 죄수는 절망의 바닥을 보고, 다른 죄수는 고개를 들어 밝은 희망을 쳐다본다.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는 늘 두 죄수가 살고 있다. 흙탕을 보고 절망하며 살 것인지, 아니면 별을 바라보며 희망 속에 살 것인지는 내 마음에 달렸다.
신라 시대에 원효대사가 불교 공부를 하려고 당나라를 향해 가던 어느 날 밤 동굴을 찾아 잠을 자던 중 목이 말라 근처 바가지 같은 것에 담긴 물을 맛있게 먹고 다시 잠을 잤다. 그런데 아침에 해골에 고여 있었던 물인 것을 알고는 토했다. 그리곤 정신을 가다듬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물은 변함없는 똑같은 물이었는데, 어제는 맛있게 먹고 오늘은 구역질을 했을까. 모든 것은 나 자신에게 있다. 내 마음 속에 천당도 있고 지옥도 있다.”
일체의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에 달려 있다(일체유심조, 一切唯心造). 같은 환경 속에서 어떤 사람은 그 사실을 행운으로 만들고, 어떤 사람은 그 사실을 불행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세상사는 마음먹기 나름이다.
천국은 이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생각과 이해 방식을 바꾼다면, 우리가 보고 느끼는 세상도 바뀐다. 어두운 곳에 머문 눈을 돌려 세상의 경이로운 풍경을 보고 즐겨보자. 그것이 삶의 경쾌한 걸음을 일구는 근본이다.
◆ 윤경 변호사는…
△사법연수원 17기 △서울고법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법무법인(유한) 바른 파트너 변호사 △現 공동법률사무소 더리드(The Lead) 대표 변호사 겸 아하에셋 자산운용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