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한 마을의 입구에 서 있던 400년 된 거대한 나무가 한 순간에 쓰러졌다. 그 나무는 수백 년간 마을 입구에 우뚝 서서 14번이나 벼락을 맞아도 쓰러지지 않았으며, 수많은 홍수와 폭설을 견뎌냈다. 그 나무가 쓰러진 까닭은 바로 딱정벌레 떼가 나무 속을 파먹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랜 세월 견뎌온 그 거목이 작은 벌레들에게 쓰러지고 만 것이다. 사람들도 근심과 걱정이라는 벌레에게는 마음 속을 갉아 먹히고 있다. 잘못되면 어쩌나 하고 계속 걱정한다고 무엇이 얼마나 달라질까? 비가 올 때 필요한 것은 걱정이 아니라 우산이다. 걱정하는 문제는 걱정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걱정한다는 것은, 어제의 문제로써 내일의 기회를 망치느라, 오늘의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이 삶의 즐거움을 빼앗아 간다. 인생의 현자들에게 `삶의 즐거움`을 빼앗아 간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그들 중 대부분은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이라고 대답했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걱정 좀 덜 하고 살 걸” 혹은 “온갖 걱정을 다하고 살았던 것이 후회돼” 만약 지나온 삶을 다시 살 수 있다면 미래를 걱정하느라 전전긍긍한 시간들을 모두 되돌리고 싶다고 말했다.
걱정은 소중한 삶을 무의미하게 낭비하도록 만든다. 두려움과 걱정을 품으면, 자신을 `쫒아 오지도 않은 것`들로부터 달아나게 된다. 누군가 미래를 두려워하면서 잠을 이루지 못한다면 그는 아직 오지도 않은 시간을 가불해서 쓰고 있는 것이다. 낙서 한 줄 없는 깨끗한 담벼락에 낙서를 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담벼락 주인이 ‘낙서금지’라고 쓰고 나면, 그때부터 담벼락은 온 동네 낙서판이 되고 만다.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한 걱정과 고민을 하면, 그 일이 정말 일어난다.
걱정의 40%는 절대 현실로 일어나지 않는다. 걱정의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다. 걱정의 22%는 사소한 고민이다. 걱정의 4%는 우리가 바꿔놓을 수 있는 일에 대한 것이다. 나머지 걱정의 4%는 우리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는 일에 대한 것이다. 고민과 걱정이 생긴다면, 그것이 진정으로 자신의 인생을 바꿀 만한 것인지 생각해보자. 자신의 인생을 뒤집어 놓을 일이 생긴다면, 그때야말로 엄청난 걱정과 고민을 해야 하고, 모든 에너지를 쏟아 넣어 최대한 바로 잡아야 한다. 하지만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미친 개에게 물린 것처럼 어쩔 수 없이 일어난다고 해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모든 노력과 열정을 쏟아부어 최선을 다했는데도 해결되지 않는다면, 받아들여야 할 팔자소관이고 운명이다. 우리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 발생하면, 그때는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 두어야 한다. 수용하는 태도를 보이면서 이렇게 생각해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Soon it shall also come to pass)”.
지나친 근심과 걱정으로 오늘의 중요한 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마라. 낙천적인 마음으로 현재를 즐기는 것이 필요하다.
◆ 윤경 변호사는…
△사법연수원 17기 △서울고법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법무법인(유한) 바른 파트너 변호사 △現 공동법률사무소 더리드(The Lead) 대표 변호사 겸 아하에셋 자산운용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