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트렌드는 클래식한 수트 룩.
60년대 풍 로맨틱 원피스들에 밀려 봄, 여름 동안 물러나있던 40년대 복고 스타일이 작년에 이어 다시 등장하면서 가을 패션을 주도할 예정이다.
지난해에 이미 선보였던 40년대 룩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디자이너들이 올해에도 여성스러운 스커트 수트와 베로니카 레이크 같은 롱 웨이브 헤어를 제안하며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는 가운데, 중성적인 매력의 고전 여배우 마를렌 디트리히에서 영감을 얻은 마케사를 비롯해 2,30년대에 주목한 디자이너들은 매니쉬한 팬츠 수트들을 내놓았다.
폴 스미스는 직선적인 팬츠 수트와 플래퍼 드레스로 20년대 풍 가르손느 룩을 발표했고, 마크 제이콥스는 기존의 로맨틱 이미지에서 한발 벗어나 슬림하고 간결한 라인의 30년대 디자인을 펼쳐 보이는 모험을 했다.
어떤 시대에 포커스를 맞추었건 공통점은 샤프한 재단의 테일러드 의상들을 통해 클래식하고 글래머러스한 매력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
핫 아이템 턱시도 재킷은 가는 허리를 강조하는 무릎길이 스커트나 매니쉬 팬츠와 매치되었고, 복고 무드를 잘 살려주는 트위드 소재와 다양한 톤의 그레이 색상도 더불어 트렌드로 복귀했다. 모자와 장갑, 넓은 벨트는 고전적인 분위기를 강조해주는 액세서리들.
캐주얼웨어에선 매니쉬 경향이 더욱 크게 반영되었다. 군복, 교복 등 유니폼의 디자인에서 출발한 밀리터리 룩과 스포티 아우터들이 이번 시즌 대거 등장했는데, 금속 단추와 견장, 휘장 등의 디테일이 더해진 피코트, 블레이저와 보머 재킷이 대표적인 아이템으로, 이 트렌드는 겨울로 접어들면 패딩 점퍼의 열기로 이어질 전망이다.
리카르도 티시는 지방시 컬렉션을 발표하며 해군 제복을 응용한 세련된 수트와 코트를 전개했고, 스텔라 맥카트니는 넉넉한 아노락 점퍼와 함께 두터운 빅 니트를 트렌디 아이템으로 제안했다.
이들 밀리터리, 스포티 아우터들은 올 가을 미니스커트나 슬림 팬츠와 주로 만났는데, 특히 발렌시아가의 디자이너 니콜라스 게스키에르가 선보인 승마바지가 시선을 모았다.
유니폼 재킷과 함께 무대에 오른 발렌시아가의 팬츠는 펑퍼짐한 실루엣의 옛 승마바지의 재현이 아닌, 힙에서 무릎사이에 살짝 여유를 더한 슬림 스타일로 머스트 해브 리스트에 오를 자격을 갖추었다.
블레이저와 팬츠로 세련된 유니폼 룩을 선보인 발렌시아가는 여기에 다채로운 무늬의 스카프를 둘러 이국적인 감각까지 믹스했는데, 이렇듯 이번 시즌에도 디자이너들은 중동과 극동, 스코틀랜드, 네덜란드 등 다양한 문화를 스타일에 녹여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디자이너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무대는 러시아.
스카프나 머플러를 모델들의 머리에 둘러 오래된 영화 속 한 장면을 연출한 베라 왕을 비롯해 마크 바이 마크 제이콥스, 템펄리도 러시안 보헤미안 룩을 전개한 컬렉션들.
짙은 톤의 새틴 의상들은 투박한 울 플레이드 소재의 아이템과 어울렸고 모피 트리밍과 두꺼운 타이츠가 걸리쉬한 페전트 룩을 완성해주었다.
봄부터 여성스러운 볼륨 의상에 매혹되었던 패션리더라면 만족할 만한 트렌드.
가을이 오면 40년대 스커트 수트나 러시아인형 마트로시카 스타일로 페미닌 룩을, 혹은 매니쉬 팬츠 수트나 유니폼 아우터로 매스큘린 룩을 연출하며 나의 이중적 매력을 발휘해보는 건 어떨까.
김서나 비바트렌드(www.vivatrend.com) 기획팀장 및 패션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