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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사는 고종의 손녀이자 의친왕 이강(1877∼1955)의 딸로, 의친왕이 별세 후 1956년 미국으로 건너간 뒤 뉴욕에 살며 컬럼비아대 도서관 사서로 일했다. 이 여사는 사서로 재직하며 의친왕의 독립운동에 관한 자료를 발굴해 부친의 삶을 재조명하는 데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의친왕은 1919년 항일 독립투사들과 접촉해 상하이 임시정부로의 탈출을 모의하다 발각돼 강제 송환된 바 있다. 이후 의친왕 부부는 수년간 일본 경찰의 감시를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여사는 이날 “사실 오늘은 아버지의 69주년 기일이라 마음이 착잡하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8월 15일은 제게 잊을 수 없는 날”이라며 “둘째 오빠 이우가 일본 히로시마 원자폭탄에 돌아가셔서 장사를 지냈더 날이었다”고 전했다.
이어 “장사를 지내고 집에 돌아오는데 종로에 전 국민이 나와 만세를 부르는데, 그때의 감격은 지금 생각해도 떨린다”고 했다.
이 여사는 “우리 집안이 결국 책임을 못 지고 나라를 잃었지만 아버지는 그게 너무 속상해 평생 어떻게든 나라를 되찾겠다고 열심히 뛰셨다. 하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1955년 8월 16일 한 많은 생을 마치셨다”며 “아버지가 밤낮없이 ‘내가 죽어야지’라고 말하시던 게 잊혀지지 않는다”고 회고했다.
한편 뉴욕한인회는 이날 이 여사에 “의친왕의 왕녀로서 일편단심 평생을 살아온 애국의 열정에 감사하며 왕가의 예와 전통을 후대에 보여줌으로 민족의 자긍심을 갖게 해줬다”라며 감사패를 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