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때는 더 그렇습니다. ‘잘 나갈 때’는 호황의 열매에 환호하느라 정신이 없지만 ‘못 나갈 때’는 책임소재 따지기 바쁘지 않습니까. 역대 대통령의 경제 공과(功過)를 따지는 게 대표적입니다. 5년 단임제이다 보니 더 그렇지요. 각 대통령의 경제 평가를 지표만으로 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딱 떠오르는 게 경제성장률일 텐데요. 박정희정부(9.1%)와 전두환정부(8.7%), 노태우정부(8.3%), 김영삼정부(7.1%) 때는 고성장 날개를 달았지요. 김대중정부(4.8%)와 노무현정부(4.3%)로 오면서는 중성장으로 내려앉습니다. 이명박정부와 박근혜정부는 2%대 저성장 추세이지요. 그렇다고 박정희정부에서 김영삼정부까지는 경제에 굉장히 능했고, 김대중·노무현정부는 그럭저럭 했고, 이명박·박근혜정부는 처참하게 실패한 것이냐고 묻는다면, 선뜻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나라는 내수보다 수출에 치우친 국가입니다. 경제현상의 원인을 국내에서만 찾으면 십중팔구 실패합니다. 세계경제의 변화에 각 정부의 성적표도 춤을 출 수 밖에 없지요. 이를테면 김대중·노무현정부 사람들이 4%대 숫자의 원인을 “직전 외환위기 수습 때문”이라고 하는 것도 설득력이 있습니다. 유례없는 저성장 국면인 지금은 더 말할 나위가 없지요.
이번주에 나눠볼 이야기는 바로 이겁니다. 거산(巨山) 김영삼 전 대통령(YS)이 영면의 길로 접어들었는데요. YS만큼 공과가 극명하게 갈리는 인물도 많지 않습니다. IMF 환란을 부른 장본인이라는 낙인 때문인데요. 이를 재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1997년 외환위기, 과연 온전히 YS의 책임일까요, 아닐까요.
◇대마불사·관치금융…개발경제의 그림자
1997년 1월, 한보의 부도는 우리 경제를 충격으로 몰아넣습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지요. 더 한 충격이 왔으니, 바로 기아사태입니다. 기아는 특이하게 전문경영인 체제였습니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 그래서 여느 대기업집단보다 지배구조가 건강한 것으로 평가 받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당시 재계 8위의 ‘거인’이었습니다. 그런 기아가 부도 위기에 몰린 건데, “정부가 살려내라”는 국민들의 ‘기아 사랑’은 특별했지요.
하지만 기아의 실상은 국민들의 기대와는 달랐습니다. 기아와 아시아자동차가 7년간 4조5000억원의 적자를 감추고 이익이 난 것으로 회계를 조작한 게 밝혀집니다. 대대적으로 분식회계(粉飾會計)에 나선 건데요. 몸집만 키우면 된다는 대마불사(大馬不死) 인식도 문제였습니다. 기아가 자금난에 몰린 단초도 계열사들에 무리한 빚보증을 섰던 탓입니다. 돌이켜보면 과거 우리 대기업집단의 경영행태가 이러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 책임을 YS에게 돌릴 수 있을까요. 무리라고 봅니다. 어느 경제 전문가는 “1997년 외환위기는 기업부채로부터 왔다”고 말합니다. 개발경제 시대를 거친 대기업집단, 더 나아가 사회 전체가 짊어져야 할 업보였다는 게 더 정확할 겁니다.
후대에 비판받는 ‘부도유예협약’도 비슷합니다. YS는 한보 부도 이후 참모들에게 “부도만 내지말라”고 신신당부를 합니다.
“부도 내지 말라는 대통령의 거듭된 지시를 어기지 않으면서 실제로는 부도 처리해 가는 길을 찾아야 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의 부도공포증은 부도가 ‘형사 사건화’되는데 있었습니다. 이런 고민을 해결하는 묘안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부도유예협약입니다.” 1997년 3월 ‘구원등판’을 한 강경식 경제부총리는 자신의 회고록 ‘국가가 해야 할 일, 국가가 하지 말아야 할 일’에서 이렇게 밝힙니다. 부도를 낼지 여부는 돈을 빌려준 채권자가 결정하는 것이지요. 부실기업을 잘 퇴출시켜야 한다는 건 소화를 잘 시켜야 건강해지는 우리 몸의 원리와 똑같습니다. 그런데 YS는 이를 거스르려 했던 것이지요. 다만 이 역시 YS에게만 화살을 날리긴 가혹합니다. ‘관치금융’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 경제는 원래 그래왔고, YS도 그렇게 하려고 했던 측면도 있었습니다.
◇경제에 어두웠던 YS의 ‘우왕좌왕 리더십’
그렇다고 해도 YS의 책임은 작지 않습니다. 그의 부도공포증에서 알 수 있지요. 당황한 YS는 개각으로 위기를 타개하려 합니다. 위기 국면에서 당시 ‘경제수장’의 임기는 아주 짧았습니다. 한승수 7개월, 강경식 8개월, 임창열 3개월. YS는 인사는 만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위기 때 보인 리더십은 ‘우왕좌왕’ 그 자체였습니다. 정치는 능했지만 경제는 어두웠다는 냉정한 평가를 피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YS가 IMF의 의미를 잘 몰랐던 것 같다는 회고도 있습니다. 강경식 전 부총리는 IMF 지원 요청을 결정하고 YS에 보고할 당시를 이렇게 떠올립니다. “IMF와 협의를 시작하겠다는 보고를 받고도 김영삼 대통령은 이렇다 할 반응이 없었습니다. 너무나 담담하게 승낙을 하는 것이 어리둥절할 정도였습니다.” YS는 오히려 당시 전경련이 ‘금융실명제를 없애야 한다’고 발표한 걸 매우 못마땅해 했다고 합니다. ‘YS가 전면에서 외환위기 타개책을 모색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IMF의 경제·사회적 여파가 너무 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평생을 유신체제와 5공 신군부에 대항했고 또 개혁했음에도, 경제만큼은 그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다는 점도 YS에겐 뼈아팠을 겁니다.
자, 독자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YS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어쩌면 지금부터입니다. 책장 한 켠에 쓸쓸히 방치돼있던 YS가 이제 우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의견을 기다립니다. 여야 정치권의 정쟁 혹은 정책을 보고 궁금한 점이 있으면 jungkim@edaily.co.kr로 보내주세요. 부족하지만 최대한 답변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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