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금융지주와 은행에 ‘배당성향을 20% 수준으로 자제하라’라고 권고하며 근거로 든 ‘스트레스테스트(자본 건전성 심사)’ 결과를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금융당국은 코로나19가 이어지고 있는 만큼 외환위기로 경제성장률이 -5.5%로 뒷걸음친 1998년보다 더 가파른 최악의 상황이 이어질 수 있다고 가정하고 시나리오를 마련했다고 한다. 어떤 극한의 상황에서도 은행은 자본건전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한국은행과 국제통화기구(IMF)는 물론 국내외 투자은행(IB)에서 올해 한국의 성장률을 3%대로 잡고 있는 만큼 -5.8%로 떨어진 이후 성장률이 반등하지 않는 것으로 가정한 설정은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기다 금융사 배당을 제한하기 위해 매우 극단적인 수치를 설정한 것 아니냐는 의혹의 목소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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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 관계자는 1일 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정규분포도 식으로 나열한 결과, 최하단 5%의 성장률이 -5.8%”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국제적으로 최하단 5% 수준이 실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수준”이라면서 “각 나라마다 세부적인 차이는 있지만 이 정도 수준에서 비교를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 IMF는 5년마다 금융부문 평가프로그램(FSAP)을 통해 안정성 평가를 하고 있는데 한국은 2018년 기준으로 테스트를 실행했다. 당시 정규분포도에서 최하단 5%의 성장률은 2019년 -3.1%, 2020년 -2.0%의 성장률을 기록하는 것을 가정해 IMF는 테스트를 실시하기도 했다.
매 분기마다 스트레스테스트 결과를 내놓는 한국은행의 시나리오는 다소 다르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12월 내놓은 시나리오(기준은 지난해 6월)를 보면 2020년 -1.1%, 2021년 0.0%, 2022년 0.1%의 성장률을 기록하는 것을 가장 부정적인 시나리오로 잡았다. 한국은행은 IMF의 선진국 GDP 성장률 하방 추정치를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올해 성장률을 -5.8%로 가정한 것이 완전히 불가능한 숫자라고는 할 수 없다”면서도 “한국은행이 평소 전망한 스트레스보다 더 극단적인, 매우 어려운 상황이 온다고 가정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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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은 올해 성장률이 -5.8%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성장률이 추락한 이후 반등을 하지 못하는 L자형 시나리오까지 가정했다. 금감원이 은행권에 적용하는 스트레스테스트에서 장기침체 가능성(L자형 시나리오)을 적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관계자는 “이전 스트레스테스트의 경우에도 다음 해 성장률을 -5% 수준으로 두는 경우는 많다”라면서도 “당시에는 핵심 리스크가 미·중 무역전쟁이나 중국발 경기 둔화 등이라 충격이 온 후에도 바닥을 찍고 회복하는 U자형 구도를 기준으로 뒀지만, 코로나19는 불확실한 측면이 많아 L자형을 도입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경기침체 이후 회복세를 보이지 않았던 적은 과거 한 번도 없었다. 실제 1980년 오일쇼크로 우리나라 성장률이 -1.7%의 역성장을 한 후 이듬해 7.2%로 반등했고, 외환위기가 닥쳤던 1998년 -5.1%의 성장률을 보인 후 이듬해 11.5%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올해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보일 것이라 전망하는 기관도 한 군데도 없다. 지난해 이미 -1.0%의 성장률로 22년 만에 역성장을 기록한데다 올해는 코로나19 백신접종에 따른 경제활동 정상화로 반등 기대감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3.0%, IMF는 3.1%로 각각 예상했다. 무디스(4.7%), 모건스탠리(4.2%), HSBC(2.2%) 등 해외 IB나 신용평가사 등은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올해 한국경제가 2.2~5.0% 사이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 보고 있다.
금감원의 U자형 시나리오(2021년 -5.8%, 2022년 4.6%, 2023년 상반기 5.9%)에서는 모든 은행들의 자기자본비율이 최소 기준을 웃돈다. 일시적으로 -5.8%로 성장률이 급락한 이후 다시 반등할 것으로 가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5.8%의 성장을 기록한 후 내년 0.0%, 2023년 상반기는 0.9% 성장하며 L자형 장기침체를 가정하면 일부 은행들만 자본건전성이 기준치를 밑도는 것으로 나온다. 은행들의 배당 자제를 권고한 결정적인 이유다. 이번 스트레스테스트가 은행들의 건전성 제고 자체보다는 ‘배당 제한 권고’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전대미문의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할 가능성도 있고 금융권이 지난해 코로나19 대책으로 대출 연체 등을 실적에 반영하지 않은 만큼 충격의 강도를 크게 뒀다”고 설명했다.
◇ 은행권 “위기상황 대비가 배당 자제만으로 가능한가”
금융권은 스트레스테스트를 근거로 금융당국이 배당제한 권고를 한 것에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올해 -5.8%의 성장률에 3년간 반등도 힘든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가정해 은행이 자본 건전성을 관리해야 한다면, 코로나 금융지원에서 이자 유예라도 제외해서 옥석을 가릴 상황을 마련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라면서 “배당만 제한하는 건 앞뒤가 맞진 않다”고 말했다.
이데일리가 4대 금융지주의 올해 배당성향을 금융당국 권고인 20%로 놓고 분석한 결과, 지난해 배당총액(3조원) 보다 7200억원 가량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코로나19 금융 지원은 전부 유지하는 가운데 이익공유제 등의 부담은 점점 늘리면서 정작 주주환원만 줄이라 하니 설득력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