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옥에는 스토리가 있다] SK 서린빌딩 최태원식 '실용주의' 심은 리모델링 2019년 리모델링 후 계열사·직급 구분 사라졌다 워킹존·펑션죤·퍼블릭존 구성…임원과 거리 없애 업무가 공간 선택…작은 변화가 일하는 방식 바꿔
[이데일리 김기덕 기자] ‘노트북과 휴대전화가 있는 곳이 내 사무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2018년 초 회장실을 포함한 최고경영자(CEO) 업무 공간 개선을 주문하면서 “이렇게 일하면 새로운 시도와 사업모델 변화는 가능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고정된 집무실과 지정된 좌석 대신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공유오피스 환경을 만들자는 취지였다. 그렇게 리모델링을 거쳐 2019년부터 SK 서린빌딩의 내부 사무공간 풍경은 확 바뀌었다.
SK서린사옥 공유 오피스 공간.(사진=SK 제공)
리모델링 이후 SK 9개 계열사 직원 2200여명은 매일 자리를 골랐다. 출근하면 사내 애플리케이션 ‘온 스페이스’에서 그날 일할 좌석을 예약하는 방식이었다. 당시 이같은 변화를 실무에서 이끈 정형진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인프라TF 팀장은 “나의 고정좌석은 없어졌지만, 반대로 회사의 모든 자리가 내가 예약할 수 있는 자리가 됐다”고 설명했다. 매일 같은 부서 사람과 일하는 방식이 아닌 다른 계열사 직원과도 협업과 소통이 가능도록 공간을 설계한 것이다.
본인이 일하는 공간을 직접 선택하는 공유 좌석은 직원들의 업무 자율성을 높였다. SK이노베이션의 한 직원은 “조용한 사무실보다는 카페와 같이 적당한 소음이 있는 공간이 오히려 업무 효율성을 높여주는 측면이 있다”며 “어느 공간에서 일하든 본인의 성과로 평가 받기 때문에 책임감이 없다면 공유오피스 체제는 지속가능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공간 자체도 효율적으로 배치했다. 집중해서 일하는 업무 공간인 워킹존과 유사 업무를 수행하는 임직원끼리 같은 구역에서 근무하도록 배치된 펑션 존, 휴식·교류를 위한 퍼블릭존 등으로 나눴다. 서린빌딩 20~22층에는 카페와 회의실, 도서관, 피트니스센터, 안마휴게실, 파티룸 등 공용 공간이 있다. 이곳에서 동료 생일을 챙기기 위해 생일파티를 하던 중 최 회장이 불쑥 찾아와 직원들에 “생일 축하한다”고 인사를 건넨 일화도 달라진 서린빌딩의 풍경으로 꼽힌다. 책상을 없애고 임직원들의 공간과 거리를 완전히 바꾸게 된 것이다.
공간의 변화는 조직 운영 역시 영향을 줬다. 부서 개편 때마다 책상과 파티션을 다시 배치할 필요도 줄었다. 조직이 바뀌면 공간을 다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필요에 따라 공간을 선택하면 됐기 때문이다. ‘부서가 공간을 차지하는 방식’에서 ‘업무가 공간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바뀐 셈이다.
SK 서린빌딩 공용 라운지 공간.(사진=SK 제공)
SK서린빌딩 20층 공용 라운지.(사진=SK 제공)
변화가 모두 편리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정형진 팀장은 당시 팀원끼리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줄어든 점은 인정했다. 그 대신 온라인 소통과 업무 지시를 보다 명확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물리적으로 가까이 앉아 수시로 주고받던 대화가 줄어든 만큼, 메신저 등을 통한 소통에서는 업무 목적과 지시 내용을 더 분명하게 전달해야 했다는 의미다.
결국 서린빌딩의 리모델링은 책상과 칸막이를 바꾼 공사가 아니었다. 고정 좌석을 없애면서 직급과 부서 중심으로 짜여 있던 공간의 질서를 흔들고, 업무에 따라 장소를 선택하는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소통 방식과 조직 운영의 변화가 뒤따랐다.
최 회장은 2019년 1월 리모델링 중인 서린사옥에서 구성원 300여명과 ‘행복토크’를 열었다. 최 회장은 “긍정적인 변화를 효과적으로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소통이 필요하고 조그마한 해결 방안부터라도 꾸준히 찾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 회장이 강조한 ‘조그마한 해결 방안’은 서린빌딩에서 책상 하나, 칸막이 하나를 없애는 것으로 시작됐다.
힐링 앤 씽킹(Healing & Thinking)을 컨셉트로 디자인한 SK 서린빌딩 20층 공용 공간. 도서관과 같은 서재 공간, 전통 한옥을 모티브로 한 미팅룸, 물소리를 들으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라운지 등을 마련했다.(사진=SK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