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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돈나 노래에 춤추던 소녀, "죽고 싶어요"라고 편지 쓴 이유는

장병호 기자I 2024.03.01 13:00:00

[리뷰]5년 만에 돌아온 연극 ''비Bea''
안락사 다룬 영국 극작가 믹 고든 작품
새로운 창작진 참여, 현실적인 시선 반영
무거운 질문, 여러 번 곱씹게 되는 작품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나는 죽고 싶어요.”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 U+ 스테이지에서 개막한 연극 ‘비Bea’의 한 장면. 팝 가수 마돈나가 삶의 희열을 노래한 ‘레이 오브 라이트’(Ray of Light)에 맞춰 흥겹게 춤을 추던 주인공 ‘비’(김주연·이지혜 분)는 자신을 찾아온 남자 레이(강기둥·김세환 분)에게 편지를 대신 좀 써달라며 이렇게 말한다. 순간 당황하는 레이. 사전 정보 없이 공연을 보러 왔다면 관객 또한 당황할 수밖에 없다.

연극 ‘비Bea’의 한 장면. (사진=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
‘비Bea’는 한없이 밝게 시작한다. 동시에 관객에 한없이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권리, 바로 ‘안락사’다. 원작은 사회적 이슈를 무대에 올려온 영국 극작가 겸 연출가 믹 고든의 희곡이다. 2010년 런던 소호 극장에서 초연했다. 국내에는 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 제작으로 2016년 처음 소개됐다. 이번이 세 번째 시즌 공연으로 5년 만에 무대에 돌아왔다.

작품은 비와 비의 엄마 캐서린(강명주·방은진 분), 그리고 비의 간병인 레이의 이야기를 그린다. 극 초반 비는 천진난만한 소녀처럼 보인다. 레이와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는가 하면, 자신이 한동안 섹스를 하지 않았다며 레이를 난처하게 만든다. 극이 조금 더 전개되면 관객은 무대 위 비의 모습이 실제와 다르다는 것을 미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비는 정확한 병명을 알 수 없지만 만성적인 체력 저하로 8년째 침대에 누워 꼼짝도 못하고 있다. 마돈나 노래에 맞춰 춤을 추던 비는 비의 내적인 자아의 표현이다.

“때로는 죽음보다 더 괴로운 것이 있어요.” 비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고자 하는 이유다. 처음엔 당황했던 레이도 비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비의 마음을 이해한다. 레이 또한 소년원에 갇혀 지내며 죽음보다 더 괴로웠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비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하던 캐서린은 직접 비가 돼보기로 한다. 침대에 누워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레이가 떠먹여 주는 음식을 먹어본 뒤에야 캐서린도 비의 결정을 존중한다.

연극 ‘비Bea’의 한 장면. (사진=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
5년 만에 다시 돌아온 이번 공연은 새로운 창작진이 참여해 작품을 보다 현실적인 시선으로 풀어냈다. 연극 ‘왕서개 이야기’, ‘붉은 낙엽’의 연출가 이준우가 연출을 맡았고, 연극 ‘죽음들’, ‘사막 속의 흰개미’ 등에 참여한 작가 황정은이 윤색을 맡았다. 금이 가 있는 잿빛 벽은 꼼짝도 할 수 없는 비의 삭막한 마음을 보여준다. 무채색의 무대, 그 안에서 형형색색의 의상을 입고 춤추는 비의 상반된 모습은 작품이 지닌 복잡한 질문을 잘 보여준다.

‘비Bea’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도 채울 수 없는 삶을 연명치료로 유지하는 것이 정말 인간적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작품이 처음 발표됐을 때는 충격적인 문제 제기였지만, 이제는 더 이상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각 국가가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죽음을 선택할 권리’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오간다. 최근엔 네덜란드 전 총리 부부가 안락사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연말 한 불치병 환자가 안락사를 허용해달라는 헌법소원을 내기도 했다.

작품은 비의 생일에 막을 내린다. 죽음이 한 사람에게는 새로운 탄생일 수 있다는 메시지가 마음을 아프게 만든다. 마침내 고통에서 해방된 비는 잿빛 방 속 침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뛰논다. 그 순간 등장하는 단 한 번의 무대 변화가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14년이 지난 작품이지만 ‘비Bea’의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가볍게 보기 힘들지만, 한 번 보고 나면 여러 번 곱씹어 보게 되는 작품이다. 공연은 오는 24일까지 이어진다.

연극 ‘비Bea’의 한 장면. (사진=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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