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메이커서 불쏘시개로…이 남자 왜이럴까[파워人스토리]

정다슬 기자I 2025.01.12 11:30:00

머스크 獨총선 6주 앞두고 AfD 후보와 대담
반이민 등 주제로 유럽 정치지도자 공격…극우 힘실어
머스크 사업, 각국 규제·예산과 관련 깊어

9일(현지시간) 열린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와 독일 극우 정당 ‘독일인을 위한 대안(AfD)’의 총리 후보 알리스 바이델의 온라인 대담을 홍보하는 게시물. (출처=엑스)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바이델은 매우 현명하다. 이상한 말을 하지 않고 상식적이다. ‘독일인을 위한 대안’(AfD)만이 독일을 구할 수 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9일 자신이 소유하는 엑스(X, 옛 트위터)에서 독일 극우 정당 AfD의 총리 후보 알리스 바이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대담은 1시간 이상 진행돼 2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방송을 지켜봤다. 독일 총선을 불과 6주 남기고 이뤄진 이번 대담에 대해 워싱턴포스트(WP)는 “외국 선거간섭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독일·영국·스페인 등 유럽 정치권 들쑤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의 일등공신인 머스크 CEO가 이제 유럽정치의 킹메이커에도 욕심을 내는 모양새다. 그의 정치적 영향력은 세계 최고의 부자라는 그의 어마어마한 자산과 세계 최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엑스의 소유주, 미국 정치의 실세라는 중첩된 지위에서 나온다. 그는 차기 정부의 실제조직인 ‘정부효율부’(DOGE)의 공동위원장이지만 공식부서가 아닌 자문위원회 성격으로 공직자들에게 적용되는 윤리규칙을 적용받지 않는다. 이 모호한 지위를 바탕으로 그는 ‘표현의 자유’라는 가치를 내세우며 금기와 선을 자유롭게 넘어가는 발언을 통해 유럽 정치지형을 흔들어놓고 있다.

독일뿐만 아니다. 머스크 CEO는 취임 7개월 차인 키어 스타머 총리가 이끄는 노동당 정부도 연신 흔들어대고 있다. 그는 지난 2일부터 며칠간 엑스에 2000년대 중반~2010년대 초반 영국에서 장기간 벌어진 미성년자 성 착취 사건을 거론하며 당시 검찰 책임자였던 스타머 총리가 이를 방관하고 은폐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노동당 지지율이 급락했다는 여론조사에 관한 엑스 게시물을 공유하면서 “영국에는 새로 선거가 치러져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머스크 CEO가 단순히 공격적인 게시물을 엑스에 게재하는 것을 넘어서 측근들과 선거 전 스타머 총리를 끌어내는 방안을 비밀리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머스크는 다음 선거 전 영국 총리를 교체하기 위해 영국의 대안 정치 운동, 특히 우익 포퓰리즘 정당인 영국개혁당에 대한 지지를 구축할 수 있을지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해왔다. 그는 현 영국개혁당 대표 나이절 패라지를 대체할 후계자에 대해서도 논의했다고 한다.

머스크 CEO는 지난 5일에는 “스페인 성범죄 수감자의 대부분은 외국인”이라고 주장했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분열과 거짓정보, 증오의 정치가 새로운 권위주의 시대를 열 위험이 있다”고 비판했다.

◇머스크 재산, 美대선 후 294조원 늘어

WP는 머스크가 “미국 정치를 혼란에 빠뜨렸던 것과 매우 유사한 선동 전략으로 주요 동맹국의 정치를 흔들려고 한다”며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퍼뜨리면서 극우 정치인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고 했다.

오는 20일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 일가 가족사진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와 그의 아들 엑스 에 트웰브가 함께 찍혀있다. (사진=카이 트럼프 엑스 계정)
머스크 CEO는 이미 지난해 미국 대선과 상·하원, 지방 선거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 후보들에게 최소 2억 7700만달러(4082억원)를 후원하며 정치적 도박에 성공했다. 트럼프 자택인 플로리다 팜비치 마라라고를 제집처럼 드나들며 트럼프 2기 정부의 비공식 실세로 자리매김했다. 그 결과 테슬라 주가는 선거일 당시보다 약 70% 올랐고 그의 자산은 2024년 2000억달러(294조원) 늘었다. 블룸버그 억만장자 지수에 따르면 머스크CEO의 자산은 10일 기준 4260억달러(627조원)다.

전기자동차 기업 테슬라와 로켓 및 위성 통신 기업 스페이스X, 뇌 인터페이스 회사인 뉴럴링크, 터널 건설 스타트업인 보링, 인공지능(AI) 개발업체 xAI를 설립하고 그리고 트위터를 인수한 그의 사업은 국경을 뛰어넘어 전개되고 있으며 정부의 규제와 예산이 주요하게 작용한다.

일례로 블룸버그 통신은 지난 6일 이탈리아 정부가 자국의 전화 및 인터넷 인프라에 스페이스X 암호화 서비스를 적용하는 거래를 놓고 협상 중이라고 익명의 관계자 발언을 근거로 보도했다. 계약규모는 15억유로(2조 2712억원)다. 이 보도는 특히 머스크 CEO와 친밀한 것으로 알려진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마라라고를 방문한 뒤 이뤄져 이날 회동에서 관련 계약이 논의됐다는 추측을 불러일으켰다. 이탈리아 총리는 이를 부인했다.

WP는 유럽연합(EU)의 디지털서비스법(DSA)이 머스크 CEO를 격분하게 했다고 보도했다. 이 법은 빅테크가 허위 콘텐츠를 차단하고 제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이를 어길 시 전 세계 연간 총매출의 최대 6%에 해당하는 벌금을 부과한다. 블룸버그가 지난해 10월 보도한 기사에 따르면 EU 규제기관은 엑스가 이를 위반했다고 보고 있으며 벌금 규모를 논의 중이다.

영국에서도 오는 3월 소셜미디어 기업이 아동에 대한 성적 착취, 극단적 성폭력, 테러 등과 관련된 유해 콘텐츠를 막도록 온라인 안전법이 발효된다. 이를 위반하는 회사는 전 세계 수익의 최대 10%에 달하는 벌금을 낼 수 있다. 머스크 CEO는 지난 2일 엑스에서 관련 게시글을 인용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딱 맞춰 권력을 잡을 것이다. 다행이다”라고 밝혔다.

◇일론의 엑스도 계정 임의 차단

문제는 머스크 CEO의 발언이 일부는 사실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의 주장에 적잖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WSJ의 편집위원인 조셉 C. 스턴버그는 머스크 CEO가 제기한 영국의 미성년자 성 착취 사건이 오랜 기간 방치될 수 있었던 이유로 “사회복지사, 경찰, 지방 및 중앙정치인이 피해자들의 고소를 보고하거나 조사하지 않았고 기소를 지연시켰으며 공식조사 결과를 축소하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인종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는 정치적 올바름(PC)이 영국을 지배했기 때문(이 사건의 가해자는 주로 파키스탄 이민자였다)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미국 주류 언론에서조차 머스크 CEO의 주장에 대해 동의를 한 셈이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과 논리가 타당하다 하더라도 머스크 CEO가 말한 대로 스타머 총리가 그 사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가는 별개의 이야기다.

FT는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왕립검찰청(CPS) 청장을 지낸 스타머 총리가 이 사건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머스크 CEO의 발언에 “스타머는 해당 사건이 조명받은 직후인 CPS 청장 임기 마지막 해에 이 조직(범인들)에 대한 기소를 시작했다”며 “더 많은 가해자가 법의 심판을 받을 수 있도록 성 착취 사건 수사 방식을 개편하는 일에 착수했다”고 전했다. 머스크 CEO가 사실관계를 일부 뒤틀거나 무시하고 스타머 총리를 공격하고 있다는 것이다.

2024년 8월 4일 난민 수용시설로 알려진 영국 로더험의 한 호텔 앞에 모인 반이민 시위대와 경찰이 대치하는 모습(사진=로이터)
머스트 CEO는 지난해 8월 영국 중서부 도시 사우스포트에서 어린이 세 명의 목숨을 앗아간 칼부림 사건 범인이 무슬림 이민자라는 거짓 정보로 반(反)이민 폭력시위가 발발했을 당시에도 ‘무슬림 커뮤니티 공격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스타머 총리의 글을 리트윗하고 “(이슬람 공동체만 보호하지 말고) 영국 모든 공동체에 대한 공격을 걱정해야 하지 않느냐”는 글을 올렸다. 범인은 이슬람 교도가 아닌 아프리카 르완다 출신이며 이민자가 아닌 영국 태생이었다.

뉴욕타임스(NYT)는 머스크 CEO가 내세우는 표현의 자유가 과연 공정한지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했다. 2022년 머스크 CEO는 디지털 공론장인 트위터에서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고 있다며 트위터를 인수하고 이를 엑스로 바꾸며 트럼프 당선인을 비롯한 수많은 계정을 해제했다. 극우 활동가인 로라 루머 역시 이 과정에서 계정을 되찾은 인물이었으나 지난달 머스크 CEO는 미국 전문직 비자(H-1B) 발급 정책을 놓고 극우보수층과 다툼을 벌이는 과정에서 루머의 계정을 12시간 일시정지하고 유료인증 배지(체크마크)도 일시적으로 회수했다. 이외 H-1B나 머스크 CEO를 비난해 온 다수 인사들도 인증배지를 잃었다. 엑스는 머스크 CEO가 몰래 관리하고 있다고 의심되는 @AdrianDittmann 계정에 대해 보도한 영국 기사 링크를 차단하기도 했다.

해당 기사를 작성한 더 스펙테이터의 미국 편집장인 맷 맥도날드는 “엑스는 열렬한 지지자들이 믿고 있는 자유 언론의 천국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