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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반달가슴곰은 왜 미국에 가야했나[헬프! 애니멀]

김화빈 기자I 2022.10.10 11:00:00

국내에 사육곰 수용할 공간 태부족
300여마리 곰 중 절반만 수용 가능한 정부 생추어리
남은 개체 구제방안은 없어…관련 법도 계류 상태
해외 생추어리, 정부가 토지 등 제공하면 NGO 단체가 운영

생추어리는 동물원·축산공장·실험실과 달리 동물이 평생 가능한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보호공간이다. 해외에는 약 150곳 정도의 생추어리가 있다. 국내에선 시민후원으로 운영되는 생추어리가 이제 막 생기는 추세다. 이데일리는 ‘헬프! 애니멀’을 통해 국내 생추어리 의의와 운영 과정을 상하편으로 나눠 조명한다. <편집자주>

[이데일리 김화빈 기자] 생추어리는 멸종·밀렵 위기에 놓인 ‘야생동물’을 구조하는 곳과 소, 양, 돼지 등 ‘축산동물’을 보호하는 곳으로 나뉜다. 야생동물 생추어리는 강원도 동해 농장에서 사육되던 22마리의 반달가슴곰(국제적 멸종위기종)이 이송된 미국의 ‘TWAS’(The Wild Animal Sanctuary)가 대표적이다.

TWAS 계류장에서 생추어리로 한 발을 뗀 사육곰이었던 반달가슴곰 (사진=동물자유연대)
TWAS는 1980년대부터 불법 사육농가, 서커스단, 동물원 등에서 야생동물들을 구조해왔다. 각국에서 구조된 곰, 사자, 표범, 퓨마, 늑대 등은 광활한 미국의 대자연을 누리며 제 모습대로 살아간다. TWAS는 콜로라도주 덴버시 외에도 콜로라도주 스프링필드시와 텍사스주 보이드시에 생추어리를 운영 중이다. 세 곳의 생추어리의 부지 면적만 4253ha(약 1200만 평)에 달한다.

◇사육곰 품어준 美 생추어리…한국과 무엇이 달랐나

국내서 웅담 등 곰의 신체 부위를 먹기 위해 사육됐던 반달가슴곰은 현재 300여마리가 남아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는 곰 사육 전면종식을 선언하며 전남 구례군·충남 서천군에 곰 생추어리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2025년까지 사육곰 보호·관리 기반을 조성하고 2026년부터 몰수한 곰을 생추어리로 이송해 보호할 계획이다. 생추어리 설립에 필요한 예산도 국회를 통과한 상태다.

생태적 습성이 존중 받는 생추어리에서 편히 앉아 쉬는 곰 (사진= 녹색연합)
그러나 전남 구례 생추어리는 49마리, 충남 서천 생추어리는 최대 70~80마리만 수용할 수 있다. 남은 개체에 대한 구제방안은 현재로선 없다. 동해 사육곰들을 구조한 동물자유연대가 TWAS 이주를 선택한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사육곰들은 당장 뜬장을 탈출할 수 없었다. 동물단체에서 보호하는 많은 곰들이 여전히 뜬장이나 임시 방사장을 오가며 살고 있다.

TWAS를 방문했던 채일택 동물자유연대 정책팀장은 국내외 생추어리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점으로 압도적 규모와 막강한 시민후원금,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꼽았다. 채 팀장은 TWAS가 후원금은 물론 토지기부도 받는다고 덧붙였다.

베트남에는 호주 야생동물보호단체 프리더베어스(Free the Bears)가 운영하는 ‘깟 띠엔 국립공원 생추어리’와 국제 동물보호단체 애니멀스아시아(Animals Asia Foundation)가 운영하는 ‘탐 다오 국립공원 생추어리’가 있다. 탐다오 생추어리는 2007년 3마리의 사육곰 구조를 시작으로 현재 180여마리를 보호하고 있다.

애니멀스아시아가 베트남에서 운영 중인 탐다오 생추어리의 환경 (사진=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두 곳 모두 베트남 정부가 국립공원 부지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소유권을 가진다. 운영에 필요한 모든 비용은 단체가 지불한다. 계약기간은 5~20년 단위로 계약종료 시 새로 갱신해야 한다. 정부가 물질적 토대를 전폭적으로 지원하면, 동물보호단체가 막대한 후원금으로 생추어리를 운영한다. 사육곰 불법 농장 적발과 감시도 정부의 몫이다. 베트남 당국이 불법 농장을 적발하면, 해당 단체들이 구조된 곰을 계류장에서 훈련·적응시키고 생추어리에서 보호한다.

이밖에 프리더베어스가 라오스에서 운영하는 ‘꽝시 곰 보호소’, 애니멀스아시아가 1998년 설립한 ‘중국 청두 곰 보호소’, 캄보디아 정부가 1995년 설립한 ‘타마오 야생동물구조센터’ 등이 있다. 타마오 생추어리는 캄보디아 정부가 부지, 전기, 수도 등을 제공하면 국제 동물보호단체가 운영을 맡는다.

◇이제 막 발 뗀 한국 곰 생추어리…관련 법안은 계류 중

국내 사육곰 생추어리 조성을 촉구하는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는 베트남 생추어리 탐방 후 발간한 보고서에서 “한국과 베트남 사육곰이 처한 가장 다른 조건은 법적 지위”라며 “모든 문제 해결을 정부에만 요구할 수 없으나 최소한의 안전망을 제시하고 제도화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라고 지적했다.

생추어리 전속 수의사로부터 피부병을 치료 받는 곰 (사진=녹색연합)
정부가 추진 중인 곰 생추어리는 동물보호법에 명시된 ‘보호소’나 축산법 등에 정의된 ‘축산농가’가 아니다. 동물 전시와 종보존이 목적인 ‘동물원’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생추어리로 분류되지도 않는다. 현행법에서 생추어리의 법적 개념과 지위 등이 정의되지 않아서다.

환경부는 생추어리 설립 기준과 운영·위탁주체, 국가 지원 등에 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곰 사육 금지 및 보호에 관한 특별법’을 임종성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법했다. 이 법은 지난 5월 2일 발의됐으나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지금 국내에서 생추어리에 대한 (법적) 기준이 딱히 있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곰 본래의 생태적 특성이 구현될 수 있는 자연과 비슷한 공간을 조성할 계획이다. 동물원처럼 전시가 주목적은 아니지만, 동물권 교육 차원에서 국민을 대상으로 제한적인 관람이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생추어리는 어떤 보존이나 연구를 해서는 안 되는 공간이다. 생추어리는 사람이 아닌 동물을 위한 곳으로 동물이 이윤 창출의 수단이 되어선 안 된다”며 “교육 목적은 생추어리의 부가적 기능이어야 한다. 일부 해외 생추어리는 관람조차 허용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강조했다.

◇진화하는 생추어리, 가축도 품는다

한국에서 소는 가축이다. 사람이 사육하고 ‘이용’하는 동물이란 뜻이다. 만일 소가 가축으로 살지 않게 된다면 어떨까? 강원도 인제군 남면 신월분교 일대에 국내 최초 ‘소 생추어리’가 조성될 예정이다.

구조된 6마리 소들이 임시보호소에서 강원도 인제 꽃풀소 생추어리 입주를 곧 앞두고 있다 (사진=동물해방물결)
지난 9월 17일 기준 동물해방물결은 인제군청을 통해 소 생추어리 시공에 관한 행정절차를 끝마쳤다. 9월 말 기준 콘크리트 마감 등 바닥 기초공사가 진행 중이며 축사 뼈대와 지붕 공사도 곧 시작될 예정이다. 소 소유권 인도비용, 건설비용, 구조 비용, 돌봄 비용은 모두 시민들의 후원금으로 충당됐다.

꽃풀소 생추어리에 입주할 어떤 소도 사람을 위해 ‘이용’되지 않지만, 가축분뇨법, 축산법의 심사를 받았다. 현행법상 가축인 소가 생추어리에 입주할 권리를 인정받지 못해서다.

이지연 동물해방물결 대표는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마을주민과 인제군청과 좋은 관계를 맺어가면서 무사히 생추어리가 설립되어 가는 중”이라며 “소들이 생추어리에서 안정적으로 적응해 살게 되면 다른 동물들도 구조할 계획이다. 꽃풀소 생추어리를 계기로 마을에 활력이 살아나고 관계 인구도 유입되어 지역공동체 살림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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