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2시 `고인에 대한 묵념`과 함께 시작된 영결식은 숙연함이 묻어났다. 영결식 사회는 조순용 전 청와대 정무수석과 손숙 전 환경부 장관이 맡았다.
박영숙 미래포럼이사장이 떨어는 목소리로 "민주주의의 상징인 당신이 벌써부터 그립다"며 추도사를 낭독하자 조문객들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고, 여기저기서 한 숨 소리가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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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전 대통령의 전남 목포 상고 후배라고 밝힌 한 시민은 "머리가 텅 빈 것 같다"며 "그렇게 염원하시던 통일을 못 보고 가신 것이 가장 가슴 아프다"면서 흐느꼈다.
김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을 보기 위해 먼 길을 찾아온 사람들도 있었다. 전남 곡성에서 5시간을 달려왔다는 한 시민은 "이 빈자리를 누가 채워줄 수 있겠냐"면서 "민주주의에 대해 한 평생을 희생하고 국민을 생각한 이런 대통령을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이라면서 울먹였다.
박 이사장의 추도문 낭독이 끝나자 김 대통령이 천주교 신자였던 것을 고려해 천주교를 시작으로 기독교, 불교, 원불교 순으로 종교의식이 이어졌다.
종교의식 후 김 전 대통령의 생전 영상이 상영됐다. 전광판을 통해 김 전 대통령의 생전 모습이 나오자 몇 몇 조문객들은 그 마지막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앞쪽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
97년 국민 금 모으기 운동, 6·15남북정상회담, 2002년 월드컵 당시 김 전 대통령의 모습 등이 나오자 조문객들은 한층 더 숙연해졌다.
이희호 여사가 고인의 영정에 헌화하자 조문석 곳곳에서 눈물이 터져나왔다. 이 여사는 수척한 모습으로 헌화를 한 뒤 차남 김홍업 전 의원 등 유족들의 부축을 받고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전남 광주에서 올라왔다는 한 시민은 "정신적 지주였던 분을 잃었다"면서 "고문 가해자들까지 모두를 용서한 고인의 그 마음을 기려야 한다"면서 울먹였다.
이명박 대통령 내외가 헌화하려는 순간, 30대 중반의 한 남성은 "위선자"라 외치며 물병을 던지려 했다. 이에 이 남성은 경호관에 이끌려 영결식장 밖으로 끌려나갔다.
3군(軍)의 조총 발사를 끝으로 영결식은 70분 여 만에 막을 내렸다. 운구차가 장내를 한 바퀴 돌며 국회의사당을 빠져나갈 때 까지 많은 조문객들이 그 자리에 서서 운구차의 행렬을 멍하게 바라봤다.
영결식이 진행되는 동안 국회 앞 뜰에 마련된 `김대중 대통령께 마지막 드리는 편지`를 적어 만든 게시판이 철거됐다. 50m전지 3장에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포스티잇에다 김 대통령께 드리는 글을 적어 만든 게시판은 김대중 도서관으로 이동될 예정이다.
철거되는 게시물을 보면서 백발의 한 시민은 "87년 서울 길동에서 고인에게 밥 한 끼를 대접했다는 이유로 20일 옥고를 치르고 나왔다"면서 "살아있음 자체가 국민에게 큰 힘이 됐는데, 국가의 정신적 지표를 잃어버린 느낌"이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