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군은 하마스 군사조직 알카삼 여단의 사령관 무함마드 데이프와 함께 신와르가 이스라엘에 대한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기획했다고 보고 있다. 요아브 갈란드 이스라엘 국방장관도 “우리는 야이르 신와르에게 가서 그를 제거할 것”이라며 “가자지구 주민들이 우리보다 먼저 신와르를 제거하면 전쟁이 단축될 것이다”고 말했다. 이번 전쟁의 최우선 목표 중 하나가 신와르의 목숨이라는 뜻이다. 이스라엘군은 신와르가 가자지구 땅굴 깊숙이 숨은 것으로 보고 지금도 땅굴 파괴를 위해 맹공을 퍼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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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자는 팔레스타인인도 가차 없이 처단
신와르와 이스라엘 사이 악연은 수십년에 이른다. 신와르는 1962년 가자지구 칸 유니스 난민캠프에서 태어났다. 칸 유니스 캠프는 제1차 중동전쟁(이스라엘 독립전쟁)으로 터전을 잃은 팔레스타인인들을 위해 세워진 난민촌으로 1956년 이스라엘군에 의한 학살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신와르의 가족 역시 지금의 이스라엘 남부 아슈켈론(팔레스타인 명칭은 알 마즈달 아스칼란)에 살다가 난민촌으로 쫓겨난 것으로 알려졌다.칸 유니스 캠프에서 신와르의 이웃에 살던 인물이 훗날 그의 ‘영혼의 파트너’가 된 데이프다.
가자 이슬람대학에서 아랍어학을 공부한 신와르는 학생운동을 하며 훗날 하마스를 설립한 아마드 야신 등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가들과 가까워졌다. 1987년 제1차 인티파다(이스라엘 반대 민중봉기)를 계기로 하마스가 설립되자 신와르는 무장조직를 담당한다. 알카삼 여단와 하마스 내부 보안조직인 마즈드가 신와르 손을 거쳐 조직됐다.
신와르는 마즈드를 이끌며 ‘배신자’를 색출에 열을 올렸다. 이스라엘 스파이는 물론 경쟁조직을 돕는 팔레스타인인까지 그에겐 배신자로 여겨졌다. 이스라엘 일간지 하레츠가 공개한 신문조서에 따르면 신와르는 이스라엘 수사관에게 무기가 있어도 자신은 폭행하거나 목을 조르는 등 직접 배신자를 처단하는 방식을 선호했다고 증언했다. 경쟁 세력의 정보원을 색출했을 땐 동생을 불러 숟가락을 쥐어주고 형을 생매장하게 했다. 이 같은 잔혹함으로 인해 신와르는 가자지구 내부에서도 고향 이름을 따 ‘칸 유니스의 도살자’라는 악명을 얻었다. 신와르가 1988년 이스라엘 법정에서 종신형을 선고받게 된 죄목도 이스라엘인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이 12명을 살해한 죄였다.
신와르를 만난 적이 있는 한 외국인은 하마스 관리들이 신와르와 함께 있을 때와 그러지 않을 때 다르게 행동한다며 “그건 두려움이다. 그들은 신와르를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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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와르 살려줘서 이스라엘 어린이·노인 희생”
그 후 22년 동안 복역한 신와르는 하마스 수감자의 우두머리 노릇을 하며 감옥에서도 영향력을 키웠다. 이스라엘 정보기관은 이 시기 신와르에 대해 잔인하고 교활하면서도 군중을 이끄는 능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교도소에 있는 동안 신와르는 히브리어(이스라엘 공용어)를 공부하며 이스라엘 책과 방송을 파고 들었다. 특히 메나헴 베긴·이츠하크 라빈 전 총리 등 유대인·이스라엘 지도자에 관한 책을 탐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 대내 정보기관 신베트에서 신와르를 신문했던 미차 코비는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이스라엘에 대한 모든 것을 배웠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에 말했다. 이 같은 경험은 신와르가 이스라엘을 상대로 심리전을 펴는 밑거름이 됐다.
수감 중이던 2004년 신와르는 뇌농양 제거 수술을 받았다. 당시 교도소 정보국장을 지냈던 유발 비톤은 지난달 이스라엘 채널12 방송에 나와 “농양이 터졌다면 신와르는 세상과 작별했을 것”이라며 “이스라엘 의사들이 그의 생명을 구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눈물을 흘리며 “신와르의 목숨을 구해줘서 어린이와 노인 수백명을 생명을 잃었다”고 말했다. 비톤의 조카도 이번 전쟁에서 하마스에 납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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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이익 안 된다” 집권 초엔 평화공세
신와르의 운명이 또 한번 바뀐 건 2011년이다. 당시 이스라엘 정부는 5년 전 가자지구 인근에서 근무하다가 하마스에 납치된 길라드 샬리트 상병을 구출하기 위해 하마스에 포로 교환을 제안한다. 제안을 내놓은 당사자가 베냐민 네타냐후 현 총리다. 하마스는 샬리트 상병 한 명을 풀어줬고 대신 이스라엘은 하마스 수감자 1027명을 석방했다. 석방 대상자 중엔 신와르도 포함됐다.
이후 신와르는 하마스에서 더욱 입지를 키웠다. 특히 군사조직에서 인기가 높았다. 대중도 카타르에서 호화 생활을 하던 기존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보다 금욕주의적인 신와르를 더 좋아했다.
2017년 신와르는 가자지구 하마스의 최고지도자로 선출된다. 하니예는 사실상 명예직인 최고지도자로 밀려났다. 하마스 내에서도 초강경파로 꼽히는 신와르의 선출은 조직 내 강경파의 승리라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신와르는 집권 직후 ‘평화 공세’를 폈다. 그는 2018년 이스라엘 일간지 예디오스아로노스와 한 인터뷰에서 “전쟁은 누구에게도 이익이 안 된다는 게 진실이다”며 “누가 새총으로 핵에 맞서고 싶겠느냐”고 말했다. 이 같은 기만술은 어느 정도 먹혀 전쟁 전까지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이젠 군사적 성과보단 경제적 성과를 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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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와르, 자신이 사명 갖고 있다고 생각”
그렇다면 왜 이 시점에서 신와르는 이스라엘의 뒤통수를 때린 것일까. 하마스 지도부 중 한 명인 칼릴 알 하야는 “단순한 충돌이 아니라 전체 판도를 바꿔야 했다”고 NYT는 말했다. 팔레스타인에 고압적 정책을 유지하는 이스라엘이 사우디아라비아 등 아랍 국가와 수교를 추진하면서 자칫 팔레스타인이 고립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NYT는 신와르와 데이프가 하마스가 단순한 가자지구의 통치조직 역할로 변하는 상황에서 과감한 공격을 통해 이스라엘 파멸을 위한 무장정파으로서의 정체성을 되살리려 했다고 해석했다.
하마스 관계자는 신와르가 자신을 하마스의 지도자를 넘어 예루살렘과 알 아크사 모스크(무함마드가 승천한 이슬람 성지)의 수호자로 생각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에 말했다. 신와르를 오랫동안 접한 익명의 인물도 “신와르는 엄청난 자존감을 갖고 있으며 자신이 이 세상에서 일종의 사명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는 자기 목표를 위해 수만명을 희생하는 걸 개의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마스 내부의 역학 구도가 신와르를 압박했다는 해석도 있다. 2021년 신와르는 재선 투표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표를 얻었는데 이 때문에 ‘평화공세’를 버리고 전면적인 강공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이스라엘 공언대로 신와르가 죽으면 팔레스타인엔 평화가 찾아올 수 있을까. FT는 이스라엘은 굴욕을 당했고 역내 정세는 불안해졌다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신와르의 승리라고 말했다. 영국 합동군사연구소의 H.A. 헬러는 “신와르와 데이프는 분명 하마스의 최고 지도자이며 이들이 사라지면 하마스에 타격을 주겠지만 하마스도 이들이 사라질 때에 대비했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