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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웅(75) 굿파트너즈 이사장은 “갓 스무살 청년의 꿈이라곤 도저히 믿기질 않았지…. 이 친구를 꼭 우리 사회 일원으로 키워내야겠구나란 책임감이 그 때 생겼어”라며 박영철(35)씨와의 첫 만남을 이렇게 돌이켰다.
유 이사장 부부에겐 박씨를 포함해 가슴으로 기른 북한이탈주민 출신 네 아들이 있다. 지난 15년 간 이들을 번듯한 성인으로 키워냈지만 유 이사장은 “더 좋은 아버지가 되지 못해 늘 미안한 마음”이라고 했다.
넷 중 맏이인 박씨는 유 이사장이 경기 안산 동산고 교장으로 재직(1999년 2월~2007년 2월) 중에 만났다. 북한이탈주민이란 이유로 몇몇 학교에서 입학을 거절당한 박씨가 그를 찾아왔다. 평소 ‘배움에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던 유 이사장은 ‘공부를 하고 싶다’는 박씨를 외면할 수 없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북에서 온 제자를 교장실로 불러 살뜰하게 챙겼다. 말을 걸 때도 늘 조심스러웠다. “북에서의 생활은 거의 묻지 않았어, 그 아이의 상처를 어쭙잖게 위로하는 건 동정 밖에 되지 않거든.”
학교 생활뿐만 아니라 반찬 등을 챙겨주며 부모의 자리를 대신했다. 그를 경계하던 제자의 눈초리도 점차 누그러졌다.
2002년 시작된 사제 관계는 3년 후 박씨와 결연 가족을 맺으면서 부자의 연(緣)으로 이어졌다. 박씨가 업고 온 8살 어린 동생과 다른 북한이탈주민 형제도 품에 안았다. 슬하에 두 명의 아들이 있던 유 이사장 부부는 이렇게 6형제의 부모가 됐다.
정식 양자(養子)가 아닌 결연 가족의 형태를 유지한 것은 통일이 될 때를 대비해서였다. 성(姓)마저 바꾸면 혹 정체성 혼란을 겪을 수 있겠다는 우려 때문이다.
유 이사장은 “통일이 됐을 때 성이 바뀐 채 친부모와 만나게 하고 싶지 않았다”며 “아버지로서 사랑만 주면 됐지 뿌리까지 뺏고 싶진 않았다”고 했다.
현재 사회복지단체에서 일하는 박씨는 반려자를 만나 가정도 꾸렸고 지난달엔 첫 딸 돌잔치도 치렀다.
“손녀가 처음엔 판사봉을 집으려다 5만원권 지폐를 잡더라고. ‘아빠 한을 풀어주려나보다’며 다들 웃었지, 허허.” 나머지 아들 셋도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는 등 한국 땅에 뿌리 내린 번듯한 사회인으로 자랐다.
제45회 어버이날을 맞아 이들 모두 한자리에 모이는 가족 모임을 갖는다. 유 이사장은 “피붙이들도 모이기 쉽지 않은데 명절이나 기념일 때마다 꼭 찾아주는 아들들이 정말 고맙다”며 애정을 한껏 드러냈다.
유 이사장은 자신과 같은 결연 가정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했다. 결연 가정을 통해 북한이탈주민이 우리 사회에 자연스럽게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유 이사장은 “‘북한이탈주민 3만명 시대’에 지원 제도 못지 않게 가정에서부터 이뤄지는 ‘작은 통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제가 한 일이 대단한 게 아니에요. 북한이 아니라 다른 동네에서 이사 온 아이들이라고 생각하면 누구나 관심을 갖고 손을 내밀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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