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 대표는 탈당을 선언하기 전부터 종종 붉은색 넥타이를 맸습니다. 그때마다 취재진은 “넥타이의 의미는 무엇인가”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상의와 잘 어울리는 색을 골랐을 뿐”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하지만 꼼꼼한 성격의 소유자이자 언론인 출신이기도 한 이 전 대표가 언론에 비칠 자신의 모습을 모를 리 없습니다. 탈당을 선언한 기자회견장에도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고 왔을 겁니다. 모두에게 충격을 주겠다는 마음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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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 대표는 고심해서 넥타이를 골랐을 겁니다. 오죽하면 이 전 대표의 보좌관이 쓴 책 제목이 <이낙연은 넥타이를 전날 밤에 고른다>였을까요. 저자는 책에서 “넥타이는 NY(이낙연)가 직접 고릅니다. (중략) 타이를 비롯해 셔츠까지 하루 전에 미리 골라둡니다. 다음날의 행사나 언론 등에 노출되는 일정을 감안해 국민들께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인 것입니다”라고 얘기합니다.
김상일 정치평론가는 지난 12일 한 방송 인터뷰에서 “빨간색이 의미하는 흥하는 기운, 정열 이런 것이 있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빨간색을 매지 않았을까”라고 해석했습니다. 이 전 대표가 국민의힘 지지자들에게 잘 보이려고 빨간색을 맨 것 아니냐는 지적에는 “강성지지층이 비판을 쏟아내는 것은 자기들만의 생각을 강하게 표출하는 것이라 소구되기는 어렵지 않을까”라고 답했습니다.
전임 문재인 정부의 국무총리이자 민주당 대표를 지낸 이 전 대표가 국민의힘 지지자들에게 소구하기 위해 붉은색 넥타이를 맸다는 말은 일견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그간 ‘수박’(겉은 파란색인 민주당이지만, 속은 붉은색인 국민의힘이란 뜻)이라 불리며 “얻어맞으면 화도 나고 외롭다. 나도 얻어 맞다보니 그걸 알게 됐다”는 그가 붉은색 넥타이로 굳이 또 ‘얻어맞는 일’을 만들었을 리도 없고요. 다만 민주당을 상징하는 파란색과 가장 반대되는 색을 선택해 완전한 결별의 마음을 드러낸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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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정치인들은 넥타이로 은연 중에 의사를 드러냅니다. 이를 대놓고 설명한 분도 계시죠. 민주당을 탈당하고 국민의힘에 입당한 이상민 의원입니다.
이 의원은 지난 8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하며 붉은색 넥타이를 맸습니다. 그는 회의에서 “그동안 민주당에 있다 보니 애써 파란색으로 다 일색을 하다 보니 빨간색(넥타이)을 매는 건 금기사항이었다”고 말했어요. 이어 “오늘 입당식을 한다니까 저희 집사람이 골라준 색인데 사실 저는 좀 머뭇거렸다”며 “그동안 제게 마음의 장벽과 경계가 있었구나. 사실인 이거 참 부질없는 것 아니겠나”라고 덧붙였습니다.
반대의 사례도 있습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4일 광주를 찾았는데, 그때 평소 즐겨 하던 붉은색 넥타이가 아닌 푸른색 계열 넥타이를 착용하고 나타났습니다. 광주 민심을 고려해 국민의힘 상징색인 붉은색 넥타이를 의도적으로 피했다는 해석이 나왔어요.
여성 정치인에겐 브로치가 ‘패션 외교’ 아이템 중 하나로 꼽힙니다. 메를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부장관이 대표적인 ‘브로치 외교’ 정치인이인데요. 러시아가 미국 국무부를 도청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커다란 벌레 핀을 옷깃에 달았고,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자신을 뱀이라 부르자 금색 뱀 브로치를 꽂앗습니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엔 햇살 모양 브로치로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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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 대표는 결국 넥타이를 바꿔 맸습니다. 옷장에서 푸른색 넥타이와 붉은색 넥타이를 번갈아 매보다 결국 빨간걸 꺼낸 그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이별 통보를 하러 가는 그 마음이 가볍지는 않았을 겁니다. 언제 창당을 선언할 거냐는 취재진의 질문이 쏟아지던 지난 1일, 이 전 대표는 “인간이 어찌 그런가. 당원께 고별 인사도 안하고”라며 이별 통보를 마지막까지 늦췄습니다. 총선이 90일도 남지 않은 오늘부터 이 전 대표는 새로운 넥타이를 매고 나서야 할 겁니다. 그에게 노래 가사를 보냅니다. “보여줄게, 완전히 달라진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