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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니어주거의 지도를 펼쳐보면 풍경이 기이하다. 한쪽 끝에는 서울 한남과 마곡 등지에 등장하는 프리미엄 시니어타운이 있다. 보증금 수억에서 수십억원, 월 이용료 수백만원. 지불 능력을 갖춘 상위 1~2%가 대기 줄을 선다. 다른 쪽 끝에는 장기요양등급을 전제로 하는 요양시설이 6300여 개소가 있다. 그 사이(아직 시설에 갈 만큼 아프지는 않지만 혼자 살기엔 불안한 사람들을 위한 자리)는 어디에 있는가. 중산층 고령자가 자비로 입주할 수 있는 노인복지주택은 전국 43개소, 약 9000세대. 65세 이상 인구 대비 0.08%다.
그 텅 빈 가운데에 지금 700만명이 서 있다. 이들은 현역 시절 성실히 일해 자가 한 채와 국민연금을 확보한 우리 사회의 허리 계층이다. 소득 4~8분위,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을 합쳐 월 150만원에서 250만원 사이의 주거비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 복지 혜택을 받기엔 소득이 높고 프리미엄 시니어타운에 들어가기엔 자산이 부족한 이 낀 세대에게 지금 이 나라의 시니어 주거 시장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이들 대부분은 자기 집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자기 집이 있다는 것과 나이 들어서도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집이 있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65세 이상 가구 자산의 80%가 거주 부동산에 묶여 있고 이를 유동화하는 주택연금 가입률은 1.8%에 불과하다. 배우자 사별을 포함해 혼자 사는 70세 이상 1인 가구가 159만명에 이르는 지금, 집이 있다는 것만으로 갈 곳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같은 문제를 우리보다 먼저 마주한 나라가 있다. 일본이다. 일본도 한때 시설 총량 규제 아래에서 중간 주거가 사라지는 역설을 겪었다. 그러나 2011년, 일본은 서비스형 고령자 주택(서고주) 등록제를 만들었다. 시설이 아닌 주택으로 정의하고 임대차 계약을 의무화하며 비용을 항목별로 공시하도록 하고 장기요양보험과 연계되는 구조를 설계했다. 그 위에서 민간 사업자들이 자유롭게 뛰어들었다. 14년이 지난 지금, 일본의 서고주는 29만호를 넘었다. 우리보다 훨씬 완만한 속도로 늙어간 나라조차 이렇게 서둘렀다.
한국은 어떤가.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지 이미 2년차인데 중산층을 위한 시니어 주거는 여전히 9000세대에 멈춰 있다. 우리는 흔히 이 격차를 시장의 탓으로 돌린다. 민간 기업들이 돈 되는 럭셔리만 지으려 한다고 정부가 저소득층 복지에만 매달린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20년 넘게 이 분야를 들여다본 사람의 눈으로 말하자면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이것은 시장의 실패가 아니라 제도의 실패다.
민간 사업자가 중간형 시니어 주거를 검토할 때 부딪히는 벽은 세 가지다. 모호한 법적 정체성, 끊긴 장기요양보험 재원 통로, 보이지 않는 자본 회수 출구다. 규칙이 없는 시장에서 사업자에게 남는 합리적 선택은 둘 뿐이다. 대규모 럭셔리로 가거나 아예 진입을 포기하거나. 그렇게 가운데는 계속 비어 있게 된다.
일본이 14년 만에 29만호를 만든 힘은 창의성이나 자본이 아니었다. 규칙이었다. 정의를 명확히 하고 계약 형태를 규율하고 비용을 투명하게 공시하게 하고 돌봄과 주거를 제도적으로 연결했다. 그 네 개의 레일이 깔리자 민간이 그 위에서 자율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한국에도 변화의 조짐이 있다. 실버스테이 시범사업이 시작됐고 지난 2월에는 은퇴자마을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고령자돌봄주택 특별법안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뒤늦은 출발이지만 방향은 옳다. 다만 방향이 맞다고 해서 저절로 도착하는 것은 아니다. 세 개의 법이 서로 다른 부처, 서로 다른 속도로 조금씩 움직이고 있을 뿐 아직 하나의 완결된 궤도로 연결되지 못했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에서 유례없이 빠르다. 일본에게 허용됐던 시행착오의 여유가 우리에게는 없다. 1차 베이비부머가 75세에 도달하는 2030년대 초반, 돌봄과 주거의 수요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는 규모로 팽창할 것이다. 그때 우리 시대의 노년이 어디에서 살고 있을지는 지금 이 몇 년의 선택에 달려 있다.
지난달 나는 어른의 조건에 대해 썼다. 나이가 어른을 만들지 않는다고 나이는 그저 기회를 늘릴 뿐이라고. 그 말은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에도 해당된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는 것 자체가 우리를 어른 사회로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천만 노인의 나라가 품위 있는 사회가 되려면 그 어른들이 존엄하게 나이 들어갈 자리를 먼저 마련해야 한다. 그것은 시장이 알아서 해결해주지 않는다. 제도가 먼저 레일을 놓아야 한다. 그 레일을 놓을 수 있는 시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