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살 아들과 10개월된 딸을 키우는 전업주부 윤지현(가명·29)씨는 얼마 전 상담센터를 찾았다. 둘째를 낳은 뒤 우울증세가 부쩍 심해졌다. 아이가 둘이 되자 육아 스트레스도 두 배로 늘었다. 아이둘을 챙기면서 집안일까지 하다보면 하루종일 쉴 틈이 없다. 윤씨 남편은 잦은 야근으로 한밤중에야 퇴근하는 날이 많다. 주말에도 밀린 잠을 자느라 집안일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는다.
윤씨는 “주말에 큰애라도 좀 봐달라고 하면 ‘집에만 있으면서 육아까지 떠넘기냐’고 짜증을 낸다.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 전업주부 육아스트레스 워킹맘보다 높아
육아정책연구소가 18개월 미만의 자녀를 둔 엄마 1863명의 스트레스 실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전업주부의 우울이나 스트레스 정도는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워킹맘보다 높았다.
육아정책연구소가 5점 만점(높을수록 나쁨)을 기준으로 우울 점수를 매긴 결과 전업주부들의 평균 우울 점수는 1.95점으로 워킹맘(1.82점)보다 0.13점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양육 스트레스 점수 역시 전업맘(2.77점)이 워킹맘(2.67점)보다 0.1점 높았다.
임현주 배재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전업맘이 워킹맘보다 양육 스트레스가 높은 것은 ‘전업맘은 일을 하지 않으니 양육을 떠맡는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회적 인식 때문”이라며 “전업맘에 대해서도 양육과정에서 남편을 비롯한 다른 가족과 사회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업맘들은 특히 ‘독박육아’로 인한 고충을 이해해주는 가족이 없다는 점이 가장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13개월 된 쌍둥이 형제를 키우는 주부 서모(25)씨는 “아이 둘을 돌보다 보니 병원 가는 것은 물론, 화장실 갈 시간조차 없을 때가 많다”며 “육아 스트레스도 문제지만 남편과 시댁식구들이 이 고충을 당연하게 여기는게 가장 견디기 힘들다”고 말했다.
극심한 양육 스트레스와 산후우울증을 이기지 못한 전업주부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도 드물지 않다.
지난 2015년 10월 20일 충북 음성에서는 40대 여성이 어린 자녀 2명과 저수지에서 익사체로 발견된 사건이 발생했다. A씨의 남편은 경찰 조사에서 “전업주부인 아내는 육아 과정에서 고통을 호소해왔으며, 둘째를 낳은 뒤엔 극심한 산후 우울증까지 겪었다”며 “사망 전날 유서를 쓰고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버려 실종 신고를 했는데 이렇게 스스로 목숨을 끊을 줄 몰랐다”고 말했다.
|
전문가들은 엄마의 ‘독박육아’로 인한 스트레스 해법은 ‘아빠육아’를 활성화는 게 최선책이라고 입을 모은다. 남성육아휴직, 육아기근로시간 단축과 같은 지원 제도를 부모들이 부담없이 활용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고용노동부가 작년 10월 내놓은 ‘남성 육아휴직자 증가 추이’에 따르면, 지난 2010년 전국의 육아휴직자 수 4만 1729명 중 남성의 비중은 2%(819명)에 불과했다. 그 후 2013년 6만 9616명 중 2293명(3.3%), 2015년 8만 7339명 중 4872명(5.6%), 지난해(9월 말까지 집계) 6만 7873명 중 5398명(7.9%)까지 증가했지만, 여전히 10%를 밑돈다.
2012년 도입한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는 도입 5년이 경과했지만 여전히 활용도가 떨어지는데다 그나마 남성 비중은 20%에도 못미친다.
고용부에 따르면 지난해(9월 말까지 집계) 이 제도를 사용한 직장인 2100명 중 남성은 14%(297명)에 그쳤다. 그나마 전년 같은 기간에 기록한 8%(1518명 중 126명)에 비해 크게 개선된 수치다.
지성애 중앙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엄마로서의 역할 외에 이렇다 할 사회적 지위가 없고 사회 관계망도 부족한 전업주부들은 고립감을 호소하기 쉽다”며 “육아가 미래 세대의 노동력을 키우고 사회화하는 과정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사회가 함께 아이를 돌봐야 한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아빠들도 눈치 보지 않고 유연히 제도를 활용할 수 있게 기업 문화 개선에 힘쓸 것”이라며 “남성들이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돼야 엄마들의 부담도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