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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우리나라에서 차를 타고 가장 높이 올라갈 수 있는 도로는 어디일까? 강원도 정선과 태백, 영월이 경계를 이루는 해발 1330m 만항재다. 대덕산과 금대봉, 은대봉, 함백산을 거쳐 태백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중 하나다.
만항재는 ‘천상의 화원’이라 불린다. 하늘과 맞닿은 듯한 고갯마루에 아름다운 야생화가 화려한 자태를 뽐내기 때문이다. 만항재 정상에 오르면 고한읍에서 세운 ‘백두대간 만항재’ 푯돌이 있고, 도로 양쪽이 천상의 화원과 하늘숲 정원으로 나뉜다. 산들산들 부는 바람과 낙엽송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얼마나 평온한지, 야생화를 찾아 산책하는 동안 신선이 된 기분이다.
만항재 곳곳에는 정선의 특산물답게 고려엉겅퀴가 제법 눈에 띈다. 고려엉겅퀴는 흔히 ‘곤드레’라 부르는 국화과 여러해살이풀이다. 강원도를 여행할 때 식당에서 흔히 만나는 곤드레밥에 들어가는 것이 고려엉겅퀴의 어린순과 잎이다. 바닥에서 진분홍색으로 핀 붉은토끼풀도 보인다. 일반적으로 하얀 토끼풀보다 꽃이 크다. 원산지가 유럽이고 가축 사료용으로 들여왔는데, 우리나라에서 고운 야생화가 되었다.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많이 함유되어 외국에서는 ‘식물 에스트로겐’이라 불린다.
벌개미취와 개미취는 군락을 이뤄 피었다. 둘 다 연보랏빛 꽃이 피는데, 개미취가 벌개미취보다 꽃이 작고 키가 크다. 수라상에 오를 정도로 귀한 나물이라는 어수리도 작고 흰 꽃이 모여 피었다. 바깥쪽 꽃잎이 안쪽보다 크고, 위에서 내려다보면 꽃다발 수십 개를 모아놓은 것처럼 화사하다. 하늘숲 정원 곳곳에는 쉴 수 있는 벤치가 놓였고, 울창한 낙엽송 숲을 따라 오붓한 산책로가 났다.
이번에는 천상의 화원을 둘러보자. 야생화가 만발하기 전에 만항재가 목장이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고한읍에 삼척탄좌가 생기고, 광부들에게 영양을 공급하기 위해 만항재에 목장을 만든 것. 하지만 목장은 실패하고 허허벌판이 되었다. 지금도 천상의 화원에는 당시 소들의 사료로 쓰인 오처드그라스와 티머시가 가끔 눈에 띈다. 천상의 화원에는 낙엽송이 대부분이다. 낙엽송이 군락을 이룬 것은 목장이 문을 닫은 뒤의 일이다. 고심 끝에 낙엽송을 심었는데, 탄광에 쓰일 갱목을 만들기 위해서다. 낙엽송이 빨리 자라는데다 곧아서 갱목으로 가공하기 쉽기 때문이다.
천상의 화원은 낙엽송 사이로 산책로가 났다. 지그재그로 난 길 좌우로 야생화들이 하나둘 고개를 내민다. 귀여운 오리 두 마리가 마주 보는 듯한 진범이 가장 먼저 반긴다. 진범은 원래 이름이 진봉이다. 중국에 진봉이란 장수가 죽은 뒤 그의 무덤가에 핀 꽃인데, 진봉에서 진범으로 바뀐 것이다. 날개를 접은 오리의 모습과 비슷해서 한참 들여다봤다.
둥근이질풀은 수정이 한창이다. 꽃잎이 오므려졌으면 아직 수정되지 않은 꽃이고, 꽃잎이 바깥쪽으로 퍼졌으면 수정된 꽃이란다. 수정되고 꽃이 지면 꽃받침이 별처럼 변한다.
활짝 피어난 용담과 투구꽃도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활짝 핀 용담 안쪽 깊숙이 몸을 들이밀고 꿀을 빠는 호박벌도 보인다. 몽글몽글하면서 귀여운 꽃이 모여 핀 톱풀, 벌들이 모인 것 같은 벌노랑이는 꽃이 예쁘고 앙증맞다. 이 밖에도 긴산꼬리풀, 까실쑥부쟁이, 미역취, 꿩의비름, 부처꽃, 조밥나물, 산국, 구절초 등이 각각 색을 발하며 오롯이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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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항재에서 내려가는 길에 삼탄아트마인(옛 삼척탄좌), 사북탄광문화관광촌(옛 동원탄좌)이 있다. 두 곳은 석탄 산업이 태동한 뒤 전성기를 거쳐 탄광이 문을 닫을 때까지 모습을 서로 다른 각도에서 보여준다. 삼탄아트마인은 탄광 문화와 예술이 결합된 공간이며, 사북탄광문화관광촌은 동원탄좌가 문 닫은 뒤 멈춘 과거의 시간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곳이다.
삼탄아트마인은 삼척탄좌가 운영되던 당시 종합 사무동으로 쓰인 공간을 삼탄아트센터로 활용, 삼척탄좌의 잊힌 과거와 다양한 미술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4층부터 전시 공간 10여 곳을 둘러보면 석탄을 캐서 모으던 시설에 미술 작품을 가미한 레일바이뮤지엄을 거쳐 레스토랑 832L, 기억의 정원 등이 있는 야외 공간으로 나온다.
사북탄광문화관광촌은 2004년 문 닫은 동원탄좌의 기억을 되새겨보는 공간이다. 5공화국이 시작될 무렵 광부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만든 근로자복지회관과 광부종합욕장을 탄광 영업이 종료된 10월 31일 모습 그대로 재현했다. 동원탄좌는 1963년 시작해 40여 년간 탄광 역사를 이어간 동양 최대의 민영 탄광이었다. 전성기에는 광부가 6300여 명이었다고 한다. 1층은 1000명이 한꺼번에 이용할 수 있는 샤워실을 비롯해 보안 장비실과 채탄 장비실 등으로 꾸며졌고, 2층에는 안전등을 충전하는 안전등실과 장화를 세척하는 세화장, 동원탄좌의 역사를 가늠해볼 수 있는 문서 자료실 등으로 구성되었다.
동원탄좌의 역사가 멈춘 공간이다 보니 그대로 감정이입이 된다. 탄광이 문 닫은 해의 달력, 2004년 10월 31일 마지막 인차(탄광이나 광산에서 사람을 실어 나르는 데 쓰는 광차)를 탄 인원이 734명이라고 적힌 칠판 등 10여 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탄광촌 아이들이 쓴 시를 읽으며 눈시울을 붉히는 관람객도 있다.
사북탄광문화관광촌에서는 인차 탑승 체험이 가능하다. 덮개만 제거한 실제 인차가 수평갱 200m 정도까지 들어간다. 기차보다 훨씬 덜컹거리는 인차를 타고 수평갱을 들어가고 나오는 느낌은 당시 광부의 마음 그대로다.
삼탄아트마인에서 만항재 오르는 길에 통도사, 법흥사, 봉정암, 상원사와 함께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으로 알려진 정암사가 있다. 적멸보궁 뒤 산 중턱에 자리한 7층 모전석탑인 정암사 수마노탑(보물 410호)도 만날 수 있다.
◇여행메모
△여행코스
▷당일 여행 코스= 만항재→정암사→삼탄아트마인→사북탄광문화관광촌
▷1박 2일 여행 코스= 사북탄광문화관광촌→삼탄아트마인→정암사→만항재→(숙박)→ 몰운대→반월에 비친 그림바위마을→화암동굴→정선오일장→병방치스카이워크
△가는길
▷버스= 서울-고한사북,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하루 30회(06:00∼23:00) 운행, 약 2시간 50분 소요. 고한사북공용버스터미널에서 만항행 버스 하루 4회(06:40, 09:50, 14:10, 19:00) 운행, 만항마을에서 하차, 만항재까지 도보 40~50분소요.
▷자가용= 중앙고속도로 제천 IC→영월 방면 우측→신동교차로에서 단양?영월 방면 우측 38번 국도→고한터널 지나 상갈래삼거리에서 정암사 방면 우회전→만항마을 지나 만항재
△주변 볼거리= 화절령, 몰운대, 화암동굴, 반월에 비친 그림바위마을, 타임캡슐공원, 정선오일장, 아라리촌, 병방치스카이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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