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 위 ‘태양광 발전소’…탄소중립 힘 보태고 농가소득 늘렸다

박순엽 기자I 2022.09.04 12:00:00

경남 함양 ‘기동마을 영농형 태양광 발전소’ 가보니
작물 재배와 발전 동시에…악천후 시 농작물 피해↓
친환경 전력 생산하며 농지 효율도 높여 ‘일거양득’
“현행 농지법에 활성화 제한…법 개정과 지원 필요”

[함양(경남)=이데일리 박순엽 기자] “전체 900평대 논에 500평가량 영농형 태양광을 설치했더니 연간 태양광 소득만 3000만원 가까이 나오고 있습니다. 벼농사를 그대로 지으면서 얻는 부가적인 수익인 셈이죠. 현재 지역 주민으로 이뤄진 사회적협동조합이 농사짓기 어려운 노령 농민의 농지를 임대해 작물 재배와 함께 전기를 생산하고 있으며, 여기서 남는 수익금은 마을 공동기금으로 쓰고 있습니다.”

지난 1일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만난 이태식 기동마을 사회적협동조합장은 논 위에 펼쳐진 태양광 발전소를 바라보며 영농형 태양광이 유용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지난 2019년 4월 한국남동발전이 출연한 농어촌상생협력기금으로 준공된 기동마을 발전소는 현재 100킬로와트(kW) 규모의 영농형 태양광 전용 모듈을 통해 연간 150여명이 쓸 수 있는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지난 1일 경상남도 함양군 기동마을 영농형 태양광 발전소 아래 농지에서 농민이 일하고 있다. (사진=박순엽 기자)
◇작물 재배도 하고, 태양광 발전도 하고

기동마을 발전소의 가장 큰 특징은 영농형 태양광을 채택했다는 점이다. 영농형 태양광 설비는 작물마다 생육에 필요한 햇빛이 한정돼 있다는 점을 이용해 논·밭 위에 설치된다. 즉, 모듈의 크기와 배치, 각도 등을 조절해 작물 재배에 적합한 일조량을 공급되게 하면서 남는 태양광으론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이다. 벼는 하루 5시간 정도 햇볕을 쬘 수 있도록 조절한다.

다만, 영농형 태양광 설비는 농지 위에 설치되는 만큼 일반 태양광 설비와는 다르다. 우선 태양광 설비 아래 농지에 햇빛이 잘 들게 하고 모듈 하단부에 집중되는 우수량을 줄이고자 일반형 모듈보다 좁은 영농형 모듈을 사용한다. 이앙기·콤바인 등이 농지를 다닐 수 있도록 땅에서 3~5미터(m) 높이에 적당한 폭을 둔 구조물에 모듈을 설치하는 점도 특징이다.

영농형 태양광의 원리인 ‘솔라셰어링’ (자료=한국남동발전)
(자료=한국남동발전)
영농형 태양광을 설치하면 설비가 농지를 가리는 형태로 보이지만, 실제 수확량 차이는 크게 나지 않는다. 지난 2016~2021년 5년간 전국 66개소의 영농형 태양광 실증 시험 현황을 분석한 결과, 영농형 태양광 발전소 하부 농지 수확량은 기존 농지의 최소 80%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녹차, 포도 등은 적게는 2%에서 많게는 20%까지 수확량이 늘기도 했다.

정재학 영남대학교 교수는 “식물에 빛이 과하면 엽록체들을 보호하기 위해 광 정위 운동을 하면서 녹말이 적게 생산되고, 열이 과하면 식물을 온도를 낮추기 위해 증산(물을 증발) 활동을 하면서 수분이 부족해질 수 있다”며 “영농형 태양광 아래 농지에 적합한 식물을 잘 고려해서 생산하면 농민들도 혜택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영농형 태양광 설비는 폭염·폭우·냉해 등에 따른 농작물 피해를 줄이는 ‘그림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 교수는 “태양광 설비가 여름철 물 증발을 막아 토지 습도를 유지하도록 해 가뭄을 예방할 수 있고, 겨울철엔 추운 공기의 흐름을 막아 냉해 피해를 줄일 수 있다”며 “프랑스에선 영농형 태양광을 농산물 보호 시설로 일부 인정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지난 1일 경상남도 함양군 기동마을 영농형 태양광 발전소 아래 농지에서 농민이 일하고 있다. (사진=박순엽 기자)
◇탄소중립 기여할 뿐만 아니라 농가 수익성도 높여

아울러 영농형 태양광은 2018년 대비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40%를 내세운 우리나라 탄소중립에 도움을 줄 전망이다. 지난 2019년 기준 국내 농경지 160만헥타르(㏊) 중 5%에만 영농형 태양광을 설치해도 32기가와트(GW)에 이르는 발전소를 건설할 수 있다. 이는 국내 총인구의 90%가 넘는 4800만명이 가정에서 1년 동안 쓸 수 있는 전력을 생산하는 규모다.

또 영농형 태양광이 농촌의 새로운 수익 모델로 활용되면서 농지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유인으로도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전국 농지 면적은 2011년 169만8000㏊에서 2020년 기준 156만5000㏊로 8% 줄었다. 영농형 태양광이 농지 감소에 따른 식량 안보 위협 가능성도 줄일 수 있다는 의미다.

영농형태양광 국내 잠재 용량 (자료=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이러한 장점에 외국에서도 영농형 태양광을 주목하고 있다. 프랑스·이탈리아는 국가 차원에서 영농형 태양광 사업을 지원하고 있고, 일본도 수확량이 지난해 대비 80% 미만으로 떨어지지 않는 한 20년간 영농형 발전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국내에선 정부와 공기업, 연구기관 등을 중심으로 영농형 태양광 실증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그러나 국내 영농형 태양광 활성화를 위해선 여전히 넘어야 할 제도적 벽이 있다. 가장 큰 걸림돌은 농지법이다. 현행 농지법 시행령에 따르면 영농형 태양광의 타 용도 일시사용 허가 기간은 최장 8년으로 제한돼 있다. 태양광 발전소 수명이 25년쯤인 점을 고려하면 수명의 절반조차 쓰지 못하고 발전소를 철거해야만 하는 상황인 셈이다.

이 조합장은 “발전소 수익금으로 마을의 행정업무를 보완하고, 복지 혜택을 늘리면서 주민 만족도가 높다”며 “영농형 태양광을 위해 타 용도 일시사용 허가 기간을 연장하는 내용의 토지법 개정과 함께 금융 지원정책 등도 더욱 늘려 주민들의 편의와 이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농촌 재생에너지 전환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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