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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멱칼럼]저출산 해법 '저녁이 있는 삶'이 답이다

김정민 기자I 2017.05.29 06:45:00
“아빠~!” “아빠~!” 언제부터인가 두 아들들이 ‘아빠’를 찾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남편이 ‘아빠의 시간’을 공유하면서부터 생긴 현상이었다. 아빠가 자신들을 위해 시간을 내면 낼수록 아이들은 아빠와 하고 싶은 일도,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아졌다. 대상을 부르는 횟수와 사랑의 감정은 비례하다고 하던데, 놀랍게도 아빠에 대한 아이들의 사랑은 그 만큼 깊어
져 있었다.

불과 2~3년 전만해도 지금의 관계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남편은 회사 일로 늘 바빴고, 주말에는 아이들과 놀기보다는 쉬고 싶어 했으며, 몸과 맘이 지쳐있었던 터라 사소한 일에도 곧잘 화를 내곤 했다. 당연히 아이들은 그런 아빠를 좋아하지 않았다. 늘 ‘엄마’와 함께이길 원했고 아빠가 옆에 있음에도 줄곧 “엄마”만 찾았다.

남편은 그런 아이들의 태도를 서운해 하면서도 관계를 개선할 행동을 취하기에는 모든 상황들이 힘겨워 보였다.

그런 그가 달라지기 시작한 건 예민한 큰 아이와의 관계가 극에 달했을 때다. 뭔가 변화가 필요했다.

남편은 가장 먼저 정시 퇴근 가능하고, 근무 환경이 유연한 곳으로 직장을 옮겼다.

정시 퇴근만 했을 뿐인데 ‘저녁 있는 삶’이 가능해졌다. 네 식구가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산책을 하는 시간이 늘어 갈수록 아이들을 바라보는 남편의 눈빛이 달라져 갔다.

육아의 즐거움이 하나씩 쌓일 때마다 스마트폰을 바라보는 횟수보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횟수가 늘어났고 머무는 시간도 훨씬 길어졌다.

아이들의 예쁜 짓이 늘어나고, 아이들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남편은 ‘이 찰나의 순간’이 지나가는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가랑비에 옷 젖듯 서서히 아빠 육아의 즐거움에 빠져들더니 ‘시간만 때우는 귀찮니즘 아빠’에서 ‘웃음이 많아지고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을 즐기는 아빠’로 바뀌어 갔다. 이러한 남편의 변화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워킹맘인 내 행복지수를 바꿔 놓을 만큼 매우 강력했다.

우리가 ‘아빠 육아’에 더욱더 힘을 쏟아야 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아빠가 ‘육아’의 즐거움을 깨닫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하면 가정 구성원 모두의 행복지수가 올라가고 삶의 질도 바뀌게 된다.

아빠의 행복은 가정 내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행복한 아빠는 ‘직장 내 효율성 및 생산성이 30% 증가한다’는 결과만 보도라도 가정의 행복은 곧 직장의 능률과도 연결됨을 알 수 있다.

‘아빠들의 적극적인 육아 참여’는 당연한 시대의 흐름이다. 하지만 육아에 참여할 수 있는 기반 마련 없이 그래야만 한다고 ‘강요’하고 책임만 전가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자발적으로 육아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먼저 만들어줘야 한다.

우리나라 연평균 노동 시간은 2200시간. OECD 회원국 중 최고 노동 시간을 자랑한 반면 노동생산성은 최하위 수준에 머물고 있다.

‘회사에 머무는 시간’이 능력으로 인정받는 시대는 지났다. ‘정시퇴근’을 시작으로 ‘육아휴직’, ‘유연근무제’ 등 일·가정 양립 제도를 기업 내에서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기업의 문화가 하루 빨리 자리 잡혀야 한다.

어제도 육아휴직을 하겠다는 남성근로자에게 육아휴직이 기업에 선례가 되지 않도록 다른 직원들에게는 병가로 쉰다고 말하게 했다는 한 근로자의 상담을 들으며, 아직 갈 길이 멀었음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됐다. ‘아빠 육아’는 말로만 떠든다고 해서 자리 잡히는 게 아니다.

아빠들이 아이들 공간으로 들어가 함께 부대끼며 육아의 참맛을 알도록 물리적인 장치를 해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가정친화경영에 대한 인식 변화와 지자체, 정부의 적극적인 지지와 인센티브가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기혼 여성들의 분노 대상 1순위는 ‘남편’이다. 정확히 말하면 육아 및 가사에 비협조적인 ‘남편’이다.

언제까지 아내의 분노 대상이 ‘남편’이 되게끔 놔둘 것인가. 지금부터라도 이 시대의 남편, 아빠들에게 저녁 있는 삶을 보장해주자. 그러다보면 자발적인 아빠 육아도 가능하고, 아내들의 분노 대상도 바뀌게 될 것이다.

<이수연 워킹맘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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