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K피플)이코노미스트로 다시 주목받는 '콜 수술' 집도의

이학선 기자I 2010.09.08 08:39:31

정책전문 이흥모 해외조사실장, 조사업무에서도 두각
'해외경제 보고서`업그레이드..한은 스탠스 가늠자 역할
금융시장국장 땐 통화정책 운영체계 개편 주도

[이데일리 이학선 기자] 소설 삼국지를 보면 방통(봉추)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복룡(제갈량)과 봉추 둘 중 하나를 얻으면 천하를 도모할 수 있다고 했던 그 인물이다. 들창코에 얼굴은 검고 추남이라 유비조차 처음엔 그를 중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부임한 곳에서 방통은 술에 빠져지냈다. 자신을 몰라주는 주군에 대한 원망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100여일간 밀린 일을 반나절만에 처리하는 것을 본 장비가 유비에게 중용할 것을 권해 방통은 다시 세상에 이름을 내놓게 된다.

재주가 아무리 많아도 정작 쓰임에 맞는 일에 중용되지 못하면 사람이나 사물이나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다. 술에 빠져있던 방통이 그렇고 1800여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 한국은행을 출입하면서 느낀 것은 그런 인재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은 자체가 거대한 인재풀이다보니 다른 곳에 있었더라면 빛을 보고도 남았을 아까운 진주들이 곳곳에 묻혀있다.
 

그런 사람 가운데 한 명으로 이흥모 해외조사실장(54·사진)을 꼽을 수 있다. 30년 가까이 한은에 몸담으면서 그는 한은의 방패였고, 때론 상대를 긴장시키는 예리한 창이었다. 지금은 해외경제동향을 파악하는 실무책임을 맡고 있지만, 그의 주특기는 정책과 금융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실장은 지난 2008년 한은이 정책금리를 콜금리에서 기준금리로 바꿀때 큰 역할을 했다. 당시만해도 중앙은행이 관리하는 콜금리는 변동폭이 매우 제한돼있어 금융기관들은 단기자금관리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콜금리가 꽁꽁 묶여있다보니 금융기관들은 콜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해 그보다 만기가 긴 채권에 투자하는 식으로 무위험 거래를 즐기기도 했다. 한은이 국민경제를 생각해 결정한 일이 몇몇 금융기관들에 별 어려움없이 돈 벌 기회를 줬던 셈이다.

이 실장은 여기에 메스를 들이댄다. 그가 금융시장국장으로 일을 시작한 직후 콜금리가 당시 한은의 콜금리 목표치보다 0.60%포인트 가량 급등한 일이 있었다(2007년4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두번 이상 올린 것과 비슷한 일이 벌어진 것. 자금시장에 한바탕 난리가 났고, 한은에 손을 벌리는 금융기관들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이 실장은 꿈쩍하지 않았다. 오히려 금융기관들에 `절도있는 지준관리`를 요구하며 시장의 자율적 해결을 주문했다.

1년뒤 한은은 통화정책의 운영체계를 전면 개편했다(2008년3월). 콜금리가 기준금리로 바뀐 것은 물론이고 그간 선진국에서 사용되던 대기성여수신 제도(자금조정대출 및 자금조정예금)가 도입됐다. 그가 시장자율 해결을 주문했던 것도 결국 제도변경에 앞서 시장에 예방주사를 놓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시장불안을 수수방관한 것도 아니다. 지난 2007년말 미국발 신용위기, 국내 스왑시장 혼란 등으로 채권금리가 급등하자 한은은 국고채 단순매입 카드를 꺼냈다. 특히 시장이 기대하는 것 이상으로 국고채를 매입하겠다고 밝히면서 시장의 불안을 달래는데 성공했다.

한마디로 중앙은행이 언제 개입해야하는지를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그와 함께 일했던 직원들은 이 실장의 판단력과 실행력에 매우 높은 점수를 준다.

한은 관계자는 "이 실장은 실무진의 의견을 받아들여 단순매입 물량을 시장의 기대 이상으로 결정했다"며 "그의 결단력이 아니었으면 시장 불안이 그토록 빨리 진정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평소 이 실장이 가진 소신 가운데 하나가 금융시장, 특히 채권시장을 중앙은행의 카운터파트로 인정해야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정책기획국과 금융시장국을 거치면서 체득한 경험이 적지 않은 영향을 줬을 것으로 짐작된다.
 
미국의 경우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정부나 정치권으로부터 금리를 내리라는 압박을 받았을 때 연준을 옹호해준 것은 다름아닌 미국 채권시장이었다. 우리도 `반(反) 인플레`의 후원자로서 든든한 채권시장이 있었다면 정부의 열석발언권 행사와 같은 일이 벌어지진 않았을 것이라는게 그의 생각이다.

승승장구하던 그였지만 그러나 2008년 2월말 뜻하지 않은 불청객이 찾아왔다. 갑자기 귀에 이명현상이 발생한 것.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고 한다. 결국 이 실장 자리를 정희전 비서실장(현 정책기획국장)이 대신했다. 이 실장이 한은에 해외조사실장이라는 보직을 받고 다시 복귀한 것은 지난해 4월이다. 몸을 추스르고 오라는 이성태 당시 한은 총재의 배려였지만, 생각보다 공백기가 길었다.

주특기와 거리가 먼 해외조사실에서 그는 무엇을 했을까. 올해 상반기의 경우 해조실은 남유럽 재정위기가 불거졌을 때 그 원인과 전망을 분석하는 분석자료를 신속히 내놓아 금융시장 인사들로부터 호평을 샀다. 특히 금융통화위원회 하루이틀 전 나오는 해조실의 자료는 한은의 정책 스탠스를 가늠하는 주요 잣대였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세계경제의 성장률이 다소 둔화될 수는 있겠으나 더블딥에 빠질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한은 해외조사실, 남유럽 재정위기가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 2010년6월9일) → "유럽위기 불구 국내 성장경로 예상대로 갈 것"(김중수 한은 총재, 금통위 기자간담회, 2010년6월10일) →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이 경기 재침체에 빠질 위험은 현저히 줄어들었다"(김중수 총재, 한경 밀레니엄 포럼, 2010년6월21일) → 한은 기준금리 인상(금통위, 2010년7월9일) → "미국, 더블딥 오지 않을 것"(김중수 한은 총재, 국회경제정책 조찬 세미나, 2010년9월1일)

해조실이 내놓는 보고서가 무작정 나오는 게 아님을 짐작케하는 대목이다. 여기에는 이 실장의 탁월한 감각도 큰 몫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실장은 직원들에게 시시콜콜 지시하는 스타일과 거리가 멀다고 한다. 직원들이 곤란한 일을 겪을 때 소리없이 해결해주는 따뜻한 상사에 가깝다는 평을 듣는다. 일의 맺고 끊음이 분명한 편에 속한다. 기자들의 질문을 받을 때도 자신의 영역이 아닌 일은 일절 언급을 안한다.
 
그래서일까. 갑작스러운 불청객으로 잠시 주춤했던 그였지만, 그에 대한 동료들의 신뢰는 변함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한 직원은 "인간적으로나 업무적으로 그만한 사람을 찾기 어렵다"고 했고, 다른 직원은 "지금쯤 임원이 되고도 남았을 분인데, 많이 도와줄 수 없어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고 했다. 그의 저력도 결국은 이런 동료들의 믿음에서 다시 확인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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