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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구 상계동 지역에서는 샛강이라고 불렸다. 한강의 새끼 강(샛강)이라는 의미다. 아울러 한강 위쪽을 흐르는 내라는 의미에서 한내(漢내) 혹은 한천(漢川)이라고 불렀다. 현재 지하철 1호선 광운대역과 지하철 7호선 공릉역 사이를 흐르는 중랑천에 놓인 다리 이름이 한천교인 것은 여기서 유래했다.
중랑이라는 지명은 조선 전기로 거슬러간다. 중랑천은 도성에서 동북부로 나가려면 반드시 건너야 하는 길목이었다. 게다가 조선의 시조 태조가 묻힌 건원릉(경기 구리시)에 행차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했다. 왕이 드나들던 길목이다 보니 사료에도 중랑천 기록이 곳곳에 남아 있다. 사료는 중랑을 비롯해 중량, 충량 등 여러 지명으로 중랑천을 표기하고 있다. 조선 후기 고종 시절 승정원일기에 등장하는 중량교(中梁橋·서울 동대문구)만 보더라도 당시 지명이 지금과 달랐다는 걸 짐작게 한다.
혼재돼 불리던 지명은 1911년 일제가 경성부지도를 만들고 중량교를 중랑교(中浪橋)로 잘못 표기를 표기하면서 중랑으로 굳어지기 시작(한국민족문화대백과)했다고 한다. 해방 이후 정부는 1961년 일제가 잘못 표기했다는 중랑을 따라서 중랑천(中浪川)을 공식 지명으로 채택했고, 1988년 동대문구에서 중랑구(中浪區)가 분구했다. 이후로 중랑을 중량으로 기억하는 이들이 사라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