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12월부터 사망 원인에 대해 재감정을 의뢰하는 등 자체적으로 살인죄 적용을 검토하고 있었고, 윤석열 검찰총장도 살인죄 적용 검토를 지시했다고 한다. 그만큼 누가 보더라도 단순 아동학대치사죄로 넘어가기에는 정인이의 죽음이 참혹하고 끔찍했던 것이다.
그런데 살인죄로 공소장이 변경된 데에는 사회적 공분도 한몫 했다고 본다.
정인이 사건이 한 언론사의 방송으로 재조명 되면서 정인이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온라인에서는 정인이를 죽음으로 몬 양부모에 대한 분노 여론이 들끓었다. ‘정인아미안해’의 해시태그를 다는 운동이 벌어졌을 뿐만 아니라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 등을 통해서 양부모의 엄벌을 촉구하는 진정서 보내기 운동도 벌어졌다. 더불어 ‘진정서 쓰는 법’ 이나 ‘진정서 보내는 법’이라는 제목으로 ‘진정서 1만 장이 필요하다, 언제까지 도착해야 진정서로 인정 된다’는 등의 법적 근거 없는 글도 잇따라 올라왔다.
변호사로서 제3자가 보낸 진정서가 재판에 미치는 의미나 정도를 잘 알기에 잘못된 정보로 참여를 독려하는 글이 공유되고, 또 진정서를 보냈다는 인증 글이 올라오는 걸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근거 없는 정보에 의지해서라도 정인이의 죽음을 막지 못한 것에 대해 속죄하고 어린 생명을 앗아간 양부모들이 제대로 된 처벌을 받길 바라는 절실한 마음의 표현으로 느껴졌다.
한 가지 바라는 점이 있다면 그 절실한 마음이 정인이 사건에서 멈추지 않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아동학대 뉴스는 끊이질 않고 있다. 작년만 해도 천안에서는 아이를 여행용 트렁크에 가둔 계모의 학대로 9살 아이가 목숨을 잃었고, 창녕에서는 불에 달군 프라이팬에 손이 지져지고 쇠사슬에 목줄이 채워졌던 9살 아이가 베란다로 탈출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리고 10월에는 16개월 된 정인이가 사망했다.
우리 사회에서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하면 부모의 학대 행위가 어느 정도로 잔혹했는지 고발하는 기사가 앞 다투어 보도되고, 온라인 기사의 댓글창은 부모를 비난하는 댓글로 도배가 된다. 그리고 뒤 이어 국회의원 누군가는 아동학대 방지와 관련한 법안을 발의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항상 거기까지였다. 잔인한 아동학대 뉴스를 덮어버릴 만한 또 다른 사건이 발생하면 아동학대 사건은 잊혀지고 발의된 법안은 통과가 되었는지 아동학대 예방책은 마련되었는지는 사회적 관심에서 멀어졌다.
정인이의 죽음과 관련해서도 양부모가 얼마나 잔인했는지 고발하는 기사가 이어지고 있다. 양부가 정인이 얼굴에 비비탄 총을 쏘았으며 양모는 정인이를 태운 유모차를 폭력적으로 몰았다는 뉴스도 보도됐다. 양부모의 잔혹함을 드러내는 뉴스는 사람들의 분노를 자극하지만 그게 전부여서는 안 된다. 분노는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기 마련이고, 분노가 가라앉으면 잊히기 마련이다. 물론 그 공분으로 정인이 양부모에 대한 공소장 변경도 이끌어냈지만 양부모들의 엄중한 처벌이 우리가 다다라야 하는 결론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제2의 정인이가 발생하는 불행한 사태를 겪지 않으려면 개별 사건에 분개하는 일로 그치지 않고, 아동 학대 방지 시스템에 대한 전반적인 개선과 관심으로 이어져야 한다. 논의되고 있는 재발 방지책은 제대로 실행되고 있는지, 아동학대와 관련한 법안은 통과되었는지, 돌봄 사각지대에 있는 아이들은 없는지 감시와 관심이 계속되어야 한다.
일이 벌어지고 나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소중한 생명이 서글프게 떠난 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겨우 양부모를 욕하고, 정인아미안해 해시태그를 달고, 진정서를 쓰고, 공소장 변경을 하는 일밖에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아동복지에 대한 법과 제도를 손보고 주변에 방치되어 있을지 모르는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만으로도 제2의 정인이가 될 수 있는 수많은 아이들을 구출해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