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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소송법은 심급별 구속기간을 최대 6개월로 규정하고 있다. 통상 구속 피고인의 경우 구속기간 만료 전 형을 선고하는 만큼, 이씨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올해 12월 초 이전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법원에서도 이씨의 형량이 2심의 ‘징역 20년 등’보다 더 올라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2심에서 징역 35년 등을 구형했던 검찰은 2심 판결이 강간살인미수 등 주위적 공소사실의 사실관계를 모두 받아들여 상고를 하지 않았다.
형사소송법은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가 선고된 사건에 있어서 중대한 사실의 오인이 있어 판결에 영향을 미친 때 또는 형의 양정이 심히 부당하다고 인정할 현저한 사유가 있는 때’를 상고이유로 규정하고 있다. 즉, 징역 10년 이상이 선고된 사건에 한해 ‘양형’을 이유로 상고가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재판 실무에선 어디까지나 주로 피고인에 한정된 경우가 많다.
대법원은 판례상 2심 판결이 형량이 현격하게 부당한 경우가 아니라면 검찰의 양형부당 상고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검찰 역시 통상적으로 사형이나 무기징역을 구형한 사건이 아니라면 양형을 이유로 상고하지 않는다. 돌려차기 사건의 경우 통상적인 강간살인미수 사건에 비해 엄한 판결이 내려진 만큼, 양형부당 상고가 받아들여지긴 쉽지 않다는 것이 법조계 분석이다.
이에 따라 대법원의 판결은 ‘피고인 상고 기각’에 따른 징역 20년 등의 확정이나 ‘파기환송’ 두 가지 중 하나로 나오게 된다. 대법원이 2심 판결에 대해 법리오해나 심리미진, 양형부당 중 하나라도 문제를 삼게 되면 사건은 부산고법으로 환송돼 다시 재판을 하게 된다. 이씨가 현재 ‘강간 목적’과 ‘살인 목적’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인 만큼, 대법원에도 같은 취지의 상고이유서를 제출할 것으로 보인다.
최민형 변호사(법무법인 에이시스)는 “이씨는 결국 대법원에서 강간이나 살인 목적이 인정되지 않아 추후 파기환송심에서 감형이 되길 바라는 것”이라며 “2심에서 현출된 증거 등을 감안하면 이씨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씨는 과거에도 재판을 받는 경우 사건을 모두 대법원까지 끌고 갔다. 2009년 특수강도 등 사건, 2014년 강도상해 등 사건, 2020년 공동주거침입 사건 모두 판결에 불복해 사건을 대법원까지 끌고 갔으나 대법원에서 모두 유죄 판결이 확정됐다.
이씨는 지난해 5월 22일 오전 4시50분부터 귀가하던 20대 여성을 10여 분간 몰래 쫓아가 피해자가 들어간 오피스텔 1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돌려차기 등으로 무자비하게 폭행한 혐의(살인미수)로 기소됐다.
그는 피해자가 돌려차기로 뒷머리 부분을 가격 당한 후 그 충격으로 바닥에 쓰러진 후에도 재차 발로 피해자의 머리를 밟았다. 이후 피해자가 의식을 잃은 것을 확인한 후에도 또다시 피해자의 머리를 강하게 밟았다. 당시 이씨는 체중이 90㎏에 육박하던 거구였다.
이씨는 의식을 잃은 피해자를 어깨에 메고 엘리베이터 홀 밖으로 나간 후 CCTV 사각지대인 건물 1층 복도 구석으로 이동해 입간판 뒤쪽 가려진 공간에서 피해자를 눕혔다. 이후 머리에 다량의 피를 흘리고 의식이 없는 피해자의 청바지와 속옷을 벗겼다.
◇피해자, 죽음 직전 순간에 주민에 발견돼 목숨 건져
그는 엘리베이터 소리 등 인기척을 느끼고 현장을 다 수습하지 못한 상태에서 도주했다. 피해자는 오전 5시 11분경 건물 입주민에게 발견돼 구호 조치를 취해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외상성 두개내출형 등 전치 8주의 중상을 입었고, 영구장해까지 생겼다.
이씨는 긴급체포돼 구속된 이후에 황당한 변명으로 일관했다. 당시 이씨는 “피해자가 째려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여자인 줄 몰랐다” 등의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을 폈다. 의식을 잃은 피해자를 복도 구석으로 옮긴 이유에 대해서도 “구호 차원”이라는 어치구니 없는 주장을 했다.
검찰 조사에서 “피해자가 기절한 이후 피해자의 머리 쪽에서 피가 많이 흘러나와 있었고, 피해자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무서웠다”고 진술해 살인 목적을 인정하기도 했지만, 이후 다시 말을 바꿨다.
검찰은 살인미수 혐의로 A씨를 기소했고 1심에서 징역 20년과 부과형을 구형했다. 1심은 살인미수 혐의를 유죄로 판단해 징역 12년형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20년을 선고했다.
이씨는 항소하며 “머리 부위를 발로 가격하거나 밟아서 상해를 가한 사실은 인정하나, 이 사건 당시 피해자가 자신을 욕하는 듯한 환청을 듣고 순간적으로 격분해 범행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법원 “피해자를 성욕 해소 도구로 취급” 질타
피해자의 강력한 요청으로 항소심에서 검찰이 성범죄 여부에 대한 추가적인 검증을 법원에 요청했고, 결국 범행의 목적이 ‘강간살인’으로 공소장이 변경하고 징역 35년형과 부과형을 구형했다. 그러자 이씨 측은 “강간하려 했다면 과도한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폭행 당시에 살인의 고의와 강간의 고의가 동시에 양립할 수 없다”고 납득할 수 없는 항변을 반복했다.
법원은 검찰의 공소사실 일체를 유죄로 판단했다. 부산고법 형사2-1부(최환 이재욱 김대현 부장판사)는 지난 12일 피해자의 옷과 속옷 상태, 검출된 DNA 등을 근거로 “이씨가 강간을 직접적인 목적으로 또는 적어도 강간을 배제하지 않는 성폭력범죄들을 저지를 의도에서 피해자에게 폭행을 가한 것”이라며 “저항이 아예 불가능한 상태로 만들어 강간 범행을 용이하게 실행하기 위한 수단으로 폭행을 사용한 것”이라고 결론 냈다.
그러면서 “범행 수법이 극히 잔혹하고 흉포하며 대담할 뿐만 아니라, 무자비한 공격으로 실신한 피해자를 확인하고도 재차 머리를 차는 듯이 짓밟거나 위중한 상태에 아랑곳없이 피해자의 옷을 벗겨 유린했다”며 “범행 과정 내내 피해자를 오로지 자신의 성욕을 해소하기 위한 도구나 수단으로 취급하였을 뿐 타인의 생명이나 신체에 대한 인격체로서의 최소한의 존중이나 배려조차 보이지 않았다”고 질타했다.
이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하고 10년 간의 신상정보 공개, 취업제한 10년을 명령했다. 이와 함께 20년간의 위치추적전자장치 부착을 명령하며 이 기간 외출제한 등도 부과했다. 매일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 보호관찰관 승낙 없이 외출을 금지하고 피해자에 대한 접근이나 연락도 모두 금지된다. 또 흉기 등 위험한 물건을 소지 및 보관하는 것도 금지했다.
한편, 이씨는 수사기관에서 진행한 사이코패스 진단 검사(PCL-R) 평가에서 총점 27점을 기록해 우리나라의 사이코패스 기준선 25점을 넘은 ‘높음’ 수준에 해당했다. 사이코패스 진단검사 27점은 10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 강호순과 같은 수준이었다. 별도로 진행된 이씨에 대한 성인 재범위험성 평가도구(KORAS-G) 평가 결과에서도 ‘높음’ 기준선인 12점을 훌쩍 넘은 23점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