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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신하영 기자] 대학 교수들이 올해를 정리하는 사자성어로 과이불개(過而不改)를 선택했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여·야를 떠나 잘못이 드러날 때마다 이전 정부를 탓하거나 ‘야당 탄압’이라는 말로 고칠 생각을 안한다는 의미가 담겼다.
교수신문은 대학교수들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과이불개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꼽혔다고 11일 밝혔다. 이번 조사는 지난달 23일부터 30일까지 일주일간 대학교수 935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조사 결과 과이불개가 50.9%(476명)의 지지를 받아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됐다. 이는 논어의 ‘위령공편’에 나오는 과의불개 시위과의(過而不改 是謂過矣)에서 유래된 말로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을 잘못이라 한다’란 의미다.
박현모 아주대 교수(세종리더십연구소장)는 “여당이나 야당할 것 없이 잘못이 드러나면 ‘이전 정부는 더 잘못했다’ 혹은 ‘야당 탄압’이라고 말하고 도무지 고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서 “이태원 참사와 같은 후진국형 사고가 발생해도 책임지려는 정치가가 나오지 않고 있다”며 추천 이유를 설명했다.
과이불개를 선택한 다른 교수들도 한국정치의 후진성과 소인배 정치를 비판했다. 40대의 한 사회학과 교수는 “현재 여야 정치권의 행태는 민생은 없고, 당리당략에 빠져서 나라의 미래 발전보다 정쟁만 앞세운다”고 말했고, 60대의 예체능계열 교수는 “여당이 야당 되었을 때나 야당이 여당 되었을 때나 똑같다”고 비판했다. 50대의 한 인문학과 교수는 “자성과 갱신이 현명한 사람의 길인 반면 자기정당화로 과오를 덮으려 하는 것이 소인배의 길”이라고 지적했다.
응답 교수 14.7%(137명)의 지지를 얻어 과이불개에 이어 2위를 차지한 사자성어는 욕개미창(欲蓋彌彰)이다. 덮으려고 하면 더욱 드러난다는 뜻이다. 남기탁 강원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는 욕개미창을 추천한 이유로 “우리 대학의 연구 윤리가 보다 엄격하고 공정하게 적용되기를 바라는 심정”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교수들은 이태원 참사의 진실 은폐 시도를 욕개미창을 선택한 이유라고 밝혔다. 한 사회학과 교수는 “이태원 참사에 대한 진상 조사는 안 하고 묻어버리려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김건희 여사의 박사논문 표절 의혹을 비판하는 의미에서 욕개미창을 선택한 교수들도 있었다. 50대의 공대 교수는 “공부한 사람을 모욕하는 시대상황과 맞다”고 말했으며 50대의 인문학과 교수는 “학문적 진실성 문제는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지속적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3위는 13.8%(129명)의 지지를 얻은 누란지위(累卵之危)가 꼽혔다. 여러 알을 쌓아 놓은 듯 위태롭다는 뜻이다. 탁선미 한양대 독어독문학과 교수는 “글로벌한 보편적 위기에 더해 미중 신냉전, 남북 관계 경색, 폭력적 극우주의와 민주주의 위기, 소수자 혐오 문화, 인구소멸 등 겹겹이 난제가 산적해 있다”며 “어디에도 발 디딜 수 없을 만큼 도처가 위태롭다”면서 누란지위를 추천한 이유를 설명했다.
누란지위에 이어 △문과수비(文過遂非·과오를 그럴듯하게 꾸며대고 잘못된 행위에 순응한다, 13.3%) △군맹무상(群盲撫象·눈먼 사람들이 코끼리를 더듬으며 말하다, 7.4%) 등도 올해의 사자성어로 추천됐다.
앞서 교수신문이 지난해 12월 12일 선정한 2021년 사자성어는 묘서동처(猫鼠同處)였다. 고양이와 쥐가 함께 있다는 뜻으로 도둑 잡을 사람이 도둑과 한패가 됐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대장동 개발 의혹이나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 등을 비판하는 의미가 담겼다.